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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떤 선배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돈이 있어야 하고 싶은 걸 한다. 하고 싶은 걸 한다고 해서 돈을 꼭 벌 수 있는 건 아니야. 후자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힘들어하지.
감이 잘 안 잡혔다. 나는 그냥 인생 짬찌 대학생이었을 뿐이었고 그 형은 취업 전선에서 고군분투하여 취직을 한 사람이었다. 돈을 벌어본 경험이라고는 알바 몇 개쯤이었던 내가 뭘 알 수 있었겠나.. 그래서 그냥 "예." 했다. 그런가 보다. 난 모르니까,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이 하는 말이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형 말도 이해가 간다. 나를 바보라고 하던 사람들이 이해가 가더라.
남이 뭐래도, 나는 어떤 의미에선 바보로 사는 게 좋은 것 같다. 몰라서 오는 단점도 있지만 아직은 장점이 좀 더 크게 부각되는 삶을 사는 중인 것 같기도 하고, 만약 뭔가에 부딪혀도 묵묵하게 밀어낼 테니까. 난 그럴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왔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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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만히 앉아서 타이핑 치고 있는 내 모습이 어찌 보면 누구에게는 편한 삶이고 부러워할 만한 삶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하루에서 감사 한 두 개 정도는 건지면서 살고 있지만, 현재보다 더 나아지고 싶은 내 마음이 항상 앞서기에 겸손은 매번 반복해도 모자라더라. 예전에도 그랬지만 남과 비교하기보단 나와 비교하는 편인 내게는 매일의 내가 부족할 뿐이다.
예전에도 그랬듯 나는 항상 멋모르고 무모하다. 열정보다는 도전이 앞섰고 도전에서 오는 설렘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상경할 때도 '그냥' 도전했다. 집도 없이 그냥 무작정 올라와서 친구 집에 얹혀 몇 주간을 살고 먼 거리를 출근하며 퇴근할 때에는 집을 알아보느라 친구 집에 도착하면 11시가 넘기 일쑤였다. 그런데 그게 고생인 거 같지도 않았다. 뭔가를 배우고 얻어갈 수 있다는 도전에 의한 설렘이 좋았다. 일도 새벽에 들어올 때도 있었고 거의 매일 야근했다. 주말에도 나갔고 집에 있을 때도 연락이 왔다. 스트레스는 있었지만 나를 성장시키는 중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내가 여기 왜 왔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 계기가 있었다. 블록체인 업계에 뛰어들어 직접 경험해보고자 했고 나와 비슷한 생각,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얘기들을 해보고 싶었다. 사람들을 통해 얻고 배우고자 하여 왔다. 하지만 내가 있던 곳은 흘러가는 시간에 비해 나를 성장시키지 않았고 가면 갈수록 내 시간은 비효율적으로 활용되는 느낌을 받았다. 정작 내가 집중하고 싶었던 것들은 없었고 알맹이가 없이 겉돌고 있었다.
일도 배우고 하는 건 다 좋은데 나는 우선 나를 돌보는 게 중요했다. 힘들다고 앓는 소리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힘들어서 퇴사하는 건 아니었다. 뿌듯한 순간들도 있었기 때문에 일이 힘든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가끔 나를 갉아먹는 듯한 느낌이 드는 시간이 있었다. 그런 때가 내 일에 끼어있고 내 삶에 끼어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돈을 번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싶지 않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돈 말고는 붙잡을 것이 없을 정도로 내 자신이 몰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하기까지 깊게 셀프 토킹을 했다. 나는 왜 여기 왔나? 뭘 하려고 왔나? 힘든가? 하고 싶은 게 뭔가?
결론은 내렸고 실행을 했다. 그리고 지금은 도약을 준비 중이다. 신중하지 못했던 지난날을 후회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길보다는 차라리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을 택할 것이다. 두 번째 직장은 좀 더 신중하게 고려해서 선택하고 싶었다. 그래서 면접 때 많은 것들을 물어봤고 나와 맞는 직장들을 찾았다. 다행히 그 회사를 겪고, 면접을 볼 때 뭐부터 물어봐야 하는지는 깨우쳤던 것 같다. 기본적으로 존중과 배려는 어디서든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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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 여기서 일하는 게 저를 성장시키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저에게 그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배울 것들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시간에 비해서 얻어가는 것이 적습니다. 저는 더 많은 걸 경험해보고 싶습니다.
아마 다음 주부터 또 다른 선택의 시작일 것 같다. 성장한다면,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적어도 내가 맡은 분야에서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성장하고 싶다. 내가 나를 몰아붙여서 내 몸집을 불리고 싶다. 그래서 주변인들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의미있는 행위들을 하고 싶다. 매일 나를 돌봐야 하는 이유이다.
그럼 오늘 하루도 고생했고 자주 글쓰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