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23일 낮 12:03 시작

매일 일기를 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매일 한 문장이라도 무언가를 쓴다는 게 쉽진 않다. 물론 꼭 무언가를 써야한다면 베끼면 된다. 필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문제는 자신의 생각을 담은 글을 온전히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소위 글 솜씨가 있고 잘 쓴다는 이들이 글을 못 쓰는 이유는 @kmlee님의 글에서도 조금 엿볼 수 있는 역치가 높아져서 그런 건 아닌가 싶다. 이 글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어떤 생각을 의미있게끔 전달하고 매력적으로 드러내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그 글은 그저 몇 바이트의 데이터로 컴퓨터 속 어딘가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글쓰기와 일기 쓰기가 결코 쉽지 않게 느껴진다는 건 당신의 눈 높이가 너무 높다는 그런 의미가 아닌가 싶다.

최근에는 일기를 쓰면서 날짜와 시각까지 기록을 해둔다. 언제 그 글을 쓰기 시작한 지를 적어두면 내가 한 편의 글을 쓰는 데 걸린 시간을 알 수 있으니까. 글이라고 하는 건 정형화된 작업일 수도 있지만, 어느 순간 영감을 받은 작곡가가 순식간에 한 곡을 완성하듯 그렇게 나오기도 하는 것이니까, 과연 내가 오늘 쓰는 이 글은 어떤 류의 것일까 스스로 감상하는 차원에서 날짜와 시간까지 기록해둔다. 작가도 아닌 것이 눈 높이만 높아져서. 가끔 여학생들에게 우스개 소리로 하는 농담이 있다. TV 자주 보지 말자. TV 속 연예인들만 보면 눈이 높아진다. 나만 봐라. 그리고 밖에 나가면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지 않겠는가? 어찌보면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강렬한데, 그 글을 쓰지 못하는 이들에게도 해줄 수 있는 말이 아닌가 싶다. 그냥 닥치는 대로 글을 읽되, 너무 멋진 글, 잘 쓴 글만 보며 위축되지 말자. 내가 문제를 만들면서 오답을 만들 때 써먹는 방법 중 하나인 아무런 이야기나 막 내뱉은 그런 글을 보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글에 자부심을 느끼지는 않을까? 자부심까진 아니라도 글을 자주 쓸 수 있지는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글을 굳이 써야하는 이유가 있을까? 글쎄, 이렇게 질문을 던지고 나니, 대답을 하려는 내 의식이 잠시 생각을 멈추는 것 보면, 딱 떠오르는 이유는 없지만, 또 금방 떠오르는 답은 쓰고 싶기 때문에 쓴다는 답이다. 어린 시절 국어 시간에 배운 말하기의 기능이란 글이 생각나는 데, 말하기만큼 즐거운 오락이 또 어디 있나 싶다. 누군가에게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그 즐거움, 그리고 누군가 자기 얘기를 들어줄 때의 그 즐거움. 그게 결국 글을 쓰게 만들어주는 게 아닌가 싶다.

거의 한 달 정도를 읽은 것 같기도 한데, 일기장을 뒤져 보면 나오겠지만, 베르나르베르베르의 '신'을 방금 다 읽었다. 원래 프랑스에서는 3권의 책으로 별개로 나왔는데, 국내에서는 6권짜리로, 그리고 양장본으로 다시 세 권짜리로 나왔다고 한다.

'죽음' 너머의 세계까지 상상하며 그리던 작가가 '신'의 세계에 대해선 어떤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줄까 궁금했는데, 온갖 신화와 세계사, 철학, 과학을 뒤섞어서 마침내 그려낸 결론은 다음과 같이 표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모든 것이 존재한다."

마지막 결론은 참 허무하다. 물리학에 등장하는 통일장이론 (우주의 모든 물리법칙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이론)을 인용해 3차원의 입체세계를 살고 있는 우리를 뛰어 넘는 고차원 속에 존재하는 이들을 그리다가 결국은 마지막 10차원의 세계는 결국 책이라고 하는 종이에 씌여진 세상이라는 결론을 제시해준다. 우리의 존재 자체는 소설의 한 캐릭터일 뿐이며, 양자이론에서 이야기하는 관찰자의 존재가 관찰대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를 차용해서, 우리 삶이라는 글을 읽는 독자의 관찰로 인해 우리가 책 속에 쓰여진 이야기를 계속 살아간다는 그런 결론을 제시해준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책 속에 나온 무수한 관련 내용들을 전체적으로 생각해보고 내린 결론이 바로 위에서 제시한 문장이다.

모든 세계는 우리가 그리는 대로 존재한다는 것. 우리가 상상하고 생각하는 대로 존재한다는 것.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는 게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낀 첫 감상이다.

베르나르베르베르는 스토리를 전개하는 와중에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진리의 백과사전' 이라는 항목을 집어 넣고, 아마도 이야기 전개에 영감을 받은 여러가지 과학, 신화, 사회, 역사 등의 상식을 소개해준다. 그 중 재미있는 하나가 액자소설의 구성양식이다. 미장아빔(Mise en Abyme)이라고 하는 기법인데, 책 뿐만 아니라 그림, 영화, 광고 등에서도 잘 쓰이는 기법이라고 한다. 20년 전 즈음에 이현세 만화가의 '천국의 신화'도 역시 결론을 그런 식으로 내렸던 기억이 난다.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이들이 작은 '원자(Atom)'속에서 일어난 일 뿐이라는 결론. 우주 안에 더 작은 우주가 있고, 더 큰 우주가 있다. 3차원 속의 우리 세상은 4차원 속에 있고, 우리는 그 위를 볼 수 없고, 의식도 할 수 없으나, 그 위에선 우리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으며, 그 상위차원의 존재가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내더라도 우리는 기존의 인식체계에 갇혀 있어 이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다는 그런 이야기다.

이 책은 위의 사례와 같은 그런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곁들여져서 신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어떨까라는 구상을 구체적으로 풀어낸 이야기인데, 역시 작가나 글을 쓰는 이들은 그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 엄청난 독서를 한 사람들임을, 그리고 그 이야기의 전개를 독자들이 궁금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타고난 이야기 꾼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난 드라마나 영화도 아주 좋아하는 데, 어쩌면 글쓰기를 좋아하는 내 속에도 그런 이야기 꾼이 되고 싶은 욕망이 제발 자기를 쳐다봐달라고 아우성치는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을 헛되이 해보며, 일단 여기까지 오늘의 일기는 끝!!!

가즈앗!!!

PS 대략 30분 정도 걸려 쓴 글이다. 글쓰기는 확실히 어렵고 고된 작업인 것 같다. 그리고 요즘은 busy로 다시 수정하지 않는다. 요즘 에러가 많이 나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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