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드웨이를 본 후 이런 저런

영화 <미드웨이>를 본 후 생각난 이야기

186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이 해 8월 21일 일본 나마무기(生麥)라는 곳에서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다. 나마무기는 오늘날로 치면 요코하마 근방이다. 사쓰마 영주의 아버지인 시마쓰 히사미쓰가 수백 명의 사무라이를 거느린 행차 중이었다. 일본 막부를 능가하는 위세를 부리던 사쓰마번의 어른이자 일본 정계의 실력자였던 그의 행차는 위풍당당했다. 그런데 이 위풍당당에 초를 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영국인 관광객과 상인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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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 4명 가운데 리처드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영국인들로부터도 그다지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던 사람이었다. 중국에 있을 때 말을 타고 다니며 걸핏하면 채찍으로 중국인들 등을 휘갈기며 “내가 이 동양인 놈들은 다루는 법을 알지.”하며 낄낄거리는 버릇이 있었다. 그때도 채찍을 들고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이름조차 해괴한 동양 섬나라 영주 앞에서 말에서 내리거나 경의를 표하는 건 그의 두뇌 회로에 없던 일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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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무사들이 뭐라고 손짓발짓으로 지시하긴 했는데 ‘옆으로 비켜서라’는 정도로 오해했고 영국인들은 행렬을 거슬러 올라 호위대를 뚫고 히사미쓰에게 근접하는 모양새가 됐다. 이에 험악하게 소리지르는 사무라이들이 스르릉 칼을 빼자 그제야 리처드슨의 얼굴은 핼쓱해졌으리라.. “이 동양인들은 이상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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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칼을 뺀 무사들은 비호 같이 달려가서 리처드슨을 베어 버렸고 나머지 세 명은 혼이 나간 채 도망가다가 미국 영사관에 겨우 들어가면서 횡액을 면했다. 리처드슨은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으나 사망하고 말았다. 별로 곱게 보지 않던 인물이긴 해도 리처드슨은 엄연히 영국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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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정부는 자국 인물이 살해된 데에 분노(하는 척)하며 배상을 요구했고 막부로부터 배상을 받아냈다. 영국 정부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사쓰마의 버르장머리를 고치려 들었는데 이 와중에서 사쓰마와 영국의 전쟁, 즉 사쓰에이(薩英) 전쟁이 벌어진다. 전쟁은 좀 거창한 소리고 사실상 사쓰마의 거점이라 할 가고시마가 영국군의 포격을 흠뻑 받고 박살난 사태에 가깝다. 시설 집성관과 주전소, 민가 350채가 불탔고 사쓰마 번주의 저택과 가신들의 주택도 잿더미가 됐다. 하지만 영국측의 피해도 만만찮아서 일본의 저력을 깨닫는 계기가 됐고 자신들의 뒤떨어졌음을 처절하게 깨달은 사쓰마는 근대화의 달음박질을 시작하게 된다.

영국 함대 7척의 일방적인 포격을 받으면서도 대포에 기를 쓰고 불을 당기던 해안 포대에 한 젊은이가 있었다. 도고 헤이하치로라는 열 여섯 살짜리 청소년이었다. 그 아버지와 함께 해안 포대 포병으로 참전한 소년 무사는 영국 함대의 무자비한 포격을 버텨내면서 해군의 중요성을 깨달아 영국에 무대뽀 유학을 떠났고, 선진 기술을 익혀 해군에 입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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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즈음, 그는 대좌가 돼 순양함 나니와 호의 함장이 돼 있었다. 그는 조선의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된 청나라 군대 1천명을 실은 고승호를 기습, 침몰시켰다. 경기도 안산 앞바다에서 벌어진 풍도 해전으로서 청일전쟁의 서막을 열어젖힌 것이 바로 도고 헤이하치로였던 셈이다. 이때 침몰한 고승호는 청나라 군 군자금으로 은덩이를 잔뜩 싣고 있었다는 소문이 돌아서 한때 보물선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니 왜 한국 근해로만 오는 배들은 금괴 은괴를 싣고 오는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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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10년 뒤 일본은 한반도의 패권을 놓고 러시아와 대결을 벌이게 된다. 서양 열강은 일본은 대국 러시아의 상대가 안된다고 봤지만 러시아는 이미 늙고 병든 곰이었다. 더욱이 세계 최강 영국이 일본 편에 서 있었다. 태평양 지역의 러시아 요새가 잇따라 함락되자 러시아 짜르는 발트해의 발틱 함대를 출동시켰다.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 지나 말래카 해협 지나 남지나해 동지나해를 거슬러 올라온 발틱 함대는 갑판에 녹이 슬 정도였지만 그래도 막강 함대였다.

