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2003 >

<본 리뷰는 영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고장 난 물건들의 이야기"

사람은 모두 불완전하다.
우리는 모두 이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모여 살기도 하고,
서로를 돕고 살려고 노력한다.

이 영화는 불완전한 개체들을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고장 난 물건들의 이야기로 평가할 수 있다.


조제와 쿠미코

작품 속 여자주인공의 이름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할머니가 부르는 쿠미코라는 이름,
그리고 쿠미코 자신이 주장하는
조제라는 이름이다.

쿠미코는 츠네오에게 자신을 조제라고 부르라고 한다.
조제는 쿠미코가 재미있게 읽었던 책의 주인공이자,
자신의 장애를 드러내지 않을 수 있는 이름이다.

쿠미코는 다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해코지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안고 살아간다.
현실 속 쿠미코는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쿠미코의 할머니는 그런 그녀를 '고장 난 물건'으로 취급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녀의 장애를 숨기고, 드러내지 않는다.

조제 역시 그런 삶에 익숙해져, 버려진 책을 읽는 삶에 만족한다.
그녀에게 츠네오라는 존재가 나타나면서 새로운 변화가 시작된다.
조제는 츠네오에게 조제라고 불러달라고 하며 자신의 불편한
몸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츠네오에게만큼은 고장 난 물건 취급을
받고싶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있다.


고장 난 물건과 밥

영화에서는 많은 고장 난 물건들이 등장한다.
아기를 낳자 사람들로부터 잊혀지는 어미 강아지부터,
그녀가 공부를 할 수 있게 만들어준 카나이 하루키,
더 나아가 불완전한 사랑을 할 수밖에 없는 츠네오 역시
모두 고장난 물건들이다.

조제가 자신의 할머니로부터 고장 난 물건 취급을 받는 것처럼
등장인물들은 모두 어딘가 모자란 구석이 있다.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을 먹는다.
츠네오가 조제의 집에서 밥을 먹은 것에서 시작해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이후에도,
심지어 조제와 츠네오가 헤어진 마지막 장면에서도
그녀는 밥을 먹는다.

고장 난 물건들이 밥을 먹으며 살아간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이다.
불완전한 존재들이 모여 밥을 먹는 것은
그들에게 세상에서의 효용성을 주장하기에 앞서
당연한 수순이다.

사회 복지사도 밥을 먹고, 그 사람들에게 복지를 받는
몸이 불편한 이들도 밥을 먹는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서 밥을 먹는 행위만이
정당하고, 평등한 행위인 듯 하다.


장애와 동정 사이

영화는 '장애'에 대해 매우 조심스럽게 서술하고 있다.
츠네오의 권유로 할머니는 집을 개조하지만,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여전히 조제는 바닥에
몸을 던지듯 내려온다.

그리고 또 사회복지사와 변태 아저씨를 대조시키며
사회복지 시스템의 실용성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여준다.

복지과 사람들보다 변태 아저씨가 실질적으로
더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조제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츠네오를 계속해서
밀어내는 것 역시 자신이 '동정'의 대상이
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고장 난 물건인 자신과 츠네오는 다른 부류의
사람이기 때문에 그녀는 일종의 방어기제로
츠네오에게 떠나가라고 말한다.

츠네오 역시 처음에는 조제를 떠나가지만
결국 자신의 행동이 동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랑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들이 사랑을 확인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사랑에 이르는 과정까지, 모두 불완전하다.


카메라

조제가 자신을 찾아온 츠네오에게 가버리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총 3번의 쇼트를 만들어 낸다.
얼핏 보면 별로 중요하지 않은 듯한 이 장면에서
카메라의 변화에 따라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파악할 수 있다.

첫 번째 쇼트에서는 츠네오의 무정함을,
두 번째 쇼트에서는 츠네오의 갈등을,
세 번째 쇼트에서는 츠네오의 변화된 마음을 각각 보여준다.

이렇듯 세분화된 쇼트에서는
등장인물들의 감정변화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츠네오의 감정을 확인한 뒤 눈물을 보이는 조제의
감정 변화 역시 이와 동일한 패턴이다.
이후 그들은 격렬하게 사랑을 나누며
자신들의 행동이 동정이 아닌 사랑의 감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암시한다.

