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3월 조선주재 소련 대사관이 조선중앙통계국 자료를 근거로 작성한 전쟁피해 보고서의 내용
인구는 120만명이 감소해서 심각한 노동력 부족현상이 발생함
직접적인 경제손실은 4,200억원에 달했고, 9000여곳의 공업시설, 60여만채의 주택, 5,000여개의 학교, 1,000여개의 병/의원, 263 곳의 극장과 영화관 및 기타 문화 및 활동장소 수천여곳이 패허로 변함.
공업생산품의 생산량도 급감함
전력생산은 1949년 59.24억 킬로와트에서 1953년 10.16억 킬로와트로 감소, 채탄량은 394.3만톤에서 68.6만톤, 철강은 14.4만톤에서 0.35만톤, 시멘트는 53.7만톤에서 2.65만톤으로 감소
농업부문의 손실은 다음과 같음
도살되거나 강탈당한 소와 양이 10.9만 마리, 돼지 13.5만 마리, 8.9만 그루의 과수가 훼손됨
조선의 경제회복과 건설을 돕기 위해 소련과 중국은 대량의 원조를 제공함. 소련 외교부 극동국의 조사에 의하면,
1953년 9월 19일의 소련과 조선의 합의에 근거해, 소련 정부는 2년내에 조선에 10억 루블을 무상원조하기로 함
전쟁전과 중에 제공된 차관 2.98억 루블의 상환(1957-1966)을 연기하고 이자율도 2%에서 1%로 낮춤
전쟁중 비무역분야 채무 7,288.8만 루블을 절반으로 삭감
(418, 주166, 라주바예프 보고서, pp.34-53)
중국은 더 많은 원조를 함
1954-1957년 4년동안 16억루블의 무상원조를 제공
전쟁 시작부터 1953년말 까지 제공된 14.5 억 루블을 모두 지급 유예
3년동안 중국의 동베이지역에 살고 있던 조선인 고아 22,375명을 부양하고 이들을 교육시킨 조선인민과 그 가족 구성원(31,338)명을 위한 비용을 부담
1953년 11월 23일 체결할 기타합의를 근거로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전문가들의 가족에 대한 처우와 비용 및 조선인 실습인원과 유학생의 비용을 지원함
(419, 주 167 페도렌코의 조사보고, 1953년 12월 31일, АВПРФ, ф.0102, оп.7, д.47, п.27, лл.115-120)
중국과 소련의 북한에 대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중국과 소련에 대한 의구심을 지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