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미술은 ‘개밥의 도토리’가 되었나? (#3_교육에 있어서 미술의 현실과 약간의 제안, 그리고 마무리)

원래는 지난 편에 맺으면서 언급한 최근 몇 년 간 우리나라 대학의 구조조정과정을 좀 살펴보면서, 우리 사회가 인문과 예술이라는 장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리고 교육에서 “예체능은 옵션일 뿐”이라는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예술은 앞으로도 상황이 바뀌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곧 할꺼다;;)

그런데 정말 많은 분들이 현대미술의 난해함으로 인해 예술에 대한 관심 자체를 가지기 어렵다는데 대한 성토(?)를 해 주셔서, 그에 대해서는 시간이 혹은 영감(?)이 허락하는 대로 따로 포스팅할 예정이지만 잠깐 짚고 넘어가보려고 한다.

잠시 쉬어가는 페이지 (현대미술은 왜...)


Hans-Peter Feldmann.JPG

차마 국내작가의 작품으로 소개하지 못하고, 외국 작품으로 소개한, 난해하다고 판단되는 설치미술 작품 Hans-Peter Feldmann, K21, 아티스트의 공간

맞는 말씀들이다. 현대미술, 어렵다. 일반인이 다가가기에 거리감이 너무 심한 경우도 많고, 미술계나 몇몇 미술관, 콜렉터들의 관점에만 감성이 맞춰져 있는 경우도 흔하다. 내가 봐도 어떨 땐 그래서 어쩌란 말인데, 하고 황당하다. (결코 위의 저 작품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ㅠㅠ)

대체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가 겪어서 체득한 문화가 아니라서 그렇다. 이에 대해 이야기 하려면, 전문적인 미술사 까지는 아니더라도 포스팅 한두 개는 해야 그래도 “아~ 그렇군. 그럴 수 밖에 없었겠군” 하실 것 같아서 잠시 보류하고, 그냥 여기서는 현대미술의 기반을 이루는 미학 자체가 서양의 것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쉽게 이해하고 좋아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것들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현대미술을 당장 좋아해 달라고 생떼를 쓰지는 않겠다 ㅠㅠ

설명이 너무 부족한 것 같아 부연해서 이야기 하자면, 우리나라 현대미술은 “뿌리가 없다”라고 감히 말씀드리겠다. 그래도 우리나라의 미술사라는 것이 있는데, 이러면 안 될 것 같아 더 부드럽게 이야기 하자면, 뿌리는 있되 허리가 잘려나간 미술이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이라는 아픔을 겪으면서. 그리고 나서 물밀 듯이 밀려온 서양미술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가장 가까운 일본 등지에서 서구식 교육을 통해 미술을 배워서 베끼기식으로 작업했던 세대에게서 다음 세대로 넘어갔기 때문에 자꾸만 무너지는 모래성을 쌓고 있는 작가들이 이렇게나 많은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고, 현재의 변화를 적절히 받아들여, 공감할 만한 작품을 하는 작가들도 많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포기하기는 이르다고 생각한다. 이런 작가와 그들이 품어낸 작품들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다. 그리고 그들이 당장 세계무대에서 팔리는 “비싼 작품”을 그려내는 “현대미술” 작가들이 아닐지라도 “좋은 작품”으로 인정받는 작가로 성장했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나의 바램이다.

중국만 해도 마찬가지로 전통화와 현대미술이 극명한 차이를 보이지만, 그들이 지금 국제 현대미술시장에서 각광받는 이유는,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며 부호로 성장한 이들이 자국 작가의 작품들만 구매하면서 가격을 높이고 유명작가로 만든 뒤 세계무대로 내보냈기 때문이다. 이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결국 우리도 우리의 작가를 우리시장에서 키워내기 전에는, 세계무대에서 경쟁하며 인정받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예술은, 인문학은 옵션인가?


