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폭력이 되다, 어느 감독에게 실망 - by Tiziano




Art or Violence


예술과 폭력



흔히 예술과 외설 그리고 폭력의 경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곤 한다.

그리고 예술인의 뛰어난 업적과 그의 사생활, 인성이 문제가 되곤 한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빡빡한 기준을 요하지는 않더라도 예술을 빙자한 변태짓이나 또라이짓은 무조건 배척해야한다고 본다.

그 기준이 무엇이냐?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바로 경계점이다.

좀 더 법적인 용어로 정의내리자면 '타인의 인권을 침해한 경우'이다.




나에게는 거의 인생영화다 싶은 영화가 있다.

바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마지막 황제(The last emperor, 1987)'이다.

중국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아이신줴러 푸이의 극적인 삶을 예술로 승화시킨 영화로 몇 번을 반복해서봐도 그 감동이 옅어지지 않았었다. 영화의 감동이 너무나 컸던 나머지 감독에게도 경외심이 들었었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이탈리아 출신 감독으로 이 영화 이외에도 몽상가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등 문제작이자 유명작을 만들어낸 사람이다.

문제는 바로 그의 72년도 작품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Last tango in Paris, 1972)'이다.




이 영화는 개봉할 때부터 꽤나 문제작이었다.

미국 영화계의 대부인 말론 브란도와 프랑스 출신의 신예 배우 마리아 슈나이더가 주연한 영화로 존재의 허무와 단절된 관계속에서 소통을 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렸다.

사실 대략적인 설명만 이렇다할 뿐이지 실제로 영화를 보면 뭘 말하는지도 모르겠거니와 집요하게 젊은 여인인 잔느(마리아 슈나이더)의 육체만 쫓는다는 느낌이 강하다.

문제는 여기서 불거졌다.

남주 폴(말론 브란도)이 잔느(마리아 슈나이더)와 억지로 관계를 맺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이 사전에 합의가 안 된 실제 성폭력이었다는 것이다.




말론 브란도는 당시 47세였고 마리아 슈나이더는 그만큼의 커리어도 없어서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생짜 신인이었는데 더군다나 19살이었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은 사전에 마리아 슈나이더와는 상의하지 않고 오직 말론 브란도와만 이 씬을 찍기로 합의를 하고 강제적으로 촬영했다고 한다.

'마리아가 그 장면을 연기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여성으로써 당혹스러움과 수치스러움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를 바랬다'라는 X소리를 했다.

이건 범죄다.




아래는 35년 후에 마리아 슈나이더가 밝힌 인터뷰이다.

"It's amazing. I've made 50 films in my career and Last Tango is 35 years old, but it's still the one that everyone asks me about," she says.
놀랍네요. 난 50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35년 전 영화예요, 그런데 아직도 모든 사람들은 나에게 그 영화에 대해서만 물어봐요.

"People still recognize me in the street and say I haven't changed, which is good. However, I never went naked in a movie again after Last Tango, even though I was offered many such roles. People today are used to such things but when the film opened in 1972, it was scandalous."
사람들은 아직도 나를 길거리에서 알아보고 내가 하나도 안 변했다고 말해요, 그건 좋아요, 하지만 난 그 영화 이후로 다른 영화에서 노출을 한 적이 없어요, 수 많은 역할을 권유받았어도 말이죠. 요즘 사람들은 그런 것에 익숙하지만 그 영화가 개봉되었던 1972년에는 논란이었어요.

"I watched it again three years ago after Marlon died and it seems kitsch," she exclaims.
말론 브란도가 죽고 난 뒤인 3년 전에 그 영화를 다시 봤는데 그냥 '저질 영화'였어요.

"That scene wasn't in the original script. The truth is it was Marlon who came up with the idea," she says.
그 강제씬은 원래 대본에는 없었어요. 사실은 말론 브란도가 그 아이디어를 냈어요.

"They only told me about it before we had to film the scene and I was so angry. I should have called my agent or had my lawyer come to the set because you can't force someone to do something that isn't in the script, but at the time, I didn't know that.
그들은 그 씬을 찍기 바로 전에 나에게 그걸 말했고 난 매우 화가 났어요. 누군가에게 억지로 대본에도 없는 그런 것을 찍게 하면 안되는 거니까 그때 난 소속사나 변호사를 불렀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어요. 그런 걸 몰랐어요.

