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 https://steemit.com/darwin/@hanbin973/1-2
다윈의 옹호자들 중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은 다윈의 친척 중 한 명이었습니다. <종의 기원>에 깊이 감명받은 그는 다윈의 이론이 인간 집단에 가지는 의미를 찾기 위해 평생을 바칩니다. 우생학자였던 그는 키, 체중 등 인간의 다양한 형질을 데이터로 수집하였으며 이를 통계적인 방법으로 분석하고자 했습니다. Regression Towards Mediocrity in Hereditary Stature(1886)는 원시적인 형태의 회귀모형(Regression Model)을 사용하여 부모의 키와 자식의 키가 가지는 관계를 알아보려했던 연구입니다. 그는 해당 인구집단의 평균키와 자녀키의 차이가 해당 인구집단의 평균키와 부모키의 차이에 비례한다는 것을 관찰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부모의 키가 어떤 방식으로든지 자녀에게 되물림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림 1. Regression Towards Mediocrity in Hereditary Stature 에 등장하는 자녀키-부모키의 관계를 설명하는 그림.
골턴의 주장은 다윈의 점진주의(Gradualism)을 지지하는 증거로 이용됩니다. 다윈은 진화가 충분히 천천히 일어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키도 (골턴의 연구처럼) 유전되는 것이라면 진화하는 집단의 평균키도 점진적으로 바뀌겠죠. 그런데 키는 관찰된 바와 같이 연속적으로 분포하는 형질이므로 키의 점진적인 진화는 분포의 연속적인 변화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다윈의 점진주의는 구체적으로 이러한 연속적 분포의 연속적 변화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후 골턴은 수학자 칼 피어슨(Karl Pearson)과 동물학자 월터 웰던(Walter Weldon)과 의기투합하여 Biometrika라는 학술지를 창립합니다(1901). 물리학의 발전과 함께 수학을 사용하는 것이 '진정한 과학'의 증거로 여겨지던 당시의 흐름에 발 맞추어 다윈 진화론도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윈주의자들이 보기에 자연의 변이들은 (사람의 키가 그런 것처럼) 연속적이었습니다. 반면 멘델주의자들이 초파리, 강낭콩, 달맞이 꽃 등에서 관찰한 변이들은 불연속적이고 뚝뚝 끊겨있는 것들이었습니다. 이 둘은 절대로 타협할 수 없었죠. 동시에 이 갈등은 서로 다른 역사적 배경을 가진 두 생물학자 집단의 싸움이기도 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때부터 바깥에서 자연을 탐구하던 자연주의자(Naturalist)들과 1800년대에 들어 확립된 실험실의 전통 따르는 실험주의자(Experimentalist)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전자는 정확히 다윈이 자연에서 관찰했던 그것을 보고 있었고, 후자는 정확히 멘델이 콩밭에서 관찰했던 그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서로 자기가 본 게 정확하고 더 중요하다고 우기니 절대로 끝날 수가 없는 싸움이었죠. 그런데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 전선은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다음 이 시간에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