인구가 줄어든다고 자녀를 낳으면 이러저러한 보상을 해준다는 정부 차원의 광고가 보이기 시작하던 십여 년 전 부터였던 것 같다. 대학이라는 상아탑은 더 이상 교육의 장소가 아닌, 수익률이 훌륭한 사업수단이 된지 오래였고, 경제 활성화에 따른 등록금 상승으로 한동안 “대학 재벌”이라고 표현할 만큼 많은 돈을 벌어들였던 사립대학이 나오기도 했고, 너도나도 대학을 열어 환한 미소로 학생들을 받아들여 등록금을 수거하기에 바빴다. 거품이 빠져도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은 등록금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최근의 기사들을 보면, 인구 감소로 인해 학령인구가 감소되면서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났던 대학들이 인기가 없는 순으로(혹은 취업률이 낮은 순으로) 문을 닫게 될 형편이다. 문을 닫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정원을 감축하여야 한다. 이런 환경에서 대학들은 정부 보조금을 더 많이 따내 수익을 보전할 수 있는지 연구하는 집단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그렇게 어렵게 공부해서 겨우 안정된 직장을 얻은 대학 교수들은, 특히 젊은 층의 교수들은 희생양이 된다.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혹은 자신의 연구를 위해 보내야 할 시간의 대부분을, 보조금 사업 아이템을 짜내기 위해 골머리를 썩여야 한다.

그뿐 만이 아니다. 자리를 보전하고 살아남기 위해 학제를 개편하고 단과대학의 이름을 이상야릇하게 바꾸기도 한다.

“크리에이티브 인문예술대학” “인문예술스포츠과학대학” “예체능대학”

이것이 무엇인지 아는 분들은, 아마 대학 교육 제도에 관심이 있는 분들일 것이다. 인기가 높은 취업률이 보장되는 이공계열 및 사회과학 단과대학들은 그대로 유지하고, 인기가 없는 취업률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인문계, 예술계 대학들을 묶어 싸잡아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 단과대학을 새로 개편한다. 몇몇 대학에서 시행되기 시작하거나 (학생들의 거센 항의에 부딪혀) 논의중인 “트렉제”라고 이름 붙여진 이 제도는, 쉽고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미술을 전공하려고 3년간 미술학원에 다니며 x빠지게 고생했던 학생이 마음을 바꾸어 무용이나 영미문학 전공과목을 듣고 전공을 바꿔 졸업할 수 있는,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 같다. 이런걸 생각해 내시는 분들은 쫌 천재(?)인듯 하다. 이쯤 되면 예술과 더불어 체육과 인문계열도 ‘개밥의 도토리’가 아닐 수 없다. (혹시라도 내가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다면, 아는 분이 계시다면 알려주시기 바란다.)

이러한 대학들의 변화에 언론은 칭찬일색이다. “xx대, 국내 최초 자율전공 트랙제 도입해 시대를 읽다” “xx대, 트랙제 통해 ‘CENTER’형 인재 양성” “xx대, 트랙제 전면 도입으로 학생의 전공 100% 선택권 보장”

좋다. 취업을 위해서, 먹고 살기 위해서, 더 이상 학문의 상아탑이 아닌 취업의 전쟁터가 된 대학이라는 곳에서 학생들이 졸업 후 더 좋은 조건으로 자신이 원하는 직장을 선택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그 자세 말이다. 만일 이 선택이 다양한 경험과 교육을 통해 향후 학생의 전공 개발에 진정한 융합을 시도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게 하겠다는 취지였다면 나는 진심으로 기립박수라도 치겠다. 하지만 이건 아무리 봐도 그냥,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학과들을 모아 그나마 취업이 가능한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일 뿐이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대학이 왜 이렇게 취업을 위한 학원으로 전락했는가 말이다. 아무리 대학원 석사과정 쯤은 되어야 전문적으로 학문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다고 치더라도, 저런 선택을 대학이라는 곳에서, 그 비싸다는 등록금을 받아가며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차라리 대학입시 학원이 되어버린 고등학교 학부를 이런 과정으로 바꾸어, 자신의 진로를 정하고 취업할 사람은 직장으로, 비싼 돈 내더라도 공부할 사람은 대학으로 보내야 하는 것이 더 상식적이지 않은가 말이다. 아니면 진로를 위한 학원 수준으로 등록금을 깎아주던가... 교양을 쌓고 진로를 정하기 위해 대학에 간다는 것이 좀 슬프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렇게 말도 안되는 종합대학을 천지로 만들어 놓고, 각 대학마다 이상한 트랙이라는 것을 만들어 운영할 바에는, 종합대학을 단과대학으로 변경하도록 하여 각 대학에서 특성화 된 전문교육을 하는 것이 훨씬 더 인재 양성에 효과적이지 않을까도 생각해 본다.

