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시절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어떻게 그냥 참고 견디며 살았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던 대학시절이다. 그 시절 힘들었을 때 날 도와줬던 누이가 있다. 같은 교회에 다니던 누이였는데, 군대 가기 전 잠깐 얼굴 보고 인사를 하며 이야기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 벌써 고2 자녀를 둔 학부모가 되어 내게 갑작스럽게 연락을 해왔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인사를 했는데, 누이가 그때 도와줬던 기억을 이야기하며 지금 자신이 아주 곤란한 상황이라며 도와달라고 한다.
무려 20년이 지난 시점이라 사실 그 당시 내가 어느 정도 도움을 받았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너무 급한 것 같았고, 또 누이가 실망하며 서로 기억하는 게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라는 이야기에 동해서 내 코가 석자지만 우선 바로 도움을 주었다. 사실 다시 연락이 된 것만 해도 너무 반가웠다. 이젠 각자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이들이라 연락이 뜸하다 못해 끊어지기가 쉬운데, 이렇게 다시 연락이 된 것만 해도 내 마음은 충분히 족하다. 그리고 그 당시 도움을 받은 후에 잊고 살아왔던 게 미안했는데, 이렇게라도 먼저 도움을 청해 조금이나마 그 은혜를 갚을 수 있게 되니 그것도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20년 전의 기억. 그 시절이 글쎄, 그렇게 다시 돌아가기 좋은 시절은 아니다. 너무나 철없던 시절이었고, 너무 무의미하게 보낸 시간이 많다. 몸은 늙었지만 차라리 지금이 더 낫다.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는 시간들은 적어도 내가 생각할 땐 열심히 살고 있는 시간들이고, 의미 있게 보내고 있는 시간들이다. 그런데 그 시절을 돌아보면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시절 일기장은 어디로 갔는지 모두 사라졌고.
어찌 보면 죄를 많이 짓고 살았다. 그 죄라 함은 내게 주어진 시간을 의미 있게 열심히 살지 못한 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어머님을 모시고 살지만, 어쩔 때 가만히 어머님을 생각하면, 너무도 내게 헌신적으로 살아왔던 그 모습이 새록새록 떠 올라 가끔 그냥 눈물이 날 때도 있다. 이게 꼭 40대 이후 남성호르몬이 줄어들어서 생기는 효과만은 아닐 것이다. 아직도 불같은 성격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걸 보면 호르몬의 변화라기보다는 이제는 늙어서 할머니가 된 어머님의 모습과 어린 시절부터 대학에 다니던 시절까지 그 당시 어머님이 살았던 모습을 떠 올리면서 그저 자식 하나 잘 되길 바라며 사는 게 어떤 건지 어렴풋이 느껴질 것 같아서 나오는 그런 눈물일 것이다.
누이는 남이다. 그런 남인데도 불구하고 참 정이 많았던 사람이다. 유난히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온정을 베풀었던, 나름 한 성격 하며, 자기 주관이 뚜렷했던 멋진 모습이 주로 기억이 나는데, 잘 살고 있었으리라 생각했는데, 물론 아주 그렇게 어려운 상황은 아니겠지만, 20년이 더 지난 그 빚을 갚아줄 내가 필요해서 연락을 해 온 걸 생각해보니 참 내가 너무도 무심하게 살았단 생각이 든다.
마음의 욕심을 많이 거두었다고는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난 열심히 일하며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렇게 사는 이유는 그렇게 타고났기 때문에 그런 면도 있고, 그게 재미있어서 그런 것도 있고, 이젠 무의미하게 보내는 시간을 줄이고 풍성하고 의미 있게 살고 싶기에 그리 살고 있다.
여유가 되어 한 번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옛 인연들이 가끔 생각이 나는데, 딱히 기억나는 고마운 분들 중에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사림이 그 누이인데, 오늘은 괜히 기분이 싱숭생숭한 하루다. 그리고 개인사가 잘 해결되어 건강하고 즐거운 모습으로 조만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