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살면서 소중하다고 생각한 가치들을 시간순서대로 정렬하는 에세이입니다.
*사적인 에피소드는 적당히 배제하였습니다.
초나라에 무기를 파는 상인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창 하나를 들어 보이며 이것은 세상의 그 어떤 방패라도 뚫을 수 있는 창이라고 했다. 뒤이어 방패 하나를 들어 보이며 이것은 어떤 창이라도 막아낼 수 있는 방패라고 말했다. 그러자 구경꾼들 중 한 명이 '그럼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됩니까?' 라고 묻자, 상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모순이라는 단어의 유래를 설명할 때 일반적으로 나오는 이야기다. 주로 논리학에서 논리적 일관성을 맞출 때 모순을 조심하는 경우가 많지만, 현실에서도 모순적인 현상은 빈번하게 발생한다. 예컨대 요즘 말하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이라는 용어도 따지고 보면 모순의 범주 안에 들어간다. 본인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남한테는 열심히 살라고 훈수를 두는 것이야말로 현실에서 벌어지는 모순의 좋은 사례다. 이런 경우 흔히 '꼰대'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결국 내로남불을 피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열심히 일을 하면서 남한테 그런 말을 하거나, 아예 훈수두기를 접어야한다. 물론 요즘같이 개인주의가 보편화되고 있는 시대에 본인이 열심히 산다고 해서 남한테도 그걸 강요하는 게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모순의 해소라는 관점에서는 그렇다. 그러므로 모순의 해소는 결국 일관성을 지키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걸 알 수 있다.
나의 경우, 일관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에는 어릴 적에 대한 반작용이 큰 몫을 했다. 어릴 적에 일관성 없이 즉흥적으로 살았으니까 이제는 좀 언행일치가 되는 삶을 살아보자는 그런 마음. 그래서 내 스스로 언젠가부터 언행일치를 제1덕목으로 삼으면서 그와 위배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멀리하게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가치인 일관성에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일관성에 어긋난 걸 모두 부정해버리면 남는 것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다. 애초에 현실에서의 일관성은 아무리 맞추려 해도 완벽할 수가 없다. 가령 내가 지각을 하지 않겠다는 말을 내뱉고 그걸 행동으로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나 내일 도로에 교통사고가 나서 지각을 했다면? 이유를 불문하고 일관성 하나만 본다면 나는 일관성을 지키지 못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경우 다른 사람에게 '늦을 것 같았으면 더 빨리 왔어야지!'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경우도 의외로 있다. 부끄럽지만 나 또한 일관성이라는 가치를 지나치게 고집했을 때는 이와 유사한 사고를 가졌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생각을 해보면 특별한 사례로 지각했을 때 그걸 뭐라고 하는 사람은 드물다. 사람들이 나의 지각을 '예외의 경우'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렇다고 해서 그 지각을 밥 먹듯이하면 사람들은 내가 사고가 났다고 해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게 된다. 결국 일관성보다는 좀 더 추상적인 가치가 사람들 사이에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쯤 나는 일관성보다 좀 더 본질적인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