"Marlon said to me: 'Maria, don't worry, it's just a movie,' but during the scene, even though what Marlon was doing wasn't real, I was crying real tears.
말론 브란도는 나에게 '마리아, 걱정하지마. 이건 영화야'라고 말했지만 그 씬을 찍는 동안, 말론 브란도가 진짜로는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난 정말로 눈물을 흘렸어요.

"I felt humiliated and to be honest, I felt a little raped, both by Marlon and by Bertolucci. After the scene, Marlon didn't console me or apologise. Thankfully, there was just one take."
난 매우 수치스러웠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베르톨루치 감독과 말론 브란도에게 약간 당했다고 느꼈어요. 말론은 나를 위로하거나 사과하지 않았어요. 다행히도 원 테이크에 끝났지만요.




아무것도 모르는 19세의 미성년자가 47세의 남자에게 억지로 당하는 씬을 합의도 없이 찍었고 그 와중에 진짜 눈물을 흘렸다.

가관으로 그런 필름이 몇 십 년 동안 전세계에서 계속 상영이 된다.

이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도 그녀에게 전혀 사과하지 않았다고 한다. 더 심하게 말하자면 '마리아 슈나이더에게 개인적으로는 유감이지만 그 씬을 찍은걸 후회하지는 않는다'라는 폭력적인 말을 했다고 한다.

이건 범죄다.

그리고 저 영화는 예술이 아닌 그저 저질 스너프 필름일 뿐이다.

이후 마리아 슈나이더는 배우로써 위축된 삶을 살아야 했다고 한다. 원치 않게 섹스심볼이 되어버린 탓에 곤란한 상황을 많이 겪었고 소속사에 등 떠밀려서 저 영화를 찍은 것을 무지하게 후회했다고 한다.

원래는 저 영화 대신 알랭드롱과 함께 청춘영화를 찍으려고 했으나 소속사에서 '말론 브란도와 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식으로 무리하게 부추긴 탓에 합류하게 되었다고 했다. '왠지 느낌이 안 좋다'라고 느꼈는데 그 직감이 진짜였다고도 털어놓았다.

마리아 슈나이더는 이후로 스트레스를 받은 탓에 약물중독에도 빠지고 암에 걸려서 50대 초반에 일찍 숨을 거두었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젊고 건강한 19세의 마리아 슈나이더와 사망 직전 50대의 그를 보노라면 마음고생때문에 너무나 변해버린 외모가 측은함을 더해준다.




아... 이건 범죄다.

저 사실이 밝혀지고 난 후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필름 전체를 소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런건 예술도 아니고 영화도 아닌 단지 미성년자를 유린한 스너프 필름이다.

예술은 무슨놈의 예술인가? 남의 인권을 짓밟아놓고 남의 인생을 망쳐놓고 돌이킬 수 없는 후유증을 덤으로 주었는데 그 어떤 좋은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역으로 본인이 당해도 그런걸 예술이랍시고 말할 수 있는가?

이후 반성의 기미도 없이 계속해서 자신의 커리어에만 몰두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행보는 2차 가해와 다름없다.

이런 사람이 만든 영화 '마지막 황제'를 내가 오랫동안 좋아했다니... 후회가 된다.

이런 사람이 예술가로 칭송받고 인정받고 많은 돈을 벌고 승승장구 할 동안 마리아 슈나이더를 비롯한 피해자들의 마음에 얼마나 피멍이 들었을지 상상조차 하기 싫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선부터는 예술이 아니라 폭력이고 범죄일 뿐이다.

폭력과 범죄를 그 어떤 감성으로든 소비해서는 안되며 감상해서도 안 된다.

좀 된 이야기인데 한국에서도 이런식으로 합의되지 않은 강제씬을 배우에게 억지로 찍게 하거나, 맨손으로 차 유리를 부수게 해서 부상을 입히거나, 고문당하는 역할을 맡은 배우에게 진짜 고문을 가해서 큰 일 날뻔한 적이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다른 길이 있다'라는 영화에 출연한 배우가 '감독의 요구에 의해 실제로 연탄가스를 마셨다'라고 말한 인터뷰를 보고 아연실색하기도 했다.

리얼리티로 얻어지는 생동감을 원했다는 것이 감독의 변론인데 진짜 작품을 위한 것인지 불필요한 가학추구인지 모르겠다.

예술과 폭력의 경계가 아직 분명하지 않고 그 점을 이용해 배우를 착취하는 준범죄자 감독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예술인 인권법조항'이라도 만들어져야 좀 근절되려나?

고 마리아 슈나이더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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