잠시 흥분해서 이야기가 곁길로 새버렸다. 아무튼 대학이라는 곳의 실정은 이러하다. 그러면 고등학교 교육은 어떤가. 당연히 대학을 보내기 위한 전문학원처럼 운영된다. 그곳에서는 예술은 예술이 아니다. “예체능”이다. 대학에 가서 예술전공을 하기 위해 준비하는 소수 학생들은 그 시간에 학원을 전전한다. 예술고등학교가 아니라면 말이다. 이것은 대한민국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분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학년이 올라가면 예술과 체육 과목은 슬금슬금 자취를 감춘다. 자습으로 대체되던가 아니면 아예 시간표에서 사라진다. “왜 음악미술 안 해요?” 선생님께 여쭤보면 대학가야 하는데 배부른 소리 한다고 꾸중이나 듣는다. 아이들은 숨 쉴 틈이 없어지고 정서는 메말라 간다. 그러면서 자기도 모르게 생각하게 된다.

‘예술은 필수가 아니라 옵션이구나. 내 인생에 있어 그다지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미술을 무서워(?)하시는 분들 중에 대부분은 (고교에서는 거의 미술 수업을 하지 않으므로...) 초중학생 시절 받았던 낙제에 가까운 미술점수의 기억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래서 갤러리가 어떻고, 작품이 어떻고 하면 바로 이런 반응이 나오는 분들 정말 많이 뵈었다.

“제가 학교다닐때 미술 점수가 제일 나빴어요. 그래서 너무 어렵고 잘 모르겠더라고요.”



미술에, 음악에 관심이 사라진 것은 여러분의 탓이 아니다. 이런 교육 시스템 속에서 성장한 사람이라면, 예술과 가까운 가정환경을 갖고있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 예술은 “예체능 과목”이라서 당장 필요하지 않으니 쓸데없는 것이라고 가르치도록 유도한 사회의 교육시스템 탓이다. 기능적으로 완벽해 지지 않으면 좋은 미술 점수를 줄수 없었던 운이 좋지 않아 만난 안목없는 미술선생님 탓이다.

현대미술이 어려운 것 역시 여러분의 탓이 아니다. 무식해서 모르는게 아니다. 우리가 뱃속부터 살갑게 느끼고 경험하고 이해하면서 자라온 것이 아니라,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서 내가 이렇게 잘났으니 너희들이 나를 알아봐라, 하고 있는 일부 미술계의 현실이 문제인 것이다.

미술과 친한척 하기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당장 교육제도를 개편하고 허리가 잘린 미술사를 메꿔넣어야 하나?
누구나 알겠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국민소득 3만달러가 임박했다고 한다. 언론은 벌써부터 이런 저런 말들의 잔치를 벌이며 소득 3만불이 되면 당장 선진국 대열에라도 들 것처럼 장밋빛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계속해서 경제를 이야기한다. 취업과 복지를 이야기한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당장 서민들은 먹고살기도 팍팍한데 당연히 뭔가를 고쳐나가야 한다.

하지만 첫 단추가 잘못되었다. 경제성장은 사회의 전반적인 문화적 배경이 없으면 더 이상 진전되기 어렵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경제의 원동력이 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사람’이다. IT를 이야기하고 4차 산업을 이야기한다. 당연히 그것도 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사람보다 돈이 중하고, 문화보다 기술이 우선시 되는 이런 가치관 아래서는 그 무엇도 올바르게 발전하기 어렵다.

