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ed by @kyunga
1.
인생에는 정해진 진리와 답이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내가 옳다고 생각한 진리를 현실에 접목시키려 무척이나 애썼다. 비록 현실에서 나온 결과가 내 생각과 다르게 나올지라도, 그건 내 가치관이 틀린 게 아니라 방법론적인 문제가 잘못 설정됐거나 뭔가 다른 요인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세상의 답은 내가 스스로 찾아가는 거야
그런 측면의 연장선에서 나는 그 당시에 자기철학이 없는 사람을 자못 한심하게 여겼다. ‘저 사람은 얼마나 인생에 대한 고민이 없었으면 자기철학 하나도 없이 살아갈까’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오만했다.
또 비슷한 흐름에서 내 자신의 고유한 운명을 다른 존재에게 의존하려는 행위도 해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가장 좋은 예로 종교를 들 수 있겠다. 나는 내 인생의 반평생을 우연치 않게 직간접적으로 기독교와 인연을 맺었었지만, 내 운명은 내가 개척하는 것이라는 신념이 강해서 끝까지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개척하는 삶을 방해하는 존재가 아니라 설득해도 소용없었다. 어쨌든 당시의 나는 절대자를 믿는 순간부터 그 존재에 내 운명을 의존하게 되는 건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건 내 인생 제1의 철학과 완벽하게 위배되는 일이었다. 물론 애초에 나는 예나 지금이나 학문으로서의 성경은 좋아해도 영성(靈性)은 전혀 없는 사람이라는 점도 한몫했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그런 확고한 신념이 깨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특별히 큰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었고, 점점 내 생각과 다르게 진행되는 일을 바꾸려 애쓰고 애쓰다가 어느 순간 터져버린 케이스였다.
신념이 깨진 자리에는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더 말하면 굉장히 개인사적인 이야기가 되기 때문에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한 2년 정도의 정신적인 방황 끝에 나는 그동안 내가 생각해왔던 것들을 많이 내려놓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세상의 답이 내가 스스로 찾아가는 것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해진 진리가 있다고 가정하여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단하지도 않는다.
그보다는 그때그때의 맥락에 민감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최근에 일어난 일을 예로 들자면 역시나 종교관에 대한 나의 변화다. 하나님을 안 믿고 교회 안 다니는데도 직간접적으로 기독교와 오랜 인연이 있었던 나의 인생 특성상 주변에 기독교를 믿는 친구들이 조금 있는데, 이 친구들이 아주 가끔 나에게 누군가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하나님을 안 믿어서 기도해줄 수는 없지만 마음으로 응원해주겠다고 딱 잘라 말하곤 했다. 융통성 없게 보일 수 있겠지만 영적인 하나님을 믿지도 않는데 거짓으로 기도하겠다고 말하는 게 더 웃긴 일인 것 같아서 솔직하게 말했었다.
하지만 불과 며칠 전에 한 친구가 많이 힘들어서 하나님에게 모세와 같은 지혜를 달라고(그 친구가 처한 상황의 유형이 모세와 유사했기에) 기도했다 말했을 때, 나는 누가 기도를 해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먼저 선뜻 ‘네가 모세와 같은 지혜를 얻게 해달라고 내가 꼭 기도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건 내가 하나님을 믿어서가 아니라 그 맥락에서 그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진심어린 선택이었기 때문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절대 못했을 일이라 내 스스로 적잖이 놀랐던 일이기도 하다. 아무튼 최근의 나는 무조건적인 원리원칙보다는 이렇게 주어진 맥락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2.
다른 건 몰라도 ‘직업적인 측면’에서 정해지지 않은 길을 가는 사람들을 신기하게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작년에 블록체인을 통해 구사회에서 정의할 수 없는 직업을 향해 걷는 사람들을 보며 신선한 충격을 많이 느꼈다.
그리고 이제는 나도 그와 유사한 길을 걷고 있다. 일단 작년까지만 해도 학생이라는 말하기 편리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지만 올해의 나는 뭐라고 좀 정의하기 어려운 상태에 있다. 프리랜서라기에는 너무 느슨하고, 백수라 말하기에는 단순한 자기개발 외에 하는 일이 현재 어림잡아 세 가지 정도 있다. 직업적인 측면에서 재수/휴학 없이 칼졸업을 했고 모종의 이유로 사회의 평범한 톱니바퀴가 되기로 결심했었던 나로서는 이 또한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는데, 현재까지는 이 일종의 모험이 경제적/심리적으로 동요 없이 잘 진행되고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다. 무엇보다 일을 보람차고 능률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장점이다. 관건은 앞으로 이 선순환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확대재생산해내냐는 점이겠다. 고것이 올해의 최대과제 중 하나.
