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거짓은 큰 거짓을 낳는다 (검찰의 세월호 7시간 발표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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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출처 <피노키오의 모험>,월트디즈니

어린 시절, 저는 부모님께 거짓말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엄격하고 꼼꼼하셨던 부모님은 삼남매인 저희들에게 몇가지 생활의 규칙을 두셨는데, 예를 들면 인사를 잘한다, 존대말을 쓴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늘 공손한 태도를 갖는다, 신발을 벗을때는 가지런하게 둔다, 젓가락질을 바르게 한다, 식사 시간에는 TV를 보지 않는다, 등등 그냥 어느 집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어느날 치약이 늘 엉망으로 사용되는 것을 보시고 치약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셨지요. “치약은 끝에서부터 짜서 쓰는거다.” 너무나도 당연하고 간단한 규칙이었지만 습관이 들지 않은 저는 그걸 지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전혀 아무 생각 없이 중간을 쭉 짜서 쓰고는 잊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식사 시간에, 어머니가 물으셨어요. “오늘 치약 중간을 짜서 쓴 사람이 누구지?” 아무도 대답이 없었고, 저 역시 가만히 있었습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짓을 했다는걸 기억도 못했었고, 그게 잘못되었다는 생각도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식사가 중단될 정도로 분위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되고 나니, 제가 그랬다는 사실이 기억나고 난 뒤에도 사실을 말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후로도 몇 번이나 웃는 얼굴, 혹은 화난 얼굴로 저에게 묻는 부모님께 저는 제가 그 짓(?)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도 안되는 변명으로 장황한 거짓말을 덧붙여 가면서 끝까지 사실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거짓말을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 점점 반복하게 된 상황에 도저히 입을 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는데, 그 후 부모님이 이 사실을 더 이상 저희 남매 앞에서 말씀하시지 않았고, 잊혀진 사건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약간의 성취감(?) 같은 것도 느꼈습니다. 부모님의 억압에 대항하고 나만의 비밀이 생겼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보상심리 같은 것이었는데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무거웠고, 마음이 너무나 불편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한달 정도 지난 뒤에 우연히 부모님 두 분이 나누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씽키(물론.. 실제로는 제 이름...;;)가 그런게 분명한 것 같은데. 끝까지 아니라고 하니, 이걸 어쩌죠?”
“허, 그녀석, 아니 어쩌자고 거짓말을 하는거야...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걱정이네... 저렇게 계속해서 거짓말을 하게 된다면 그게 정말 큰일인데...”
“그러게요. 게다 저 아이 얼굴 좀 보세요. 심각해가지고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초등학교 진학도 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나름대로 거짓말에 성공했다고 생각했던 저는 부모님의 그 대화가 정말이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내가 끝까지 숨긴 사실을 어떻게 부모님이 아신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어린 시절 부모님들은 말하지 않은 모든 것을 알고 있어 때때로 신의 관점을 지닌 전지전능한 대상으로 느껴지는데, 바로 이런 사건들 때문이겠지요 ㅠㅠ)

그리고 저는 치약을 대충 짜서 쓴 것에 대해 혼나기 싫어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인데, 부모님은 그게 아니라 제가 거짓말을 하고 끝내 입을 열지 않는 것에 대해 걱정을 하고 계신다는 것을 보고, 제가 뭔가 큰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미 사실을 다 알고 계시면서도 제가 상처받을까봐 아무 말씀도 안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런 거짓말은 저나 부모님 모두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그야말로 “나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래서인지 그 작은 사건 이후로는 치약도 꼭 뒤에서부터 짜서 쓸 뿐 아니라 제가 좀 곧이곧대로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받은 큰 충격으로 형성된 가치관이다 보니 지금까지도 이런 버릇을 고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제가, 농담을 다큐로 받는 일이 있더라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 부탁드립니다 ㅠㅠ)


어제 검찰에서 밝혀진 세월호 7시간의 비밀이 주요 이슈로 다뤄지는 뉴스들을 바라보면서, 참 씁쓸한 마음을 감출수가 없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짓말.

사건의 골든 타임이었던 그시간까지 침실에 있었고, 실제 보고는 두 번 밖에 받지 않았으며, 중대본 방문 조차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최씨의 조언이 필요했던 그녀.

어쩌면 그녀에게는 그저, 치약의 중간을 짜서 쓴 어린아이의 마음처럼, 늦잠 좀 잔 것이, 외출하면서 미용사 불러 머리손질 좀 한 것이 뭐 그리 큰 잘못이냐는 억울함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사생활이 지켜져야 한다며 인권을 주장하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로서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지만, 그리고 많은 분들이 아직까지 분노하고 계시지만, 그의 말이 맞다고 칩시다. 대통령이라도 사생활이 필요하며, 그 사고가 대통령 본인의 잘못은 아니었다, 여성으로서의 최소한의 사생활을 지켜줘야 한다, 관계부처의 대응이 문제지 대통령이 그럼 모든 사고 현장에 가 있어야 하느냐... 이러한 대꾸조차 하고 싶지 않은 모든 변명을 그렇다고 쳐 봅시다.

