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amf’ novel] Changing Number 2.

D9F04E44-6B72-42B8-BBB1-70F9565C3596.jpeg




사람마다 징크스가 있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오탈자’ 징크스가 있다. 많은 책을 사들이니 다른 사람보다 빈도가 잦을 수밖에 없지만 사는 책마다 오탈자를 발견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나에게 독서는 책의 내용을 읽는다기보다 오탈자를 찾는 작업을 하는 것과 같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꼭 출판사와 통화를 한다. 인터넷상의 오타와 어긋난 맞춤법도 화가 나는데 출판물까지 오탈자를 내는 것은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날도 오탈자를 이유로 전화를 걸었다.








천일동에서 홍대입구역까지 몇 차례 왕복하지만 그 날의 기억은 떠오르지 않는다. 지하철 안은 사람을 관찰하기 가장 좋은 장소다. 모르는 사람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마주 볼 수 있는 공간은 거의 지하철뿐이다. 나는 스마트폰은 보는 척하면서 낯선 이들을 관찰한다. 그녀에 대한 생각과 동시에 사람들을 보정한다. 내게 불완전한 인간은 오탈자와 같다. 완벽하지 않은 인간들은 오탈자처럼 나를 미치게 만든다. 혐오의 감정일까? 혐오와는 다르다. 싫은데 보고 싶은 무언가, 마치 환 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벌레의 알을 보며 징그럽다고 소리치면서도 자꾸 보게 되는 심리처럼, 소름 돋는 공포를 즐기는 마음처럼. 지하철 안의 사람들을 도려내고 키우고 싶다는 욕망이 그녀와 섹스하고 싶은 욕구처럼 나를 내몬다.








전화를 걸자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목소리는 일반적인 상담원의 목소리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비음이 섞인 허스키보이스였다. 게다가 아주 정확한 발음과 매력 있는 어휘와 어법을 구사했다. 오탈자를 빌미로 그녀에게 작업을 걸었다. 그녀는 생각보다 쉽게 넘어왔다. 그녀의 연락처를 받아낸 나는 그녀의 독특하게 관능적인 목소리를 충분히 느끼기 위해 그날로 무제한 요금제로 변경했고 그녀의 업무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시간 동안 통화했다. 씻고 먹고 쌀 때조차 무제한 요금제의 혜택을 누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질리지 않았다.




그녀는 업무시간에도 SNS로 이야기를 건네 왔다. 외계어 같은 SNS상의 글들을 못 견뎌 하는 나는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잘 지키는 그녀에게 마음이 쏠렸다. SNS를 하면서도 통화에 지장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는 진상 고객 담당이었다. 다른 상담원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진상들을 잘 다룬다고 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대처를 잘하는 터라 상사도 그녀가 업무시간에 SNS를 하는 것을 눈감아준다고 했다. 나의 전화를 받은 것은 회선이 잘못 넘어가서였고 그녀는 그것이 운명이라고 했다. 어쩌면 나도 진상 고객 리스트에 올라있을지도. 우리는 SNS와 무제한 통화로 너무 많은 말을 해버려서 정작 만나서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으니 남은 것은 스킨십 뿐. 처음 만난 날, 밥을 먹고 술을 마신 후 나의 오피스텔에서 진한 스킨십 후 잠들었다.




오피스텔 건물 14층은 그녀의 회사였다. 그녀는 출퇴근하기 힘들었는데 마침 잘 됐다며 1919호에서 살기 시작했다.

“난 아침에 섹스가 당겨. 모닝섹스가 제일 달콤해. 마카롱 초콜릿처럼 달콤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그녀는 나에게 올라타 모닝섹스의 오르가즘을 느꼈다. 아침의 섹스를 기억하는 나의 페니스는 3일째 그녀를 기다린다. 잠결에도 그녀를 오르가즘으로 도달시킬 수 있다는 것이 나의 남성적 자신감을 상승시켰다. 그녀와의 모닝섹스는 체리쥬빌레처럼 달콤했지만 아침의 마스터베이션은 밤꽃 향기처럼 서글프다.








