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율표] 쁘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번역, 1975년 작, 2007년 번역, 돌베게 출판
얼마전, 주디스 버틀러의 [지상에서 함께 산다는 것]이라는 책을 펼치다가 쁘리모 레비, 그의 이름을 발견했다.
(읽기 전과 후가 전혀 다르지 않아서 주디스 버틀러의 책은 읽은 것이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주디스 버틀러의 책은 더이상 도전하지 말아야겠다는 씁쓸한 다짐을 하고, 대신 쁘리모 레비, 그의 책을 다시 읽었다.
쁘리모 레비의 [주기율표]는 2007년에 처음 읽었다.
'에세이 책인데 제목이 주기율표?'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히 생뚱 맞은 제목이라 일단 책날개를 펼쳤다.
이탈리아 출생의 유대인 화학자
아우슈비츠 생존자
현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작가
그의 이력은 나에게 낯선 세계였다.
10년도 더 지나서 주디스 버틀러의 책에서 다시 그의 이름을 발견했다. 그때는 몰랐던 그의 면모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을까? 기뻤다기 보단 아련했다.
그때는 [주기율표] 이 한권이 유일하게 번역되어 있었는데 이번에 다시 찾아보다 보니 2010년 이후 그의 책이 본격적으로 번역되기 시작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덕분에 읽을 책 목록이 늘었다.
목차 또한 에세이라기엔 생뚱 맞아 보인다.
끝까지 읽은 에세이집은 대부분 누군가에게 권하고 싶을 만큼 좋은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끝내 에세이를 멀리 하지 못하게 된다.
어느 분야든 그 끝은 결국 다 만나게 된다는 말,
화학자로서 2차세계대전 즈음을 살아내는 유대인 연구자의 삶을 읽다보면 그말을 떠올리게 된다.
이 책은 화학 원소에 대한 이야기면서 삶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물질을 연구하면서 삶을 성찰한다.
우리가 숨쉬는 공기 속에는 이른바 비활성 기체라고 하는 것들이 있다. ··· ··· 이들은 정말로 활성이 없어서, 그러니까 자신들의 처지에 만족하고 있어서 어떤 화학 반응에도 개입하지 않고 다른 원소와 결합하지도 않는다. - [주기율표], '아르곤' P. 7.
'아르곤, 비활성 기체' 그는 아르곤에서 이탈리아에 정착해 비활성 기체처럼 살아온 유대인 선조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스라엘 건국 이전의 유대인들의 삶.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없는 그들의 낯선 세계를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그리고 또한 이 책을 통해 증언문학이라는 장르의 존재를 알았다.
수용소는 우리로 하여금 위험이나 죽음과 말도 안 되게 친밀해지도록 해주었다. 또 조금이라도 더 먹기 위해 교수형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논리적인, 뿐만 아니라 너무나 뻔한 선택처럼 보였다. - [주기율표], '세륨' P.213.
아우슈비츠에서도 살아남은 그는 1987년 자살했다.
급진적 시오니즘을 경계했고, 더 나은 인류의 삶을 바라며 아우슈비츠의 고통을 증언하던 그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역사에 기록되는 인류의 비극, 그것이 더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노력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 피해자들에게 가장 큰 희생을 요구하는 아이러니, 증언.
여기서도 거기서도 증언하는 사람의 고통에 비하면 세상은 너무 무관심했고, 무관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