도고 헤이하치로는 대한해협에 일본 함대를 집결시켜 놓고 발틱 함대를 기다렸다. 그때 도고가 한 훈시는 유명하다. “황국의 흥패, 이 일전에 달려 있다.” 도고의 지휘 하에 일본 해군은 러시아 발틱 함대에 완승을 거둔다. 발틱 함대는 괴멸됐고 함대 사령관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은 중상을 입고 포로가 됐다. 도고는 부관과 함께 로제스트벤스키가 입원한 병실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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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렇게 위로했다. “우리 전투원들은 이기든 지든 고통을 겪소. 다만 한 가지 문제는 우리가 임무를 완수했는가 아닌가 하는 것이오. 당신은 위대한 임무를 영웅적으로 수행했소.” (전쟁 연대기 4,조셉 커민스 저, 니케북스) 승장과 패장의 대화를 묵묵히 지켜보던 부관은 손가락 두 개가 없었다. 쓰시마 해전에서 파편에 맞아 손가락 두 개를 날렸다. 그가 바로 야마모도 이소로꾸. 후일의 일본 연합함대 사령관이다. 영화 <미드웨이>에서 꽤 카리스마 내뿜는 바로 그 사람.


미드웨이 영화 속 야마모도 이소로꾸

쓰시마 해전은 전 세계 해군의 주목을 받았다. 일본에서 러일전쟁 승전 축하 파티가 거창하게 벌어지던 당시 미 해군 전함 오하이오 호가 요코스카에 정박하고 있었다. 오하이오 호에도 파티 초청장이 전해졌는데 현역 장교들은 참석하지 않는 대신 사관 후보생 5명을 보낸다. 그 중 대표격인 학생은 쓰시마 해전의 영웅 도고 헤이하치로를 만난다는 사실에 감격하고 있었다. “쓰시마 해전이야말로 해전의 근대적 표본이며, 교과서다. 도고 제독의 생생한 교훈이 담긴 해전을 교과서 삼아 그 이상 가는 전투를 해 보이겠다는 생각에 가득 차 있었다.”

텍사스 사투리 진하게 쓰는 이 풋내기 사관후보생은 지나가는 도고 제독을 붙잡고 잠깐의 가르침을 청할 만큼 열성적이었다. “도고 제독 각하. 저희에게 시간을 내 주십시오!” 도고는 이 벽안의 사관 후보생에게 ‘영국식 영어’를 구사하며 한 수 가르침을 줬다고 하고, 이 사관후보생은 훗날 그날의 감동을 회고록에 남길 만큼 깊은 인상을 받는다. 이 사관후보생의 이름은 체스터 니미츠. 바로 미드웨이 해전에서 야마모토 이소로쿠 일본 연합함대 사령관에게 절망을 안겨 준 바로 그 사람이다.

영국 해군의 위력을 실감한 일본의 시골 소년 무사는 해군 건설의 꿈을 키웠고 그야말로 ‘무대뽀’로 영국에 유학, 교회를 다니며 성가 따라 부르고 성경책 읽으며 영어를 익히고 선진 지식과 기술을 일본 해군에 이식시켰다. 그를 따라 싸우다 손가락 두 개를 잃은 부관과 초롱초롱한 눈으로 ‘한 말씀’을 청하던 미군 사관 후보생이 수십 년 뒤 건곤일척, 세계사를 뒤바꾼 해전(海戰)의 주역이 됐다는 건 우연치고는 참 얄궂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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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으로 포장되지 않는 필연이 없고, 모든 우연은 필연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던가. 영화 <미드웨이>를 보면서 든 생각은 공연하고 객쩍은 운명론이었다. “저건 이미 저렇게 정해져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랄까. 미국 잠수함이 일본 함대를 발견하고 공격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구축함 하나가 그 잠수함을 잡으려고 함열에서 이탈했다가 돌아가지 않았더라면 연료 떨어져 가던 미군 비행기들은 못찾겠다 꾀꼬리 부르며 겨우 귀환하거나 연료 부족으로 태평양에 불시착해서 쪄 죽어가거나 상어밥이 됐을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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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하필이면 그 야마모토와 그 니미츠인가 말이다. 그들은 어떤 인연으로 그때 그 자리에 있게 되었을까. 답 없는 질문임을 알지만 그래도 자꾸 되뇌게 된다. 역사는 그렇게 답이 없기에 재미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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