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 파라다이스를 위한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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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Day Vipassana Meditation Course│Day 4
새벽부터 점심까지
달이 꽉 찼다가 오른쪽으로 기울고 있다. 오늘은 아예 침대에서 일어날 수도 없다. 어찌나 등 쪽이 뻐근한지 좀 더 잘까 하다가 4시 10분에 눈을 뜬다. 메디테이션 홀에 도착해서도 '더 잘래 그냥. 더 자고 아침 휴식 때 안 자는 게 낫겠어.' '지금 일어나 지금!' 하는 마음의 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그래도 버티고 또 버티기. 결국 고엔카 선생님의 찬팅을 끝까지 듣는다. 어제는 축제처럼 들리던 게 오늘은 장송곡처럼 들린다. 새벽잠을 버티는 것 자체가 수련인 걸까. 명상은 꽝이다.
오늘도 6시 반에 명상이 끝나자마자 아침을 먹으러 간다. 홀에 있던 사람들이 먼저 도착하고 나서 종이 울렸는데 방에서 잠을 자거나 편안한 시간을 보낸 수련생들은 늦기 쉽다. 토스트도 구워야 하고 과일도 썰어야 해서 늦게 오면 기다리는 시간이 길다. 늦지 않게 아침을 먹고 샤워와 배변 활동까지 무사히 마치고도 30분이 남아서 이렇게 홀가분한 마음으로 글을 쓴다. 이제 진짜 비파사나 명상 훈련이 시작된다. 오늘 일정은 다른 날과 조금 다르다. 오후 3시 10분부터 5시까지는 꼼짝없이 메디테이션 홀에 앉아 훈련에 임해야 한다.
8시-9시 아침 단체 명상 중에 처음으로 눈물이 났다. 기억을 더듬다가 어린 시절에 놀림을 받았던 일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크고 나서는 '어릴 때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적이 있지. 놀리기도 하고 놀림받기도 하고, 그런 거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오늘은 어쩐 일인지 마음이 그때 그 상태로 돌아가서 눈물이 났다. 서운하고 상처 받은 마음은 어른이 되고 나서보다 어렸을 때가 훨씬 강렬한 듯하다. 그때의 놀림이 다 자란 지금까지도 약간의 트라우마로 남은 걸 보면 무의식 깊이 숨겨놓은 일인 모양이다. 실재하고 감지할 수 있는 무의식인 호흡을 통해 심연으로 가라앉으면 내가 기억하는 고통의 뿌리까지 다다르겠지. 오전 9시 33분. 단체 명상을 끝내고 짧은 지도 말씀을 듣고 방으로 내려 온다. 오늘은 아주 중요한 날이니 주의 깊고 날카로운 마음을 최대한 오래 유지하라는 당부다.
오전 11시 51분. 점심을 먹고 숲 산책을 하고 방에 들어왔다. 침낭을 널고 햇볕이 드는 쪽에 베개를 세워둔다. 최소한 햇볕 빨래라도 자주 해야지. 여기를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호흡으로 돌아오려고 얼마나 애쓰는지 모른다. 이곳에 머무는 235시간 중 70시간을 사용했으니 남은 시간도 어떻게든 잘 흘러가겠지. 내가 조절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현재에 머무르려는 태도가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인내, 수용. 오늘 밥을 먹다 의자를 보니 '思'라고 작게 새겨진 글자를 발견했다. 그 사람은 무슨 마음으로 이 시간을 보냈을까.
길에서 수련생들을 마주치면 느낌이 묘하다. 서로가 누군지도 모르고 인사 한 번 제대로 나누지 못했어도 서로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모두가 동시에 투명인간이 된 것 같다. 무소음 인간. 우리들은 나무와 풀처럼 고요히 존재한다. 좋다고, 혹은 싫다고 마음껏 소리를 낼 수도 없다. 어떤 수련생들에게는 이런 고요가 우울을 만들어내는 모양이다. 나는 살짝 외롭긴 해도 이런 침묵이 꽤 마음에 든다. 점심 휴식이 끝나기 전에 숲에 한 번 더 다녀올 생각이다. 세상에, 오늘이 일요일이라니-! 다음 주 이 시간이면 나는 다시 세상에 나가겠구나. 남은 일주일 동안 힘을 내보자.
