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비우는 연습이 필요한 때 - 2018년 한 해를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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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한 해가 다 지나간다. 이제 24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하루도 주말의 여유를 그저 영화를 보며 즐겼다.

두 편의 영화를 봤다. 하나는 영화평이 꽤 좋은 '완벽한 타인'이다. 이 영화 제목은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해할 수 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인 줄 알았던 가족과 친구가 너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을 짧은 저녁식사 자리의 진실게임을 통해 알게 되는 스토리가 그 주를 이룬다. 영화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보다는 영화에 대한 리뷰글을 읽다가 어느 블로거가 쓴 글에 '한남'이라는 용어 사용에 대한 사람들의 공격과 그에 대한 방어 내지 변론 혹은 반대의 공격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며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왜 그럴까?

한 때 유행한 용어 중 김치녀, 된장녀 등의 용어가 있다. 어떤 이들은 그 용어의 의미 차이를 구별하는 방법을 설명해 주던데, 난 이런 용어 사용이 성대결적 측면보다는 이루지 못한 욕망에 대한 분노의 표출을 희화한 단어라고 생각한다. 실제 대면해선 꺼내지도 못할 이야기들을 거리낌 없이 익명의 공간, 혹은 만날 일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또는 자신이 설정한 가상의 어떤 대상들에게 사용하는 용어가 아닌가 싶다. 따지고 보면 자기 가족과 친구들도 그 범주에 일부 포함될 수 있는 성격적 요소가 있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난 인생에 불만이 많다. 뭔가 잘 풀리는 일이 많은 것 같으면서도 올해처럼 안 풀리는 일도 많은. 그리고 아마도 이루지 못한 여러 가지 욕망들이 잔뜩 쌓여 있는데, 이를 해소할 방법은 없는 그런 심적 상태를 늘 겪는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내가 가진 불만의 모든 원인은 결국 나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 비난의 대상을 자신이 아닌 타인, 사회 탓으로 돌리는 것도 나쁘지 않고, 실제 그런 면이 없잖아 있는 것도 사실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정신승리라는 재미있는 용어로 표현되는 자기 긍정 역시 삶을 살 때 꼭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현대 사회가 다원화된 사회라는 게 피부로 와 닿는 공간이 인터넷 공간이 아닌가 싶다. 얼마 전 어떤 분의 글에서는 의견 과잉의 시대라는 표현을 보았는데, 오늘 본 영화 대사처럼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하는 것까지는 이성으로 머리로 할 수 있으나 실제 삶을 함께 살아가야 하는 입장에선 정말 머리 아픈 일이 될 수도 있고, 마음이 내키지 않는 불쾌한 시간을 겪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보통 나이가 들면 사람들의 생각은 굳어지고 잘 바뀌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한다. 나도 늘 느낀다. 나 자신한테도 느끼고. 그런데 정말 내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삶을 재미있게 만들어나가는 방법을 고민해보니 결국은 욕심을 가지되, 이루지 못할 일이나 이루지 못한 일에 대한 미련은 버리며 사는 게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원하는 목표치가 있었으나 달성 못했을 경우 그 원인을 찾는 일도 그다음 도전을 위해선 중요한 일이겠지만, 그게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어서 마음 한편이 계속 뭔가 꿍한 그런 느낌. 이걸 떨쳐낼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얼짱, 몸짱 시대에 이어서 생각짱, 마음짱 이런 용어도 곧 등장하지 않을까 싶다.

자기의 감정을 다스리며 사는 법을 익히면 하루하루 보내는 시간이 즐겁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 다시 본 오락영화 'Avengers: Infinity War'를 보면서 인상 깊었던 대사 하나가 "We don't trade lives."이다. 생명은 거래의 대상이 아니다. 대단한 말은 아니지만 살아서 생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축복이라는 생각 한다. 생각하고 느끼고 그리고 그걸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적어도 내게는 행복의 1순위가 아닐까 싶다.

또 하나 들었던 생각은 악당 타노스가 가진 생각, 우주의 유한한 자원에 비해 생명체의 수가 지나치게 많아 멸망하게 되는 시나리오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종족학살을 하는 해결 방식이다. 그런데 저런 해결 방식을 찾는 이들은 절대 자신이 그 학살의 대상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래서 공감능력이 정말 중요하다. 내가 직접 겪어 보지 못한, 내가 그 당사자가 되지 못한 일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하면 너무나 냉정해질 수 있는 게 사람이고, 사회다. 그리고 나도 나이가 들며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스스로 위로하긴 하지만 대단히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다. 공감능력이 아닌 공감의 기회, 시간, 혹자는 또 감성팔이라는 용어로 폄하하기도 하는 그런 개개인들의 삶의 이야기들에 대한 공감능력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 결국 올 한 해 개인적으로는 이루고 싶은 일 중 원하는 만큼의 성과를 거둔 것은 별로 없다. 그래도 앞으로 맞이할 또 다른 1년을 준비하는 자세로 스스로의 욕심에 대해서는 '마음을 비울 준비'를 하고, 타인의 어려움에 대해선 '공감할 수 있는' 사람 같은 사람이 되자라고 스스로 되뇌며 오늘의 일기는 마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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