그녀가 사라진 후로 아침마다 잠들지 못한다. 아침에 잠을 못 자니 밤에 조금 잘 수 있다. 그녀의 부재로 일반적인 취침 모드로 전환된 것이다. 일반적인 것은 오탈자와 같다. 나는 일반적인 인간들이 선호하는 형태로 조작하는 일을 한다. 일반적인 인간들이 동경하는 완벽한 형태로 만들다 보니 현실에서 만나는 인간들은 대부분 불완전해 보인다. 그녀를 좋아했지만, 그녀를 볼 때마다 눈을 감고 싶었던 마음이 3일째 되자 사라졌다. 눈과 목소리 빼고는 전부 조작되어야 했지만 사흘 간의 부재로 그녀의 형태는 완전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녀의 작은 키를 삼 분의 일 정도로 늘리면 통통한 살집이 보기 좋게 분배될 것이다. 가슴의 크기는 적당하나 바깥으로 향해 있는 유두는 중심으로 배치해야 한다. 관절이 불거진 손가락과 발가락은 매끈하게 다듬어야 하고 작은 손톱은 길게 해야 한다. 배꼽은 길게 만들고 복부에 살짝 11자 선을 넣어줘야 한다. 하체 비만이라서 엉덩이와 다리는 전체적으로 뭉텅 도려내면 된다. 어설프게 마르면 보정하기가 어렵지만, 그녀처럼 하비인 경우 그림을 그리듯 도려내면 그만이다. 얼굴은 시간을 많이 소비한다. 아름다운 연예인의 경우 말고는 얼굴 보정은 거의 창작과도 같다. 창작하면 창작할수록 사람들은 자신들의 얼굴과 똑같다며 좋아한다. 그러나 이런 창작은 예술이 아니다.




“나를 보정하고 싶니?”

“아니.”

“거짓말!”

“아니라구...”

“네 눈이 나를 보정하고 있는데 거짓말할 거 없어. 난 괜찮아. 난 정말 내 몸이 좋아.”




그녀는 자아가 강한 사람이었다. 쉽게 자존심 상해하지도 않았을뿐더러 남의 말에도 개의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화 내역이 녹음되고 고객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상담원으로서의 일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나 보다.

“내가 진상 고객 담당이잖아. 그런데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도 없는 그 고객들 신상을 보면 가관이야. 그런 사람들이 무슨 교육을 하고 공무를 집행하는지. 타인에 대한 조금의 배려도 없는 이기주의자가 무슨 의사이고 변호사인지?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부모가 될 수 있는지?.....”







4일째 되는 날 아침 나는 14층으로 내려간다. 그녀의 상사에게 그녀의 행방을 묻자 말도 없이 무책임하게 4일이나 결근을 했다면 나에게 화를 낸다.

“일주일 넘으면 해고라고 전해요! 그나마 일은 잘해서 일주일이나 봐주는 겁니다.”




나에게 그녀의 스마트폰이 있다는 것을 잊고 그녀에게 전화를 건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여.......’

신호음만 울리던 그녀의 전화에 멘트다. 전화번호를 해지했다는 것은 그녀가 죽지 않았다는 의미일까? 더는 그녀의 전화가 울리지 않는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거나...’

익숙하다. 이 멘트가 나를 미치게 만든다. 오래전부터 이 멘트를 미쳐 했던 느낌이다. 사라진 번호에 분노를 느낀다. 그녀가 사라졌다는 사실보다 번호가 사라졌다는 것에 나는 배신감과 모멸감을 느끼고 있다. 왜일까?






신호가 갈 때는 그래도 그녀가 곁에 있는 것 같았다.그녀에 대한 원망보다 그녀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으로 가득했다. 아무리 걸어도 잠들어 있는 그녀의 스마트폰에 피가 마른다. 혹시 그녀가 다른 전화번호를 개통하고 나에게 전화하지 않을까? 그녀의 전화를 기다린다.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는 고통에 심장이 타들어 간다. 온 신경이 스마트폰으로 향해 있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줄 마냥 팽팽하다.