본격적인 비파사나 명상 수련
오후 1시-3시 명상을 메디테이션 홀에서 하고 곧바로 5시까지 비파사나 명상 훈련이 이어진다. 처음 입소한 날부터 나흘에 걸친 호흡 연습은 '아나빠나(Anapana)'라고 부른다. 코 아랫부분과 입술 윗부분에 집중하고 공기의 흐름을 지켜보는 것. 비파사나 명상으로 들어가기 위한 첫 단계다.
눈을 감고 고엔카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훈련을 이어간다. 아나빠나로 코 아랫부분과 입술 윗부분의 트라이앵글에 의식을 집중했다면, 이제는 정수리 위 1인치의 아주 미세한 구역으로 주의 집중을 옮긴다. 개미가 기어 다니는 듯한 간지러움이 느껴진다면 성공이다. 간지러움은 정수리 위에서 열기가 되기도 하고 옅은 빛으로도 변한다. 이 빛을 의식으로 움직여 얼굴로, 목으로, 어깨로, 팔로, 손끝으로, 허벅지로, 무릎으로, 발끝으로 옮기는 것이다.
정수리에서 센세이션을 감지하고 얼굴까지 내려오는 건 괜찮은데 그 아래로 옮기는 게 무척 힘들다. 우선은 옮기는 게 아닌 '나누는' 것으로 연습해야겠다. 이거 정말 '도'를 닦는 것과 비슷하다!
차 휴식을 하고 나면 잠들기 전까지는 의식을 분배하느라 진이 빠질 것 같다. 두 시간 동안 깊이 집중하고 나니 목이 뻐근하다. 메디테이션 홀을 나서니 바깥 세상이 평소보다 더 환하게 느껴진다. 나의 몸과 마음도 빛으로 가득 밝혀지기를!
저녁
오늘 차 휴식 때는 밀크티를 만들어 과일과 함께 먹는다. 훨씬 포만감이 든다. 앞으로 남은 여섯 번의 차 휴식은 전부 밀크티로 마시는 게 낫겠다. 약간의 변화를 줄까 해서 숲 산책을 출입구를 바꿔 거꾸로 해본다. 내 방 앞의 숲길보다 안쪽에 깊이 있는 숲길이 더 향긋하다.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숲 향기다. 어떤 나무가 많으면 이런 향기가 나는 걸까. 풀과 나무가 다양한 만큼 그 조합에 따라 숲의 냄새도 미묘하게 다르다. 산책을 거꾸로 하니 처음 보는 푯말이 눈에 띈다. 사원으로 올라가는 입구인데 지정받은 사람만 출입할 수 있다고 한다. 저기에는 누가 머물까. 제한 구역 앞에서 궁금증만 커진다.
오후 5시-6시 명상 동안에는 고엔카 선생님의 당부 대로 절대 다리를 바꾸지 않고 몸에서 느껴지는 어떤 감각에도 반응하지 않기로 한다. 무릎 관절이 끊어질 것처럼 아프다. '이 고통은 증발할 거야, 괜찮아- 괜찮아-' 하며 무릎에게 의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며 참는다. 이런 상황에 주의 집중을 분배하는 건 너무나 힘겹지만 그래도 노력한다. 내일 하루 종일 훈련하고 나면 나아질 거라 믿는다.
- 마음이 가장 먼저, 그 다음엔 말로, 그다음엔 행동으로 이어진다. 불건전한 마음이 생기더라도 그것이 그다음 단계로 진행되지 않게 상카라(내재화된 습관적 무의식)를 끊는 게 중요하다.
- 우리가 화를 내거나 불안해하거나 위축될 때, 마음에 세 번째와 같은 선들을 칼로 그어대고 있다. 이 때 생긴 선이 상카라와 같다. 비파사나 명상을 계속 수행하면서 이렇게 강하게 새겨진 선을 잘게 부수어야 한다. 앞으로 부정적인 감정이 찾아올 때 바위가 아닌 물 위에 선을 그을 것이다. 곧바로 흩어질 수 있도록. 방법은 이렇다. "부정적인 감각을 수용하지 않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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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파라다이스를 위한 수련 기록
Day 0
Day 1
Day 2
Day 3
여행지 정보
● Dhamma Medini Vipassana Meditation Centre Burnside Road, Makarau, New Zea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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