4차 산업시대에 AI와 맞서려면 그렇게 중요하다는 창의적 사고를 키우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자. 아이들을 교실에 학원에 가둬두고 공부만 시켜 명문 대학에 보낸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먼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예술은 인문학의 한 분야로, 인간의 가치탐구와 표현활동에 중요한 수단이자 도구이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철학과 법학의 기본이 되었던, 언어와 문자라는 인간의 문명이 시작되기 전부터 동물과는 다르게 사용했던 인간만의 수단으로, 기본적인 표현의 욕망을 대변하고 표출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모든 사람이 예술가가 될 필요는 없다.

다만 인문학이, 예술이 과학과 경제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쓸모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이제는 좀 버렸으면 한다.

예술은, 미술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해 왔으며 앞으로도 함께 할 것이다.
그러니 너무 멀고 어렵게만 생각지 말고 조금만 더 친하게 지내보도록 노력하자.

어떻게 친해질 수 있을까?

그것이 현대미술일 필요도 없고, 마스터피스일 필요도 없다.

일단 친한 척을 해 보자. 아주 쉽다.

그냥 미술을 하찮게 여기거나, 나와는 무관하다고 무시하거나, 잘 모르니 두렵게 생각하고 피하지만 않는다면, 그것으로 이미 좋은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강물을 가로막고 견고하게 쌓인 둑이 무너지는 것은 한두 방울의 물이 새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시간이 걸릴 뿐, 막지만 않는다면 결국 물은 자리를 찾아가게 마련이니까. 포크레인을 동원해서 무너뜨리는 방법도 있지만, 그렇게까지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까지 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모를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이뤄지지 않으면 그 또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그러고 나면 @thinky가 소개하는 그림한번 보면서 이런 게 있구나 한번 쯤 내용도 읽어보고, @zzoya가 올리는 예쁜 일러스트를 보다가 작품전시도 했다는데? 하고 미술작품 포스팅도 찾아 보면서 “아, 이런것도 있구나!” 감탄 한번 하고, @thelump님이 멋지게 그려서 자주 올려주시는 풍경작품도 감상하고, 영화를 고르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영화로 만든 “셜리의 모든 것”이라는 것이 있다는데 하고 한번 감상하고, 이런 것들로 매우 좋은 과정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거 보면 스팀잇에는 작가분들이 많아 미술과 친해지기 참 좋은 환경이다. 철학을 하시거나 글쓰시는 분들도 많고 음악하는 분들도 많다. 예술과 인문학과 친해지기 위해 잘 활용(?)하자.)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라, 그러다 보면 저절로 관심으로 이어진다. 운이 좋으면 삼청동 길을 지나다 어쩌다 보았던 작품들과 만날 수도 있다. 그러면 친구에게 자랑도 할 수 있다. 나 이런거 좀 아는 사람이야, 하고.

어린 자녀가 낙서를 한다고, 만화를 본다고, 노래와 춤을 너무 좋아한다고 걱정하거나 야단치지 말자. 그렇다고 천재라고 칭찬할 필요도 없다. (이런 칭찬은 아이들의 꿈을 예술가로 이끈다. 그러다 자신의 재능이 정말 뛰어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아는 순간, 이를테면 미술과제를 내고 안목 없는 선생님에게 나쁜 평가를 받아 든 순간 좌절하게 된다) 그냥 즐기게 놔두고 좀 더 다양한 것들을 보여주면, 아이들은 금새 자기가 가장 흥미있고 좋아하는 것을 안다. 그때 정말 잘하는 것을 칭찬해 주면 된다. 하지만 못하게 하고 야단치고 때로는 지나치게 칭찬하는 것은 어쩌면 예술과 점점 더 멀어지게 하는(혹은 배고픈(?)예술가의 길로 이끄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글을 맺으며


먼저 미술과 충분히 친하고 이미 즐기고 계신 분들도 계신데 혼자 미술과 미술계를 다 아는 것처럼 떠들어 댄 것 같아 죄송하다는 말씀 먼저 드립니다.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고 아직도 모르는 것이 더 많으며, 그저 제가 경험하고 아는 범위 내에서만 말씀드리는 것일 뿐입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신진작가가 배출되는 상황에, 감히 모든 작가들의 상황과 작품을 안다고 우기긴 어려울지 몰라도,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몸담은 미술시장이 가진 한계와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해 알리고 나름대로의 대책을 제안하고, 또 좋은 의견이 있으면 나눠주시길 바라고 시작한 글이었습니다.

