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령강 이남의 인재를 등용하지 말라'
고려 태조 왕건의 훈요(訓要) 10조 항에 나오는 부분입니다.
훈요는 불사(佛事), 풍수지리(風水地理), 입사(立嗣) 등 10개 조입니다
우선 개땅쇠가 되어진 조항 내용과 지리적 개념부터 알아 보는 것이 순서리라 봅니다.
<훈요 8조항>
차현(車峴) 이남과 공주강(公州江)의 바깥은 산지(山地)의 형세가 모두 배역(背逆)으로 뻗어 있어 인심
도 또한 그러하다 그 곳 아래의 주군(州郡) 사람들에게는 벼슬을 주어 용사(用事)하지 말게 하며 국척
(國戚 임금의 인척)과의 혼인을 금하라
일찍이 관사(官寺)의 노비와 진(津)과 역(驛)의 잡척(雜尺)에 속했던 무리들은 혹 권세에 의탁하여 권력
을 부리고 정사를 어지럽혀 재앙을 불러 오는 자가 반드시 있을 것이니, 양민일지라도 벼슬을 주어 일보
게 하지 말라. (東史綱目, 高麗史)
군산 앞 바다에 이르는 금강의 물줄기를 보면,
지금의 금강은 덕유산 장수 수분령에서 발원하여 옥천을 거쳐
공주에서 한양 쪽으로 흐르지 않고, 한양을 등지고 군산 앞바다로 흐르고 있습니다.
즉, 임금이 있는 한양을 등지고 흐른다하여 왕권을 위협하는 인재들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바로 금강이 계룡산을 싸고 돌아 가기 때문에 금강 이남 사람들은 언제든지 반역을 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인가, 풍수지리가들은 역적들이 많이 나오는 땅으로 지칭했습니다
고려조 474년, 조선조 500여 년을 거치는 동안 전라도 땅은 '개땅쇠'라는 말로 비하되고,
타도인들의 잠재의식 속에서 귀족층이 아닌 하층민이나 서민들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이 처럼 폄하되고, 비하된 '전라도 개땅쇠'의 어원이 갖는 의미를 되새겨 보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개땅쇠'는 그들의 인식과는 달리 크나 큰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농경사회에서 농토는 최고의 가치를 부여받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풍요로운 곡창지대와 남서 해안의 무궁한 갯벌들이
더없이 풍족한 생활을 보장해 주는 곳입니다.
풍요로움은 예술면에서의 극치와 사상, 새로운 이념을 끊임 없이 싹트이게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위기의 시대마다 새 세상을 제시한 위대한 선각자와 사상가들이 태어 났습니다
조선 중기의 혁명가 정여립(鄭汝立),
원불교의 일원사상(一圓思想),
증산교의 해원사상 (解寃思想),
진묵대사(震默大師)의 실천(實踐)과 실존주의(實存主義),
탈 권력을 부르짖었던 고부의 전봉준(全琫準)
동학의 시천주(侍天主), 한울사상
위대한 예언가 탄허(呑虛)스님 등
또한 이들 사상과 이들이 바로 개땅쇠들이 아닌가
저 드넓은 중원의 고향 땅에서 한 반도로 쫏겨나
전라도 땅에 정착한 선조들은 바로 황제 및 귀족 집단이었다는
언어학자의 분석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되리라 싶습니다
바로 왕권을 회복하리라는 불안과 염려로 풍수지리를 빚대어
후대의 기득권 세력이 만든 허구가 아닐까 자위도 해 봅니다
고대사 측면에서 보면,
차현은 현 중국의 광동성에 있으며 이 지역은 오늘날 일본으로 이주한 왜(倭)가 있었던 지역입니다
또한 백마강(白馬河)은 중국의 산동성에 엄연히 존재해 있고,
대륙에 존재했던 백제 지역임을 잊어서는 안되리라 봅니다
어쨋던 개땅(갯땅)은 새 땅을 개척하고,
열어가는 개지정신(開地精神) 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