바다를 찾아가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또 다른 역할을 담당한다.

난생 처음 바다를 본 조제의 기분처럼
카메라는 이리저리로 흔들거리며
조제와 츠네오의 행복한 시간을 조명한다.

그러나 이 카메라 묘사에는 츠네오의 마음이 투영되어 있다.
가족 제사에 그녀를 데리고 가려고 했지만
그녀를 가족들에게 보여줄 자신이 없어진 츠네오의 마음이
카메라의 움직임을 통해 드러난다.

카메라가 이리저리로 흔들리는 것은
조제의 행복한 마음과, 츠네오의
갈등상황을 동시에 보여주는 듯하다.


호랑이, 물고기 그리고 사진

영화의 제목에서 호랑이와 물고기가 나오지만
내용에서 이들 소재의 비중은 크지 않다.

호랑이와 물고기의 의미는 그들을 묶어서
생각했을 때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먼저 호랑이는 조제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존재다. 그녀는 남자친구가 생기면 꼭 호랑이를
보고싶었다고 말하고, 만약 생기지 않았다면
호랑이를 보지 않았을 것이라 말한다.

호랑이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였다면
그녀는 자신을 물고기라고 표현한다.

조네는 자신이 빛도, 소리도 없는 심해에
살았는데 츠네오를 만나면서부터
심해에서 헤엄쳐 올라오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녀를 가장 무서운 존재와 마주하게 하는 것,
심해로부터 헤엄쳐 올라오게 만든 것은
모두 츠네오라는 존재인 것이다.

츠네오가 사라지게 되도 괜찮을 것이라고
표현하는 조제의 마음에는 심해 위로
헤엄쳐나오는 법을 알았기 때문에
더이상 아래로 가라앉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담겨있다.

여기서 심해는 외로움을 상징하는 메타포인데,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을 떠나가는 츠네오를
보고 난 이후에도 여전히 밥을 먹고, 장을 보러
나갈 수 있게 된 것 역시 심해에서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제 츠네오 없이도 호랑이와 마주할 수 있고,
물고기처럼 헤엄쳐 더 큰 바다로 나갈 수도 있다.
조제와 츠네오의 사랑이 끝났지만,
조제가 여전히 밥을 먹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 초반부에서와 마지막에서 사진이 등장한다.
잘려진 시간의 조각같은 사진들은
조제와 츠네오의 추억을 연상시킨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그들의 기억은 하나 둘
사라져가겠지만, 사진이 그들의 추억을 기억하듯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기억하며 살아갈 것이다.


고장 난 물건들의 이야기

결국 이렇듯 조제와 츠네오의 사랑은 끝이 났다.
츠네오는 '카나에'를 다시 만나게 되었지만
그것은 츠네오의 잘못이 아니다.

츠네오가 조제로부터 도망치게 된 것은
조제를 사랑하지 않았다기보다는
그 역시 고장 난 물건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그가 하는 사랑 역시
불완전하다.

츠네오가 가진 사랑의 역할은
조제를 심해로부터 끌어내는 것으로 끝이났다.
그 이후의 결말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사회복지사를 꿈꾼다던 카나에가
조제에게 심한 말과, 행동들을 한 것 역시
카나에도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모두가 불완전한 세계에서는
모두가 고장 난 물건이 될 수밖에 없다.

고장난 물건들이 모여 서로에게
조금이나마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삶이고, 우리의 사회인 것이 아닐까.

이러한 삶 앞에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자신이 고장 난 물건일 수 있다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영화 속 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은 것처럼
현실 속 우리도 완벽하지 않다.
그저 지금의 영향력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인연은 그것으로 족하다.

쿠미코가 좋아하던 책 구절은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잘 드러내고 있다.

언젠가 그대는 그 남자를 사랑하지 않게 될거야.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그대를 사랑하지 않게 되겠지.
우리는 또 다시 고독하게 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달라지는 건 없다.
거기엔 또 다시 흘러가버린 1년이란 세월이 있을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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