예상치 못할 만큼 많은 분들이 뜨거운 반응으로 응원해 주시고 걱정과 비판, 그리고 좋은 제안의 댓글을 달아주셔, 정말 너무나 감사합니다.

지금과 같이 참담할 만큼 협소한 시장과 미술을 등한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는, 국내 작가가 아무리 일차시장에서 국제 무대로 진출할 가능성 있는 작가들을 다루는 세컨더리 시장으로 넘어가고 싶어도 노력만을 통해 이뤄지지 않으며, 정말 로또 당첨보다 더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 전반의 인식과 시장의 개선이 먼저 이뤄지지 않으면, 사실 우리나라 미술시장은 십년 후에도 지금과 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몇몇 분들이 국가는 이런 문제를 알고 있는지 궁금해 하기도 하셔서 참고로 하나 더 말씀드리자면, 우리나라 국가 차원의 작가지원은 사실 이미 차고 넘치는 수준입니다. 외국 작가들에게 우리나라의 문화예술위원회나 예술경영지원센터, 혹은 문화재단 등의 작가지원 사업에 대해 이야기하면 다들 눈이 휘둥그래지지요. 국가에서 그렇게 예술가를 위해주느냐고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선정 기준입니다. 예술인복지재단이라는 곳에서 시행하는 창작지원금 제도라는 것도 있는데... 이것 또한 선정기준이 황당합니다. 글이 길어지니, 시간은 좀 지났지만 김작가님의@kimthewriter 이 글에서 확인하실 수 있었으면 합니다. 아무튼 하고자 하는 말은, 국민들의 피같은 세금을 들여 작가들을 구제한다고 노력은 하고 있는데, 그것이 과연 올바르게 사용되고 있는지 의문이라는 뜻입니다. 이미 예술과 친하고 관심 있으시다면, 예술의 아름답고 장식적인 긍정적 측면 뿐 아니라 예술가들이 겪고 있는 이런 어두운 면도 같이 봐 주셨으면 하는 작은 바램입니다.

또한 제가 아무리 낙천주의자라 하지만 사흘간 몇 자 끄적인 이 시리즈 글 하나로 당장 상황이 개선되고 나아지리라는 기대를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단 한분이라도 예술에 대한, 특히 미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왜 이렇게 까지 되었는지, 같이 고민해 주시고, 좋은 방안을 생각해 주시고, 친한 척이라도 해봐 주신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싶습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니까요.

스팀잇에서 제가 한달 반 정도 지나면서 해킹사건 등을 겪으며 정말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지요. 그러면서 스팀잇이라는, 그중에서도 KR이라는 커뮤니티 안에서 혼자 잘살겠다고 가능하겠느냐, 같이 성장해야 나도 잘되는 것 아니겠냐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제 사건 이전에도 많은 고래 분들이 이미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습을 보여주셨고 말이에요.

저는 이 사회도 결국은 마찬가지란 생각이 듭니다. 나 혼자 잘살겠다고 아등바등 해 봤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면 나 혼자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겁니다. 물론 이 사회에서 어려운 사람들이 작가들 뿐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이 나와는 관계가 없고 아는 작가가 없다고 해서, 그들의 사회의 구성원에서 사라지는 것도, 그들의 삶이 나아지거나 행복해 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당장 내일부터 미술관을 가고 작품을 구매해 달라는 말씀도 아니고, 그냥 미술이라는 것을 벌레 보듯, 피하거나 무관심하거나 싫어하시지 않는다면, 조금만 가까워져 보려고 노력한다면, 쉽지 않은 상황속에서 작가들도 희망을 좀 갖고 살 수 있지 않을까요?

두 개로 나눠 쓰려다, 이런 골아픈 내용의 시리즈가 네 편이나 되는 것은 좀 지루해질 것 같아 이것으로 마무리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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