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 100배 마진

날씨가 너무 더워졌다. 퇴사욕구가 강하게 피어 오르는 초여름의 더위다. 페이스북이나 스팀잇따위의 SNS 에서는 여행을 가서 먹고 노는 사진들이 한참 올라온다. 어쨋거나 그런것은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다. 나는 돈을 벌어야 하니까. 기계적으로 스마트폰에서 다섯번째 울리는 알람소리를 끈뒤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 터벅터벅 걸어나간다. 버스를 타고 앉음과 동시에 눈꺼풀이 감긴다.

그렇게 또 이상한 꿈과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잠에 빠졌다가 문득 왼쪽으로 크게 커브하는 버스의 진동을 온몸으로 느끼며 눈을 뜬다. 언제쯤 이 지루하고 기계적인 삶에서 벗어날수 있을까. 이제 좀 정신이 든듯 하다. 버스에서 내려 회사까지 다다른다. 운동하자고 4층까지 걸어가고자 했지만 아직 잠이 덜깬것 같아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안녕하세요, 과장님"
"네. 안녕하세요."

말은 안녕하시냐고 하지만 회사의 그 누구도 안녕해 보이지 않는다. 내자리의 컴퓨터를 발로 걷어차듯 켜고나서, 의미없는 한숨을 쉬며 종이컵에 커피믹스를 붓고 뜨거운물 약간에 얼음을 띄우고 휘저어, 찬물을 들이붓고 흡연실로 향한다.

나는 커피와 담배를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정신을 차리기 위해 뇌를 각성시키는것이지. 아니 어쩌면 담배랑 커피가 나를 좋아하는건지도 모르겠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니 근무 시작시간이 5분 남았다. 어젯밤 싸운 여친으로부터의 연락은 없다. 카톡을 보내볼까 하다가 밥먹고 보내자고 타협한다.

끝까지 핀 담배꽁초를 버리고, 내 자리에 앉아서 향수를 뿌린다. 담배냄새는 건강에 해롭기 때문이지. 헤드셋을 켜고 상담프로그램을 켠다. 때마침 20분전에 대출을 신청한 사람이 있다. 나이스 타이밍~ 9시가 땡하자마자 전화를 건다.

"안녕하세요, 유케이 저축은행입니다. 맹강호 고객님 맞으신가요?"

"네 맞아요."

"대출신청건 때문에 전화드렸습니다. 금액은 천만원이시고 ㅡ 상환기간 24개월이며 이율 17.54% 적용되십니다."

"네네."

"바로 진행 도와드릴까요?"

"그렇게 해주세요"

전화를 받은 남자의 목소리에서 뭔가 흥분이 느껴진다. 대부분 고객의 경우에 망설이는 티를 내거나 목소리에서 신중함이 느껴지는데 이 사람은 뭔가 헛된 기대를 가지고 있는게 틀림없다. 아마 도박이나 주식같은 거겠지..

"선취수수료가 30만원 있기 때문에 실제로 970만원이 입금되시구요. 선취수수료를 합치면 실제 이율은 20%가 되십니다. 목적은 어떻게 되시나요?"

"네. 코인 사려구요"

"코인이요?"

"네 비트코인요. 지금 딱 풀 매수를 할 시점이거든요!"

대출상담원을 2년째 하고 있지만 당당하게 코인이나 주식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처음봤다. 아무리 그런 목표가 있어도 생활비라거나 이사를 핑계로 정직하게 쓰겠다고 얘기하는것이 당연한것 아니던가..

"투..투자 목적이시군요?"

"투자인지 투기인지 별로 중요치 않아요. 아무튼 진행해주세요."

"네.. 비트코인 구매 목적이시구요.."

"정확히는 풀마진이죠! 빨리 진행됬으면 좋겠어요. 약속의 한시까지는 횡보가 유지될텐데 이 횡보에 100배 마진롱으로 대박을 낼거에요! "

"알겠습니다. 현재 직업은 어떻게 되시죠?"

"코인 트레이더에요!"

"트레이더? 라 함은 어떤 직업이죠 사무직인가요?"

"어.. 프리랜서 같은거로 보시면 되겠네요. 집에서 코인을 사고 팔죠!"

"아 네.."

프로그램상에서 무직에 체크를 했다. 이거 아무리 봐도 대출불가가 떨어지겠군. 이 사람의 신용등급은 3등급이지만 아무것도 한게 없어서 3등급이고, 몇년간의 수입도 없다. 그저 코인에 환장한 사람이구만! 이렇게 당당할수가 있나.

"고객님 죄송하지만 프리랜서 같은경우에는 수입을 증빙해주셔야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제 코인 거래내역을 보여드릴까요? 최근 3개월간 0.59비트가 0.27비트가 되긴했어요. 하지만 이것은 수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사업을 할때 투자하는거나 마찬가지로요. 밤낮할거없이 단타를 쳐왔고 경험을 쌓았지요. 때로는 따기도 했고 딴걸 고스란히 잃어버리기도 했는데요. 아무튼간에 저는 지금이 최고의 적기라고 봅니다. 완전한 바닥이거든요!"

