이번 주는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다. 나는 누웠다가 일어나서 먹었다가 다시 누웠다가를 반복한거 같은데 벌써 한주가 지나가다니. 광주에서 지내는 동생이 오랜만에 서울집에 왔다. 그 날 솔이는 반가워하고 꼬리를 흔들었지만 저녁을 먹지 않았다. 엄마가 억지로 먹이니 속이 안좋았는지 다 토해냈고 그래서 억지로 먹이지는 말고 그냥 먹고싶을 때 먹도록 든든히 챙겨만 두었다. 자고 일어나니 솔이는 자기 방 앞에 옆으로 누워있었다고 한다. 그 새벽에 소변 패드에 쉬야를 하고 그 옆에 똥을 누고 자기 방 앞으로 돌아가 그 앞에 누워 자면서 죽은 것이다. 양쪽 눈이 다 안보이는게 발로 밟아 바스락거리는 촉감으로 기저귀 패드를 알아채고 배변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가는 날까지 실수를 하지 않다니, 이 작은 사실 만으로도 대견하고 기특했다. 그런데 실수 해도 좋으니 가지 말지. 지난 주 금요일 내가 오랜만에 집에 갔을 때 새벽 4시쯤 자다가 솔이가 끙끙대는 소리를 듣고 급하게 일어나 마루에 나가니 자기 방 앞에 옆으로 누워있었다. 너무 놀라 물을 먹이려 코에 대니 싫다고 몸을 비틀었고 그래서 그냥 자기 방에 고이 뉘여주니 쌕쌕 잘 자서 한숨 놓은 기억이 났다. 그래서 이번에도 사실은 죽은게 아니라 방에 제대로 눕혀주면 잠을 자게 되지 않을까 혼자 생각했다. 그래서 동생이 강아지를 묻어줄 때 내가 옆에 있었다면 걔는 죽은게 아니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같이 있지는 않았지만 자꾸 동생이 강아지를 묻는 장면이 머리속에 떠오르면서 나는 파내야 한다고 사실 죽은거 아니라고 말하는 장면이 꿈에 자꾸 나타난다. 그래도 다행인건 며칠 오랫동안 자고 일어났다가 또 자면서 꿈을 꾸고나면 의외로 기분이 찝찝한게 아니라 상쾌해지는 것이다. 아프지도 않고 잘 갔기에 아무렇지도 않다가 피부과에서 주근깨를 빼 본의아니게 깨꼼보가 되어 집에 홀로 있다보니 나날이 멍해지고 괴로워졌다. 깨를 지질때는 너무 아파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집에 있으니 생각은 자라고 자라서 그동안 기억하지 못했던 것도 파헤쳐서 힘들게하고. 슬프고 힘들 때에는 오히려 바쁘게 뭔가를 해야하는 데 그렇지 못해서 내가 더 힘들었나보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다못해 커텐이라도 좀 걷을걸 그랬다. 너무 음침하게 자다가 일어나서 밥을 먹고 다시 멍때렸다가 다시 자고. 덕분에 이번 주에 공부를 하나도 못해서 스스로 할 일을 못했다는 괴로움에 자괴감이 왔다. 그래도 솔이를 원망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못해준 것을 후회하지도 않았다. 그치만 자꾸 생각나는 건 마지막으로 동물병원에 데려갔을 때 의사선생님께 '그래도 올해는 넘겼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 내 자신이 너무 이기적으로 느껴져서 미안하고 그 순간을 돌아가 그 말을 내뱉지 않았으면 싶다. 며칠 집에 있다가 오늘은 레이저로 지진 얼굴의 상처가 조금 나아진 것같아 분리수거를 하러 잠깐 나갔다. 우체통에 엄마가 보낸 편지가 있었다. 나보고 힘든 것을 내색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편지를 읽고 또 와르르르 울다가 엄마 전화를 받았다. '너 왜 서울 집에 안오니?' 엄마가 가장 두려웠던 순간은 가족들이 집에 오기 전 가장 먼저 집으로 들어왔을 때 솔이가 쓰러져있는 것이었다고 했다. 한 두 번 솔이가 기척이 없었던 적이 있지만 그건 자느라 그런 것이었고 엄마가 두려웠던 순간은 다행히도 오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솔이 물건을 못치우겠다고 말했다. 엄마는 엄마가 다 치웠으니 집에 오라고 했다. 아빠는 사고나서 죽은 것도 아닌데 슬퍼할 것이 아니라며 다그쳤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동안 엄마아빠보다 솔이를 더 가족처럼 여기고 유대했다구요.. 엄마는 좋은 대화를 많이 하고 평소대로 해야한다고 했고 나는 오랜만에 집을 나서 운동을 했다. 가는 길에도 조금 눈물이 났지만 지나치게 주변을 의식하는 태도덕에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지나가 모든 것을 잊고 한시간 반동안 운동에 집중했다가 집에 오니 왠지 머리가 시원했다. 평소에는 도통 머리가 아픈적이 없어서 진통제는 보통 배가 아플때만 먹었는데 이번에는 하도 울고 콧물을 흘려서인지 머리가 너무 아파 가지고 있던 약을 다 먹었다. 아픈건 또 싫어서 오는 길에 약국에서 약을 두 통이나 샀다. 부모는 자식이 먼저 죽으면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느낀다고 들은게 자꾸 생각났다. 나도 심장이 동서남북으로 찢어지는 느낌이 들었는데 지금은 그래도 덜 찢긴 느낌이 드는 걸 보니 충분히 슬퍼하고 괜찮아진 모양이다. 아직은 멀었지만. 이 일기는 내가 마음을 정리하고 이제는 보내주는 연습을 하는 셈 치면서 써보았다. 처음 몇 줄까지는 닭똥같이 눈물을 뚝뚝 흘렸는데 뒤로 갈 수록 초연해졌다. 그래도 신촌 사거리에 있는 동물병원은 망했으면 좋겠다. 예전에는 거길 보면 저기서 솔이를 데려왔는데 아직도 있네 싶었지만 지금은 눈에 안띄었으면 싶다. 엄마가 강아지를 묻고 오는 길에 그 동물병원을 또 봤다는 말을 했을 때에는 거기 창문을 부수고 싶었다. 그러다가 또 그 날을 생각했다. 5월 5일에 동생이 강아지를 가지고 싶다고 노래를 노래를 불러서 데려왔고 처음에는 금목걸이를 하고 있어서 자랄 수록 목에 딱맞아지는 것 같아 아빠가 뺀지로 끊어준 그 모습부터 추운 11월에 떠나는 것까지. 나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같이한 동생은 먼저 가서는 다시 양쪽 눈이 보이고 무릎이 나아져 펄쩍펄쩍 뛰어다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