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이와의 산책, 어쩌면 일기

날씨가 좋은 오늘 오후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산책을 나섰습니다.
유아용 자전거에 둥이들을 하나씩 태우고 아내와 제가 한 대씩 뒤에서 끌고 나섭니다.

의자.JPG

산책길에 만난 의자입니다. 아니 의자라고 추측되는 조형물입니다. 위치가 의자가 있어야 할 위치인데다가, 오른쪽에 남자다리 모양에서 허벅지 사이에 앉을 수 있게 해놓은 것 때문에 의자라고 생각되요. 살짝 가서 앉아 보면 상당히 불편하단 걸 알게 됩니다. 산책을 다니며 몇 번을 봤지만 저 의자(로 추측되는 조형물)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본적은 없는 거 같아요. 의자라고 하는 실용적인 측면과 예술적 조형물로써의 측면이 모두 반영된 것이라 생각이 되는데요. 기발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의자라고 추측은 되지만 딱히 앉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거로 봐서는 의자로의 측면보다 조형물로의 측면에 더 무게가 실린 예술작품으로 느껴지네요. 조금 더 앉기에 안락하게 만들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합니다. '균형'이라는 측면에서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

가만히 보다보니 여자 다리는 오므리고 있고 남자 다리는 자연스럽게 벌려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오네요. 흔히 우리는 여자는 여자답게 두 다리를 모아 앉아야 하고 남자는 남자답게 어느 정도 척 벌리고 앉아도 된다고 쉽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생들 대상 양성평등 관련 교육을 하다보면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이 모두 우리가 만든 편견일 뿐이어서 그러한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강요하는 것은 양성평등에 반하는 것이니 하지 말자고 하는 내용들이 많이 나오죠. 양성평등 교육을 하다보니 학생들보다 오히려 제가 더 그에 노출된 시간이 많아서 인지 저런 부분이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다리를 모으고 앉으면 불편하던데 싶기도 하고요. (음... 물론 제가 허벅지 살이 많아서 저만 그렇게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왠지 여자 다리 모양 의자에는 그닥 앉고 싶은 생각이 안 들더군요. 뭔가 위태로울 거 같기도 하고 뭔가 죄를 짓는 느낌이랄까요. 그렇다고 딱히 남자 다리 위에 앉고 싶지도 않아요. 근데 왜 둘 다 머리 쪽은 거위(혹은 오리?) 모양일까요?

올챙이.JPG

산책을 하다 근처 커피숍에 들러 잠시 쉬고 나오는 데 작은 연못 같은 것이 있더군요. 근데 그 주변에 많은 아이들이 놀고 있고 심지어 연못 안으로 들어가 있는 아이들도 있고요. 뭔일인가 봤더니 그 연못에 올챙이를 풀어놨더라고요. 아이들은 그 올챙이를 잡느라 잔뜩 모여 있었던 거죠. 연못 안에 들어간 아이는 본격적으로 올챙이 사냥(?)에 나선 것이고요. 둥이들도 올챙이의 존재를 발견하곤 커피숍에서 들고 왔던 플라스틱 커피 잔을 하나씩 들고는 올챙이를 잡으러 나섭니다. 아내는 물에 젖는다, 물이 더럽다며 그냥 가자고 하지만 아이들에게 그 말이 1도 닿지 않으리란 건 아침에 해가 동쪽에서 떠오르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었죠. 온갖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올챙이를 잡으려고 이리저리 플라스틱 컵을 휘두르고 있는 둥이를 보며 아내는 불만에 찬 표정을 하고는 반쯤 포기하고 그늘에 앉습니다. 저는 아이들 곁에서 플라스틱 컵에 올챙이를 잡아선 둥이들에게 줍니다. 둥이들은 올챙이가 든 컵을 받곤 "와, 올챙이다. 이쁘다."라며 연못에 부어버립니다. 그리곤 다시 올챙이를 잡아달라고 하죠. 몇 번을 해주다 혼자 잡아보라고 하며 아내 옆으로 가 앉습니다. 둥이들이 열심히 잡으려고 하지만 순순히 잡혀 주는 올챙이는 없습니다. 가만히 지켜보니 사진에서처럼 주변에 있는 아이들에게 말을 걸어가며 함께 올챙이 포획 파티를 짭니다. 사실 어린이집을 안 보내고 집에서만 키워지고 있는 둥이들이라 사회성이 떨어지진 않나 생각했는데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 보는 아이들인데도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금새 친해지는 모습을 보며 '아이는 아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런데 저 연못의 올챙이들은 모두 개구리가 되도록 풀어놓은 걸까요? 아니면 주말에 아이들이 와서 포획(?)하면서 놀 수 있게 하기 위해 넣어둔 걸까요? 많은 수의 개구리를 키워내려는 의도였다면 아이들이 접근하지 못 하도록 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정말 아이들이 저 곳에서 올챙이를 잡으며 자연을 느끼고 어릴 적의 추억을 만들길 바랐던 걸까요? 혹시나 자연적으로 개구리가 저 곳에 알을 까서 우연히 올챙이들이 있었던 걸까요? 자연적이라고 하기엔 주변이 너무 개발된 도회지라 누군가가 올챙이를 풀어놓은 거 같긴한데... 어쨌든 올챙이를 잡는 아이들을 보며 처음엔 저의 어릴 적 생각도 나면서 기분이 좋았었는데요. 올챙이를 잡으려는 가운데 세상을 떠나버린 올챙이의 시체가 떠다니는 것을 보며 아이들의 올챙이 포획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잡고 다시 풀어주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잡은 것을 가져가기 위해 병에 올챙이를 모으고 있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리고 잡은 올챙이를 손에 쥐고 주물럭 거리거나 연못 밖으로 던지는 아이도 있지요. 아이들은 이 올챙이들을 보며 생명이라고 생각을 할까요? 아무렇지 않게 다루던 장난감과 같이 그냥 사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요? 아이들의 순수함 이면에 존재하는 잔혹함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올챙이를 잡는 둥이들에게 붙어서 올챙이에게 인사도 시키고 뒷다리가 나온 것은 "어라 너처럼 다리가 있네."하고 말을 해 보기도 하며 올챙이가 사물이 아닌 하나의 생명으로 받아들이길 의도해 보았습니다. 그런 의도가 아이들에게 닿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올챙이를 잡아서 집으로 가져가자고는 하지 않네요. 더 놀고 싶었는지 집으로 돌아갈 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지만 집 근처에 도착했을 무렵에 "오늘 올챙이들이랑 재밌게 놀았어요."라고 말하는 첫째를 보며 올챙이를 아주 사물(객체)로 보지 않고 있음에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어요.

오늘 산책도 너무 좋았어요. 날씨도 맑았고 햇볕이 좀 따갑긴 했지만 아이들이 많이 보채지도 않았고 적절히 카페에 들어가 쉬기도 했으니까요. 집에서만 볼 때는 잘 모르는데 야외로 나가서 활동을 하다보면 둥이들이 쑥쑥 성장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말을 더 많이 잘 하기도 하고요, 그전 외출 때보다 잘 걷고 잘 뛰는 거 봐도 그렇지요. 주말만 되면 아이들을 데리고 야외로 나가는 사람들을 잘 이해 못 했는데 이젠 왜 그러는지 확실히 알겠어요. 그리고 저도 최대한 아이들을 데리고 야외로, 교외로 나가야 겠어요. 어쨌든 오늘도 행복한 하루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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