"고객님 가상화폐는 정식 화폐가 아니기 때문에 통장에 찍히는.."

"아 출금기록도 당연히 있어요! 갓비트와 갓썸에 실명등록이 되어있죠. 증빙서류만 말씀해주세요. 한시가 급하거든요. 8000불 이하에서 비트코인을 살수있는 마지막 시간이 될거에요! "

"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필요하신 서류는~"

한 10분쯤 떠들고 심사를 거친뒤 전화주겠다 하며 상담을 끝냈다. 이상하게 나는 이 말도 안되는 사람을 떨쳐내지 못했다. 왜 ? 나는 작년 5월에 비트코인 2개를 5백만원에 샀다. 그리고 며칠뒤 급속도로 떨어지는걸 보며 3백만원에 손절했다. 나 자신을 책망하며 다시는 비트코인 쳐다도 안보겠다고 했다. 올해초에 화제가 되며 비트코인이 1500만원이 되는걸 보고도 가만있었다. 그러다 2천만원을 돌파하자 눈이 뒤집혔다.

'이건 분명히 1억을 찍을거야. 저번의 실수를 만회하자!'

그렇게 2500만원에 1비트코인을 샀고 결국 1700만원에 손절했다. 오바이트할때까지 술을 먹고 벽에 머리를 쾅쾅 박아도 보았지만 없어진 돈은 어찌할수가 없었다. 그때가 생각나서 차마 이 사람의 희망을 꺽을수가 없었다. 이사람은 얼마나 절실하며 행복회로와 희망이 가득할까! 그런 사람에게 내가 대출이 안된다며 대못을 박을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네이트온 메신저가 왔다.

"엄과장팀, 이번달 대출금액 실적 꼴찌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세요."

센터장으로 부터 날아온 메시지다. 순간 정신이 번쩍든다. 때마침 고객이 보낸 서류가 속속들이 팩스로 날아온다. 그래! 할수있어! 우리는 달려야해! 바보놈이 될수없어! 맹강호씨에게 전화를 건다.

"안녕하세요, 유케이 저축은행입니다. 맹강호 고객님 맞으신가요?"

"네. 서류 방금 막 보냈는데요."

"잘받았습니다. 고객님 20.5%에 2천만원 까지 가능하세요!"

"아 정말요? 대박이군요! 2천만원 풀로 땡겨주세요."

"네네. 계약진행을 위한 녹취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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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저질러버렸다. 나는 과장의 권한으로 조건에 미달하는 사람을 승인해버렸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이런 사람들이 오히려 잘 갚을거야 라던지 코인에 열정이 대단한 사람이니 복구하겠지 뭐! 하고. 때마침 회사에 아무런 계약진행건이 없어서 맹강호씨의 계좌로 빠르게 입금이 되었다. 상담이 끝난지 두시간만에 입금되었으니 그 사람도 만족할것이다. 나는 괜시리 그사람을 독려해주고자 전화를 걸었다.

"유케이 저축은행입니다 고객님. 입금 잘 들어가셨나요?"

"네. 지금 갓팍스로 환전까지 했어요. 벌써 8500불이에요."

"아 정말요?"

"제가 말했잖아요 바닥이라구. 이제 오를일만 남았죠. 비트갓스로 보내고 있습니다. 100배 마진을 걸려구요. 오 전송시간도 빨라!"

"근데.. 고객님.. 2천만원을 전부 하시려는건 아니죠?"

"네. 기존에 0.2비트 정도가 있어서 2200만원 정도 하려구요. "

"물론 잘되시면 좋겠지만은 너무 위험한거 아닌가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죠! 더군다나 이건 완벽한 떡상장이라구요. 바로 시장가 풀매수했습니다!! 야호!! 가즈아!! 다음달쯤에 중도상환 할게요 히히. 바닥을 잡으니까 너무 기쁘네요. 빠르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저는 이틀밤을 센지라 약속의 저녁 6시를 위해서 좀 자둬야 겠습니다."

"네. 성투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힘없이 전화를 끊는다. 뭔가.. 실수를 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 사람은 아마도.. 아니야! 잘 해낼꺼야. 그저 맹강호씨를 믿기로 했다. 내 일이나 잘하자.. 때마침 대출요청 2건이 동시에 들어온다. 내 실적부터 올리고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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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인과 니코틴으로 얼룩진 회사업무가 끝나고 저녁임에도 여전히 뜨거운 날씨의 열기를 느끼며 버스에 오른다. 누군가를 상담해야 하는것은 참으로 피곤한 일이다. 이렇게 더운날씨인데도 에어컨을 틀지 않는 버스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걸까.. 아 나도 차뽑아서 편하게 다니고 싶다.

문득, 나도 코인이나 다시 해볼까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분명히 저번과 저저번처럼 또 잃을것이다.. 후.. 제길.. 맹강호씨는 잘 됬을까? 100배마진이라면 1%만 떨어져도 증발하게 될텐데.. 지친 몸을 좌석에 젖히고 거래소를 들어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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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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