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rary] 타자가 과잉 상실된 시대 : 타자의 추방 / 한병철 /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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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자의 추방
  • 한병철
  • 문학과 지성사
  • ISBN: 9788932029863

읽는 시간이 굉장히 오래걸렸던 책이에요. 이번 베트남 여행길에도 동반했지만 아주 조금밖에 읽지 못했고, 저에게는 내용이 어려워 매우 매우 큰 집중력을 요했기 때문에 생각에도 또 시간이 걸렸어요. 그래도 이 시대를 이해하기에는 한병철시리즈 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생각에 추천합니다. 제 리뷰는 타자의 ‘시선’ 을 집중해서 썼습니다.


두려움은 전적으로 타자의 시선으로부터 유래한다. 이 책에서는 어떤 타자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타자는 서사적인 구조에서 벗어나 있는 어떤 얼룩이나 오점이고, 바로 이 outlier가 나를 쳐다보는 화자이다. 어떤 타자가 나를 극도로 쳐다본다는 것을 인지하는 우리는 두려움을 느낀다.

책에서는 히치콕의 영화 ‘뒤 쪽 창문’을 예시로 들었다. 나는 최근에 본,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인 ‘기묘한 이야기’를 예로 들겠다. ‘기묘한 이야기’에 등장하는 괴물은 뒤집혀진 세상에서 먹이가 될 수 있는 것들 (인간을 포함하여) 을 관찰하고 사냥할 기회를 노린다. 타겟이 된 ‘윌’과 ‘바바라’가 괴물이 바라보는 시선의 대상이었다. 두려움을 생성하는 시선을 잃고 오히려 그 자신이 누군가의 시선에 노출되게 되면서 괴물은 파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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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이야기’에서 괴물은 다른 매체에서 나오는 일반적인 괴물과 비슷하게 굉장히 소리소문없이 조용히 이동하고, 누군가에게 잘 들키지는 않지만 은근한 흔적은 남긴다. 흔적을 통해 두려움을 만드는 시선이 신체 중 눈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존재 그 자체가 시선이다. 숲을 지나가면서 건들인 나뭇가지가 바스락거리고, 열어둔 창문이 바람에 흔들리고, 수영장에서 물방울이 튀는 존재의 모든 세계가 시선으로 인지된다. 우리가 주인공 세 꼬맹이들에게 감정을 이입하며 드라마를 볼 때에 이 세계의 모든 시선이 느껴지고, 곧 두려움을 느낀다. 드라마에서 나타나는 시선의 주체가 기묘한 괴물이라는 점에서, 또 그를 이기는 기묘한 힘을 가진 여자아이의 등장으로 드라마는 흥행했다.

타자의 시선으로부터 유래하는 두려움은 조지 오웰의 책 ‘1984’에 등장하는 ‘빅 브라더’나, 감옥의 한 형태로 제시된 ‘판옵티콘’에서 활용된다. 중앙에서 모든 방면으로 쏟아져나오는 시선으로 모두를 억압하는 방법이 사용된다.

그런데 이것도 사실은 한물간 시선이다. 디지털화된 시대에선 중앙원근법적인 시선에 지배되지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디지털 판옵티콘이라 생각할 수 있다. 원근법없이 작동하는 디지털 판옵티콘은 가시적인 시선을 노출시키는 초보적인 실수가 없다. 이에 이용자들은 마치 자유가 주어진 마냥 활동하고 본인들이 게시하고 공개하는 자료가 창작의 자유라 어림짐작한다. 박정희시대의 감시와 억압으로부터 벗어난 사람들에게서 기만적인 자유의 감정이 싹트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모든 것을 공개하는 시대에 굳이 어떤 억압이 필요할까? 나는 디지털 판옵티콘이 중앙에서 ‘바라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디지털 판옵티콘은 원근법없이 작동한다고 말했다. 디지털 판옵티콘은 중앙에서, 또 변두리에서 모두를 샅샅히 바라보기 때문에 그 구분이 필요하지 않은 것 뿐이다. 우리는 시선에서 자유로와져 두려움이 사라진 나머지 너무나도 자유롭게 행동하고 있다. 가시적인 타자의 소실로 인해 개개인이 자발적으로 자유를 내놓도록 하고 그 자유를 착취하는 것, 이 사회의 감시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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