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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8년만의 복귀작 [버닝]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이창동 감독! 개봉에 앞서 이창동 감독의 이전 영화를 안본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주말동안 복습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는데요. 혹시라도 이창동 감독의 발자취나 [버닝]의 프리뷰 같은 것이 궁금하다면 괜찮은 포스팅이 될 것 같아서 간단히 그의 필모그래피를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초록물고기(1997)
[초록물고기]는 이창동 감독의 데뷔작입니다. 시놉시스만 보면 한 청년이 조직폭력배의 세계로 들어가면서 겪게 되는 의리와 사랑 사이의 갈등을 그리고 있는 평범한 느와르물처럼 보이는데요. 이창동 감독은 여기에 자신의 색깔을 집어넣어서 주인공 막동(한석규)에게 일반인들과는 다른 ‘순수성’을 부여합니다. 영화 첫 시작부터 기차 안에서 만난 미애(심혜진)와 사랑에 빠지고, 미애가 조직폭력배의 보스 배태곤(문성근)의 여자라는 것을 알자 배태곤에게 의심 없이 충성을 다짐하죠. 그리고 영화 후반부에 이 사랑과 의리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조차 순수하게 그려집니다.
하지만 그런 막동의 순수성과는 다르게 조직의 세계는 어둡습니다. 폭력은 기본이고 권력 앞의 아부, 배신 등이 난무합니다. 과연 이 혼탁한 조직의 세계에서 막동은 끝까지 자신의 순수성을 지켜낼 수 있을까요? 그리고 최후의 순간에 사랑과 의리 중 막동이 고르게 되는 선택지는 무엇일까요? 답은 그러한 순수성을 상징하는 [초록물고기]와 연관이 깊습니다.
개봉 후 [초록물고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회인들의 폐부를 찌르는 한국형 느와르라는 호평을 받게 됩니다. 또한 이 영화를 통해 한석규, 심혜진, 송강호(조직 폭력배의 일원 ‘판수’역할), 정진영(막동의 셋째 형 역할)이라는 걸출한 배우들이 발굴됩니다. 저 당시에 사람들이 송강호를 처음 보고 ‘진짜 깡패를 데리고 온 거 아니냐’라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은 유명한 에피소드 중 하나죠.
박하사탕(2000)
상업적인 흥행은 그저 그랬지만 평단의 호평을 받은 [초록물고기]에 힘입어 이창동 감독은 차기작 [박하사탕]을 냅니다. ‘나 돌아갈래!!!’로 잘 알려져 있는 영화죠.
[초록물고기]가 순수성을 간직한 한 청년이 무너져가는 이야기를 느와르버전으로 그려냈다면, [박하사탕]은 시대의 흐름 그 자체에서 무너져가는 한 인간의 이야기를 ‘시간 역순’으로 그려냅니다. 먼저 완전히 무너진 한 개인을 보여준 뒤, 이 사람이 무너지게 된 원인들을 시간을 거꾸로 해서 보여주는 방식이죠. 여기서도 이창동 감독은 [초록물고기]에 이어 오늘날의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거나 의지가 꺾인 경험이 있던 사람들의 폐부를 찌르는 스타일을 고수합니다. 특히 [박하사탕]의 경우 광주민주화운동에서부터 IMF에 이르기까지의 시대적 사건을 개연성 있게 나타냄으로써, 보는 사람의 감정을 더 자극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 영화 역시 평단에게 극찬을 받으면서 이창동 감독은 단 2편의 영화로 영화계에 성공적인 안착을 하게 됩니다. [초록물고기]에 이어 [박하사탕]에서는 설경구, 문소리까지 발굴해내서 ‘캐스팅의 대가’라는 수식어까지 따라오게 됐죠.
오아시스(2002)
이 작품에서는 이제 사회에서 배척받는 소수자를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편견’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전과2범 사회부적응자 종두(설경구), 뇌성마비 장애인 공주(문소리)사이에서 그들의 가족을 비롯한 일반인들이 엮이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죠. 제 개인적으로 보기에는 이창동 감독의 필모그래피 가운데 유일하게 거슬리는 장면이 몇 군데 있긴 했지만, 일반인들의 편견이라는 문제의식이 굉장히 신선하게 드러나는 영화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아예 대놓고 종두를 무시하는, 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처한 종두의 가족은 그렇다 하더라도 영화 초반에 공주를 살뜰하게 챙기는 오빠의 후반부 반전이 꽤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그런 관점을 통해 일반인 관객들의 폐부를 찌르는 방식을 고수합니다. 우리도 그들을 ‘편견의 눈으로 바라보지는 않았는가’에 대한 것들 말이죠. 덧붙여서 이 작품에서는 이창동 감독이 안내상(오아시스에서 종두의 형 역할)을 발굴해냅니다.
밀양(2007)
네 번째 작품인 [밀양]에서는 ‘인간과 종교’를 통해 색다른 방식으로 관객의 폐부를 찌릅니다. 여기서 주인공인 이신애(전도연)는 극단적인 사건을 두 차례 겪고 하나님에게 깊게 빠져드는 모습을 보이는데요. ‘그 사건’을 겪기 전까지는 이신애라는 캐릭터가 철저히 무신론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관객들 사이에서 꽤나 논란이 되었던 영화입니다. 기독교를 까는 사람들은 ‘봐라 너희 기독교인들은 힘들 때만 하나님 찾는다’라고 주장하고,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이 영화 기독교를 의도적으로 까려고 만든 영화 아니냐’라고 주장하며 싸웠었죠.
