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엄마
출처 : 노자규의 .. |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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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엄마
“엄마.. 학교 다녀왔습니다 “라는 소리에
현관에 나와보니
가끔 집에 와
밥도 먹고 가던 민규라는 친구가
“아줌마께 꼭 드릴 말씀이 있어왔어요..”라며
눈물길 따라
지나온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눈 수술을 앞두고
엄마가 안 오면
수술하지 않겠다며 버티는 동생에게
“유치원 운동회날
하루만 엄마를 해주시면 안 되나요 “
12살 오빠는 죽음을 설명하기가 힘들어
동생은 아직 엄마가
서울 돈 벌러 간지 알고 있다며
학원에 간 아들에게는
비밀로 해달라는
부탁까지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난 얼떨결에
“그래”라고 대답하고 말았고
어떻게 이아이에게
자연스럽게 엄마 연기를 할지
밤새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거리에 가을 햇살은 눈부셨고
난 그 햇살을 사뿐히 밟으며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유치원 앞마당에도
가을이 왔나 봅니다
멀리서 온 사람처럼 행동하며
아이 곁으로 다가간 나는
“민지야 엄마 왔어 “라는 소리에
내 품에 안겨 울음부터 터트렸습니다
얼마나 보고싶었어면....
엄마의 향기를 맡으려
품으로 품으로 파고드는 걸까..
“우리 민지 이제 친구들이랑
풍선 터트리기도 하고
엄마랑 손잡고 달리기도 해야지,,“
그 말에 아이는 일어서
선생님의 손을 잡고 친구들이 있는
운동장으로 걸어면서도
자꾸 뒤돌아 보고 있었습니다
“가지 마 엄마.. 가지 마...라는 말을
자꾸만 자꾸만....
“너무 감사합니다
아줌마 이제 가셨도 돼요
깨어나면 엄마는 급한일이 생겨 바빠 갔다고 제가 잘 말할게요 “
하늘에 솜털 구름이 되어 놀던 여동생이
잠든 방으로 힘없이 들어가는 민규를
빨간 낙엽이지는 창가에서 한참이나
바라보고 섰던 나는
도저히 발길을 돌릴 수 없어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나지막이
아이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엄마 어딨어.... “
아무 말도 못 하는 오빠에 손을
더듬어 찾아 쥐고 선
“엄마품이
그렇게 따뜻한지 처음 알았어 “
돌아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 속에
두 아이의 눈가에는
가락가락 찢어진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아픔은 아픔대로
사랑의 껍질만 남겨둔 채
저는 동생을 위해 수술하는 날까지
저 아이의 엄마가 되어주기로
마음속으로
약속을 하고 있었습니다
너털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밥도 먹지 않은 채
눈은 먼 세상 나들이를 하고 있는 듯 티브를 향해 있었지만
마음은 그 아이들에게 가있었습니다
그림자 보다
무거운 하루를 지나
새벽이 밀어낸 어둠이 물러간 자리에
새하얀 거리가 들어서고 있었고
하나둘 형체를 나타내는 건물들 사이로
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유일한 보호자인 민규가
홀로 수술실 문 앞 의자에 앉아
말없는 헤아림으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줌마 왔어.. 너무 걱정하지 마
수술은 잘될 거야 “
민규는
내 품에 안겨 차곡차곡 모아뒀던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학교에 다녀온 아들은 부엌까지 들어와서는
“엄마.... 민규 있잖아
진짜 자기 엄마가 나타나셨데 “
동생 수술비도 내주고
병간호도 다했줬데
역시 엄마가 좋긴 좋은 가봐....
참.. 이제 새집으로 이사도 간데
학교에 소문 쫙 퍼졌어 “
아이들에게
놀림이나 상처가 될 수도 있기에
선생님과는 엄마가 돌아온 걸로 하자는
약속을 떠올리며
스스로 멍든 하늘을 올려다 보다
병원에 도착한 나는
병실 문 손잡이를 밀고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눈에 붕대를 감고 있던 민주는
의식이 돌아오고 있는지
눈물바람 할새 없이 자식 놓고 간 엄마를
절절히 찾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오빠 여기 있어 괜찮아”라는 소리에
“오빠 나 엄마 봤어
그런데
엄마는 나를 바라보고만 있고 불러도 소리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
엄마는 슬픔보다
눈물로 내려왔기에
감았던 붕대는 젖어오기 시작했고
아이는 말을 이어갔습니다
“엄마...
한 번만 안아주면
엄마 보고 싶다 소리 안 할게,,,”
라고 말했는데도 말없이 뒤돌아서
가버렸다며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천국이란 곳이 있는데
민주가 커서 어른이 되면 돌아올 거야.. “
“오빠.. 알아
그 아줌마가 엄마가 아닌 줄... “
저는 그 말에
지나칠 수 없는 아픔이
뒤돌아설 수 없는 슬픔으로
한없이 소용돌이치고 있었습니다
전기장판 하나의 온기로 가난을 배워가면서
아린 맨발의 설원을 지난 민주는
이제 잘 걸어 다니게 되었지만
여전히 혼자가 익숙한가 봅니다
“왜 여기 혼자 있어..”
놀이터에서 비 오는 슬픔처럼
혼자 놀고 있던 민주는
“친구들은 학원에 가고
전 갈 곳이 없어서요”
“그럼 집에 가면 되지 ,,”
“다른 애들은 집에 가면
엄마 아빠가 있는데
전 아무도 없잖아요...”
그랬다....
고사목이 된 채 어둡고 그늘진
터널을 지나쳐 왔어도
누구나 다 있는 그 흔한
엄마조차 없어
민주는 웃음을 잃은 지가 오래이고
민규는 울음을 버린 지가 오래인
이 아이들에게 삶의 이유가 되는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흔한
한낮의 햇빛조차 얻지 못한 채
구석진 방안에서
엄마에 대한 가슴앓이는 시작되었고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아이는
엄마 없는 아이야... “라며
놀리던 친구들 속에서
점이 되어야만 했던 어린 시절이
똑같은 이유인 까닭 앞에
겹쳐오는 아픔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적당이 비워낸 내 삶 앞에
계절이 두어 번 지나친 어느 봄날
“엄마 이층 방 나갔어 "
"응 그래 새 식구가 이사 왔어 “
아들은 늘 불 꺼져 있는 이층 방을
바라보는게 지겨웠는지
신이난 표정이었습니다
“ 너도 올라가 봐
이제 한집에서 살게 되었는데
인사해야지 “
꽃과 같은
사랑으로 피고 싶어서 일까요
모처럼 식탁엔 따뜻해진
서로의 가슴을 안고
네 가족이 빙둘러 앉았습니다
아들과 둘이 사느라 적적했는데
“이제 우리 가족은 둘이 아니라
넷인 거 알지... “
“엄마 고마워요 “
이렇게 새로 아들 딸을 낳아주셨서요 “
행복을 살 수는 없지만
그 행복을 만드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은
부모가 되는 거 아닐까요.....
펴냄/노자규의 골목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