3.
블록체인에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고 있는 최대의 추상적 가치는 ‘자유’라고 생각한다. 예로부터 자유는 좌파이든 우파이든, 아나키즘이든 내셔널리즘이든, 남/녀/성소수자이든, 그 어떤 층위에서도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가치였다. 실제로 현재 블록체인이라는 하나의 집 아래에는 전통적 정치관점에서 봤을 때 서로 물과 기름이었던 관계가 아무렇지도 않게 섞여있는 경우가 많다. 이 새롭게 나타나는 정치/사회/경제적 관계들이 앞으로 어떻게 재정립될지도 궁금한 관점 가운데 하나다.
4.
개인적으로 과학과 인문은 유기적 관계에 있다고 믿고 있다. 뉴턴에 의해 성행했던 과학의 결정론적 사고, 그리고 비슷한 시기 인문학의 확정주의적인 계몽주의가 일어난 건 우연이 아니라 생각한다. 반면 최근의 과학과 인문은 그런 결정론적 사고를 많이 떨쳐내려 하는 모습이다. 과학의 양자역학이나 인문에서의 인간행동학은 더 이상 무엇이 확실하다고 말하기보다는, 불확실성과 확률을 말한다. 불확실성과 확률의 시대에서 인간은 무엇을 해야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현재까지 내가 내린 답은 본 글의 1번 내용이다. 그 순간의 맥락, 혹은 틈과 틈 사이의 경계를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말은 참 쉽다.
5.
기계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어서 핸드폰도 한 번 사면 3~4년은 쓰는데 불과 저번 달에 핸드폰을 오랜만에 바꿨다. 문제는 핸드폰 케이스가 너무 얇아서 그립감이 좋지 않았는데 이번에 스팀아트 클라우드 팀을 통해 그 문제를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장방문 때는 케이스 중에 원하는 이미지가 없어서 엽서만 사갔는데 나중에 모든 이미지를 모아 놓은 별도의 핸드폰케이스 게시물이 올라와서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스팀달러를 통해 구매하니까 뭔가 공짜로 구매하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
6.
5월 3일부로 경사가 생겨서 5월중에 작은 스팀달러 이벤트를 할까 생각중이다. 뭔가 간단하면서도 참신한 이벤트가 없을까. 둘 중에 하나만 고르라면 간단한 이벤트를 하고 싶다. 이벤트는 무엇보다 참여하는 사람들이 귀찮지 않아야 한다는 게 내 지론.
7.
스팀잇의 시작을 영화 포스팅과 함께한 만큼 앞으로도 제라피의 메인은 영화로 가져가고 싶다. 무엇보다 영화리뷰는 ‘현실의 은유’가 가능하기 때문에, 현실에서 이야기하기 민감한 주제를 영화를 통해 효율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문제는 요즘 이러저러한 일들로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가장 최근 본 영화가 무엇인가를 잠깐 돌이켜봤는데 놀랍게도 올해 신년 쯤에 개봉한 [코코]였다. 더 안보면 시사회 티켓도 이제 끊길 것 같아서 한 번 봐야 될 타이밍이라 생각하고는 있던 찰나에.. 마침 보고 싶은 욕구가 충만한 작품을 발견해서 노리고 있는 중이다. 바로 이창동 감독의 [버닝]. 칸 영화제 엠바고 때문에 여느 영화처럼 미리 볼 수는 없을 것 같고, 극장에 정식 개봉이 되면 최대한 빨리 관람할 생각이다.
젊은이들이 이 세상을 바라봤을 때 세상은 하나의 수수께끼 같지 않을까. 과거에는 힘들어지는 이유가 분명했다면 지금은 무엇 때문에 희망이 없는지 대상조차 불분명하다. ‘버닝’은 젊은이들의 그런 상태와 이 세상의 미스터리를 마주하는 그런 영화다.
너무 기대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