이에 대해 이창동 감독은 나중에 ‘이 영화는 기독교를 까는 영화가 아니라 오히려 그 신을 믿는 인간을 비판’하는 작품이라 밝혔습니다. 신은 가만히 있는데 이신애가 신의 존재를 마음대로 재단했다는 의미죠. 더 말하면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언급은 안하겠지만, 극 후반부에 주제가 ‘회개와 구원’으로까지 확장되면서 이 의미가 좀 더 깊게 다가오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재밌는 건 감독의 이러한 의도에 안티기독교인과 기독교인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옳지 않은 해석을 시도했다는 것입니다. 이창동 감독의 연출스타일이 일반인들의 아픈 구석을 찌르는 스타일이여서 서로 그에 대한 일종의 방어기제가 작동했기 때문일까요? ㅎㅎ
시(2010)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작인 [시]에서는 선하고 아름다운 것만이 최고라 여기는 사람들의 폐부를 찌릅니다. 이 작품에서 가난하지만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여린 감성이 살아있는 할머니인 양미자(윤정희)는 시 쓰기에 관심이 생겨서 관련 강좌를 들으러 나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강의를 진행하는 프로 시인에게 ‘어떻게 하면 시를 잘 쓸 수 있나요?’ ‘시상을 떠올리라 하시는데 시상이 안 떠올라요’와 같은 질문을 거듭해서 이야기합니다. 이에 대해 시인은 ‘시상은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오는 게 아니라, 스스로 직접 찾아야하는 것’이라 대답합니다. 이것이 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죠. 영화 마지막 부분에 결국 양미자는 시 한 편을 완성하게 되는데, 쓸 수 있게 된 계기는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겪는 자신의 다른 모습을 외면하지 않고 직접 마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창동 감독은 이 영화로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버닝(2018)
그리고 이번 목요일에 개봉하게 되는 [버닝]이 목전 앞에 다가와 있는데요. 그동안 이창동 감독이 만들어낸 영화의 공통점을 보았을 때 이번에도 관객의 어딘가 아픈 곳을 찌를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마침 시놉시스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단편소설 [헛간을 태우다]를 읽어보니까 진실과 허상사이의 미스터리를 다룰 것 같아서 기대가되는 부분입니다. 특히 ‘허상과 미스터리’라는 측면에서 관객의 허를 찌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놉시스 맨 처음이 ‘이제 진실을 말해봐’라는 코멘트로 시작이 되는데 이것도 일종의 복선이지 않을까 싶구요. 전종서라는 신인배우도 ‘캐스팅의 대가’라는 이창동 감독의 별칭에 걸맞게 좋은 연기를 보여줄지 기대가 됩니다.
그리고 영화내용과는 별도로 요즘 스티븐연의 욱일기 사건 때문에 영화를 불매해야 된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자면 이번 스티븐연 사건에 대해 한국의 문화를 공유하며 자라난 사람들일 경우, 그것이 좋지 않게 보이는 것은 당연합니다. 단순히 ‘좋아요’는 잘 몰라서 누를 수 있다고 쳐도, 그 행동을 해명하는 과정이 성숙하지 못했죠. 앞으로 이런 일이 쌓이게 되면 한국에서 스티븐연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해당영화는 그와는 별개로 평가되어야합니다. 영화외적인 부분에서 ‘자연인 스티븐연’을 바라보는 잣대는 대중들의 몫이지만, [버닝]을 찍은 ‘영화인 스티븐연’은 엄연히 다릅니다. 좀 비유를 들어보자면,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이 자연인으로서 성추문을 일으킨 것(물론 이 과정에서 위증을 했던 것은 정치인으로서도 그릇된 것이었지만)과 정치인으로서 외교를 잘 펼친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입니다. 오늘날 빌 클린턴이라는 사람에 대해 종합적으로 평가를 내렸을 때 실제로 양자를 별도로 다르게 평가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혹여 그보다 더 심한 범죄를 저질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는 자연인으로서 그에 맞는 처벌을 받으면 그뿐이라고 봅니다.(마땅한 처벌을 받아야 되는데 권위나 인지도의 이름을 빌려서 받지 않으면 그때는 문제라 생각합니다) 빌 클린턴과 비슷한 맥락으로, 이병헌이 지금까지 대중들에게 계속 까여도 [내부자들]에서 안상구 역할을 맡은 이병헌은 사람들이 다르게 보는 것처럼요.
더군다나 영화는 스티븐연 혼자 만든 게 아닙니다. 감독을 비롯한 제작은 이창동 감독이 했고, 수많은 배우와 스테프들이 협업을 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 바로 이번 영화입니다. 과연 이런 모든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번 사건이 영화자체에 대한 불매로까지 이어져야하는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물음표가 있습니다. 그런 고로, 저는 일단 영화를 보러 갈 생각입니다. 아마 다음 포스팅은 [코코]이후로 오랜만에 최신영화인 [버닝]을 리뷰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