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 연휴가 드디어 시작되었다. 토요일도 수업이 많아서 7시가 좀 넘은 시간 퇴근을 하고 조카들을 아버지께서 함께 태워서 고향으로 내려가셨다. 그동안 못 봤던 TV 프로그램들을 보고, 공감도 많이 하면서 휴일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다. 이제 잘 시간인데, 그냥 자기 아쉽고, 또 스팀잇 내에서 리스팀도 했지만 좋아하는 분들의 감정상한 글들을 조금 읽어보면서 안타까운 마음도 들고 해서 일기라도 한 편 남기고 자려고 한다.
아직은 젊은 축에 속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도 이젠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고3 조카들을 데리고 있으며 영어도 가르쳐주고, 내가 전문적으로 가르치던 영역은 아니지만, 대학시절 과외하던 기억도 떠올리며, 그리고 국어학원 운영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국어과목도 조금 가르쳐봤는데, 그러면서 옛 시절이 생각이 난다. 내게 다시 돌아가기 싫은 시간이라고 하면 1순위가 군대, 2순위가 고3 시절이다. 돌아보면 재미있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치열하게 살았던 시절 같다.
최근 스카이캐슬이 끝났는데, 살아가는 의미가 무엇인지,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면서 성적지상주의에 목매는 현실에 대해 목소리를 낸 것 같다. 근데 이게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다.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없이 그저 경제적인 빈곤을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기 위해 당장 그 나이 때에 할 수 있는 일은 공부가 가장 가능성이 높은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공부를 조금 넓게 해석해서 국영수의 입시위주 공부 만이 아니라 기술이든 특기든 그걸 통해 소위 밥벌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키우는 일이 우선이다. 입시위주가 아닌 다른 분야의 특기를 살려서 살아가는 것 또한 결코 쉽지가 않다. 각 분야마다 공고한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고, 시장의 강자들이 이미 자리 잡고 있고, 그 속에서 자기 자리를 잡아나간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그리고 생각보다 사람들은 게으르다. 그건 인정할 필요가 있다.
가끔 어떻게 살고 싶은지 아이들한테 물어보면 놀면서 살고 싶다고 한다. 별생각 없이 쭉 살다가 보면 미래에 대한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나이만 드는 경우도 많다. 이게 현실이다. 그리고 그 현실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현재의 나의 실력이나 지식, 기술 수준과는 큰 격차가 있다. 혹자처럼 금수저라면 걱정할 일이 없겠으나 일반인들은 그냥 아이가 그저 밝게만 자라주길 바라며 방관하는 게 오히려 아이를 망치는 일일 수도 있는 일이다. 물론 드라마는 드라마고, 드라마를 재미있게 본 입장에서 드라마의 큰 취지는 공감한다. 그렇지만 현실은 또 현실이니 누구를 이기는 경쟁이 아니라 최소한 내가 자립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키우는 나 자신과의 싸움, 경쟁 이건 할 수 있게끔 하는 게 필요하고, 이를 스스로 실행하기엔 약한 의지를 가진 아이들은 이끌어줄 필요가, 어느 정도는 약간의 압박감을 줄 필요도 있다. 소위 뭐 요즘 말로 현타가 오게 해 줄 필요도 있는 것 같다.
다시 고3 시절의 그 이야기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면 나이 먹으면서 아주 많은 걸 깨닫거나 정신적으로 아주 성숙해지거나 그런 측면만 꼭 있는 것 같진 않다. 오히려 아이들보다 못한 그런 면이 생기고, 자기 생각과 고집이 강하게 자리 잡으면서 발전을 못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고. 가능성이 많고 무엇이든 도전해볼 수 있는 나이가 지나고 생활을 책임진 가장으로서의 선택지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바꾸기가 쉽지가 않은 것 같다. 물론 해보려면 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나도 어려운 시절이 불과 몇 년 전까지 있었고, 이를 이겨낸 적도 있으니 나이가 꼭 문제가 되는 것 같진 않다. 다만, 무엇에 가치를 두고, 어디에 에너지를 집중해서, 나 자신의 행복도 극대화하고, 함께 살아가며 부딪히는 다른 이들에게도 즐거움을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그리고 그 추진력을 유지해 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
10대 이후의 삶의 순간순간들을 가끔 돌아보면 너무나 부끄러운 행태를 보인 경우도 있다. 그걸 굳이 글로 써 놓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고, 또 누군가의 기억 속에 혹시 남지 않았을까 정말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일들이 몇 가지가 있다. 그런 생각이 날 때면, 내가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고, 동물적 본능을 가진, 이기적인, 그리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성향의 나약한 한 인간일 뿐이니, 그 무슨 대단한 것을 인생에서 이룰 것처럼 그리 아등바등 살지는 말고,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일은 최소한으로, 화나는 일은 우선은 일단 참고 조금 여유를 갖는, 갈등 상황에서는 더 고민하고 생각하는 그런 모습을 이상향으로 그리며 살자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내겐 즐거운 일들, 만나면 즐거운 사람들이 참 많다. 내가 누리는 문화, 살고 있는 사회, 그리고 소속감을 가진 어떤 공동체 속의 사람들을 보면 정 붙일 곳도 있고, 관심 가지며 응원해주고 싶은 이들도 있고, 공감해주며 함께 안타까워해 줄 사람들도 많다는 그런 생각을 하며, 구정 연휴는 어떤 즐거운 일들을 위해 또 시간을 보낼지 일단 자고 나서 생각하기로 하고, 이 정도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PS 이 글을 읽는 분들 모두 즐거운 명절 보내시고, 행복한 한 해 보낼 수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