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과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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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한겨레 신문)

광화문에 가면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서 있다. 이 동상은 1968년 4월 27일에 세워진 것인데 당시 정부산하단체인 애국선열 조상건립위원회와 서울신문이 공동주관했다고 한다. 그러니 이순신 장군을 여기에 모신다는 것이 누구의 생각이었는지 대강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이야 이 곳에 자리 잡고 서 계실 자격이 충분하신 분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여기에 시비를 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장군을 여기에 모신 사람은 시비 꺼리가 되기에 충분한 인물이라는 점이 참 아이러니하다.

만약 이순신 장군에게 의견을 물었다면 장군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왜군을 맞아 23전 전승을 기록한 상승장군이자 마지막 노량해전에서 장렬하게 전사해 충무공이라는 시호에 빛나는 그가 박정희에 의해 세워진 자신의 동상을 보았다면 어땠을까? 이건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니까 결과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박정희는 이 전설적인 군인에게 관심이 많았다. 그는 이순신의 동상을 수도 중심부에 세웠을 뿐만 아니라 충남 아산에 장군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현충사도 건립했다. 그리고 현판도 숙종이 하사한 것을 떼어버리고 자신이 쓴 것으로 달았다. 그의 이런 행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는 자신을 일컬어 '불행한 군인'이라 했다. 난 이 표현이 단순한 수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군인의 인생은 명예로 평가 받는다. 그러나 쿠데타를 일으키고 정치권력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더 이상 군인의 명예는 지킬 수 없게 된다. 그런 그의 눈에 이순신 장군이 가진 '충무공'이라는 시호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을 게 분명하다. 나는 살아생전 그가 보였던 이순신에 대한 애착은 그가 가지고 있던 자격지심의 표현이었다고 생각한다. 건너지 말아야 할 강을 건넜기에 보내야만 했던 군인으로서의 명예.. 사람들의 기억 속에 명예로운 이름으로 남을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잊을 수 있게 만들어줄 것 같은 빛나는 이름이 바로 이순신 아니었을까?

불행하게도 그는 집권 이후에 그의 이런 자격지심을 건드리는 수많은 반대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선배인 수양대군이 그랬듯 그 자격지심이 격렬한 분노로 돌변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수양대군이 사육신을 봤을 때, 영조가 이인좌의 난을 겪으며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분노로 이성을 잃고 광기에 사로잡힌다. 자격지심에 가득찬 최고권력자에게 가장 무서운 자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심지어는 목숨을 초개와 같이 내던지고는 '넌 자격이 없어'라고 말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이 자격지심은 역사에 대한 집착으로도 나타난다. 사람들이 자신을 불명예스러운 존재로 기억할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결과다.

박정희가 아니었다면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불가능했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박정희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그가 아니었다면 대한민국의 근대화는 불가능했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가 명예로운 이름으로 역사에 남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이순신을 존경했지만 결국 그의 뒤를 따를 수는 없었다. 나는 그가 광화문에 세우고 싶었던 동상이 하나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순신의 동상을 세우면서 그 옆에 자신의 동상이 세워지기를 바랬던 것이 아닐까? 이 불행한 군인은 훗날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동상을 세우고 자신을 기념하는 장면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자신과 똑같은 선택을 할 수 있었지만 명예로운 죽음을 택한 이순신의 행적은 까맣게 잊은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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