하지만, 아직도 자신이 공주라고 생각하는 그녀의 본인의 입장으로서는 사생활을 지키고 싶어서 아주 작은 거짓말을 했고, 그 거짓말은 수십명 관계부처 공무원들과 나아가서는 청와대라는 한 국가의 대표적 기관이, 한 나라의 모든 국민들은 물론이며 국제무대를 대상으로 해서 큰 거짓말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책이 있었지요. 저는 이 말이 정말 딱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아기에 배운 습관이 평생을 좌우하게 된다는 것은 진실입니다.

거짓말을 하면 안된다라는 것.

어린아이가 거짓말을 한다고 하면 얼마나 큰 거짓을 말하겠습니까. 그저 아주 사소하고, 그냥 넘어가도 상관 없는 조그마한 것들 이겠지요. 하지만 그것이 한 두 번 용인되고, 부모나 주변의 그 누구도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일러주지 않는다면, 심지어 부모들도 자신의 지위와 신분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면, 이 어린이의 장래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동화 속의 공주님처럼 모든 행동이 용서되는 성 안에서 16년을 지내고 이후 비극적으로 부모를 잃고 정치권이라는 세계에 발을 담그며, 어쩌면 일부 무리들의 수단으로 이용되었을지도 모르는 그녀. 그래서 태극기를 든 그 분들은 그녀가 불쌍하다고 그렇게도 외쳐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추측할 수 있는 사실은, 그녀는 어린시절 잘못된 작은 습관들로 인해 죄책감 없이 거짓을 말하게 되었고, 어느 순간 자신이 말하는 모든 것이 진실이라고 믿게 되었을 거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반복된 그 "작은" 그러나 누군가에겐 결코 "작지않은" 그 거짓들이 모이고 뭉쳐, 더이상 수습할 수 없는 큰 거짓이 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녀가 거울 방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말했던 "작은" 거짓과, 주변의 무리들이 그것을 덮기 위해 공들이며 "큰 거짓"으로 둔갑하여 조작되는 동안 물거품으로 사라진 수백명의 목숨이 덧없고 허무하게 느껴지는, 가슴아픈 저녁입니다.


그리고 본문과 전혀 관계없는 그간의 이야기

오랜만에 해킹사건과 관계없는 글을 남깁니다.

지난주말 저는 해킹사건에 감사함을 표하기 위해 시행했던 이벤트를 정리하고, 그동안 다녀왔던 전시 두개를 소개하려고 사진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족장님의 댓글로 또다시 알 수 없는 다운봇을 당하게 된 것을 알게되고, 분노를 감추지 못했었는데요.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개발자가 아닌 저로서는 그냥 추측만 가능한 수준에서) 스패미네미터의 오류가 있었으며 지금은 바로잡혔고, 더이상 제가 스캐머로 오인되지는 않을것이라는 당연해야 하는 안도감을 가진 채, 그들이 실수로 가져간, 이웃분들이 금모으기 처럼 모래알같은 보팅으로 모아주신 제 명성도를 돌려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스패머네이터는 시스템상 플래그만 가능하고 업보팅은 불가하기에, 제 명성도를 되돌릴 수 없으며, 팀의 친구들을 모아 도와주겠다던 그들의 약속은 언제 지켜질지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몇명이 와서 100% 풀봇을 해 주었습니다만 아직도 제가 잃은 것을 다 되찾진 못했습니다)

물론 잃어버린 명성도 때문에 제가 글을 못썼던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아무리 애초에 비번을 탈취당한 잘못이 제게 있었다고는 하지만 저는 사건 당시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무고함을 분명히 밝혀 블랙리스트에서 제외되어 있었고 이렇게 다운보팅을 당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반응은 좋은 일 하다 생긴 일이니 좋은게 좋은거라고, 제 이웃분들께 씽키는 해커가 아니니 보팅을 좀 해주라고, 자기네 팀에는 스파가 높은 사람을 찾기 어렵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어쩐지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아무 글도 쓰고싶지 않고, 보팅도 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그렇게 생각지 않으실 줄 알면서도, 저의 약간의 결벽증 때문에, 뭔가 제가 포스팅 하는 것이 보팅 받아 명성도 되찾으려는 행동처럼 느껴져 싫었거든요... 그렇다고 한번 쓰려면 몇시간씩 걸리는 글을 매번 디클라인 걸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족장님 @hsuhouse0907님의 말씀대로 우리가 스파가 없지 가오가 없냐며, 끝까지 버티고 이겨내라는 말씀, 그리고 한 사람의 억울한 죄인 을 만들지 말라는 글로 클레욥님을 소환해 주셨던 @sintai님, 저를 비롯한 힘없는 뉴비들을 위해 동분서주 애써주신 클레욥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노력과 응원,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흐지부지 지나가고 있어도 말 한마디 하기 조심스러운 저는, 아직 불편한 생각이 모두 제자리를 찾지도 못했고, 평소 제가 하던 이야기를 다시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서 어느정도 시간이 걸릴런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뉴스를 보면서 떠오른 생각을, 문득 오랜만에 글로 옮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포스팅 남겨 봅니다.

그리고 언제 다시 평소의 미술관련 포스팅으로 돌아올거냐고 물어주시는 고마운 이웃분들께 변명아닌 변명 길게 남겨 봅니다.

오늘도 길어진 글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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