그녀는 늘 내가 지금 그녀의 전화를 기다리듯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나와 같은 얼굴을 하고서. 내 곁에서 스마트폰에만 빠져 있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밥을 먹을 때도 침대에 누워서도 스마트폰을 놓지 않았다. 우리가 공유하는 것은 섹스뿐이었다. 공유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녀는 그를, 나는 포르노그래피의 동양 여자를 떠올리는데.






“네가 그렇게 잊지 못하고 한순간도 생각을 떨치지 못하는 그도 만일 네 곁에 있으면 넌 나를 대하듯 시큰둥할 거야. 너는 지금처럼 스마트폰이나 만지고 있겠지. 넌 그런 사람이야. 넌 그를 사랑하는 게 아니야.”

“그래. 그렇게 말하는 너 역시 내가 너를 떠나면 하루 이틀 슬퍼하다가 화를 내겠지. 너는 나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실연당하는 것은 참을 수 없을 테니까. 일주일이 지나면 나를 기억조차 하지 못할 거란 것도 분명해. 누가 곁에 있다 사라져도 상관없고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온다 해도 알아보지 못할 거야.”

“설마. 이렇게 매일 붙어 있었는데 그렇게 빨리 잊는다는 건 말도 안 돼.”

“그럴까? 내가 너를 기다리게 한다면 너는 어떤 사고를 가장해서 기억을 잃어버린 척 나를 잊을 거야. 왜냐하면, 너는 기다리는 걸 지독히도 못 견뎌 하니까.”








나를 배려하지 않은 깊은 잠수. 잠수탄 그녀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자 그녀의 번호로 전화를 개통한다. 같은 모델로 그녀의 전화는 두 개다. 그녀의 부재를 인정 하고 싶지 않아서 그녀의 전화로 내게 전화를 건다. 점심시간, 퇴근 시간. 매일 두 번씩 그녀가 하던 그 시간에 전화를 걸면 나의 스마트폰에는 그녀의 번호가 뜬다. 다른 모든 번호는 이름으로 저장했지만, 그녀의 번호는 저장하지 않았다. 사귀는 여자의 전화번호는 저장하지 않는다.








띵똥! 문자가 온다.

“만나서 좋았다. 옛날 생각나더라. 이번 주도 볼 수 있지? 거기서 같은 시간에 보자.”

그가 분명하다. 그녀가 기다리던 그.

‘거기서?! 같은 시간에?!’

질투가 순식간에 치민다. 그러나 이상하다. 그녀는 퇴근 여섯 시 시간 땡! 하면 퇴근해서 5분도 지나기 전에 1919호에 도착한다. 주말 내내 나와 함께 있었는데 언제 그를 만났다는 것인가?

“거기 말고 다른 곳에서 봐요.”

내가 답한다.

“웬 존대? 우리가 언제 밖에서 만났다고 그래?
그래, 그래. 색다른 것도 좋지. 어디?”

뭐야? 도대체 어디서 만났다는 거야? 상상은 끝없이 펼쳐지고 질투로 눈알이 충혈될 지경이다.

“내일 7시. 천일동역 홍대 방향 14량, 클럽 갈 예정. 드레스코드 레드.”

“ㅎㅎ내가 그렇게 보고 싶은 건가? 뭐가 이렇게 구체적이야. 클럽 좋지. 오케이, 내일 보자.”






그를 보고 싶다. 그녀의 그.
그녀의 눈꺼풀 안에 새겨져 있던 그를.
그는 그녀의 행방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written by @madamf MadamFlaurt
#소설 #이야기 #novel #story #마담플로르


[madamf’s novel]


Changing Number | prologue. fallin'moon
Changing Number 1.


Eyes of Newyork 뉴욕의 눈 | take 1. Shame
Eyes of Newyork 뉴욕의 눈 | take 2. fantasy
Eyes of Newyork 뉴욕의 눈 | take 3. two her
Eyes of Newyork 뉴욕의 눈 | take 4. the Sun
Eyes of Newyork 뉴욕의 눈 | take 5. Voyeurism



A878D0F8-9247-4278-974E-0838CB2A2B46.gif

H2
H3
H4
3 columns
2 columns
1 column
Join the conversation now
Logo
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