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을 연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연구 그 자체에 멈추어서는 추상적 가치에 머물게 될 뿐입니다. 본인의 생각을 널리 알리고, 인정 받고, 나아가 진정 사회의 기여하는 것이 모든 학술 연구의 목표일 것입니다. 아마도 일기를 일기장에 쓰는 것, 그리고 그를 잘 엮어내 출판하는 것과 비슷한 개념일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자체로 아름답고 성스러운(?) 학문이라는 것이, 출판 쪽으로 오게 되면 조금은 불편해집니다. 지연, 혈연, 학연 등등이 그들의 연구 경쟁을 정치 싸움으로 변질 시키고, 카르텔 구조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역사 속에서 잊혀졌다가 후에 재조명 받은 비운의 학자들이 괜히 있었던 것이 아니겠죠. 다시 재조명이라도 받았으니 행운이 함께한 것 일까요.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고작 4년 정도 학술계에 몸담은 우주 속 먼지 만도 못한 대학원생 1인의 감상평입니다. 그래서 다소 편향되어 있을 수도 있고, 사실관계가 전혀 다를 수도 있습니다. 능력이 부족해서 벌어진 일에 남 탓을 하는 오만함과 자격지심이 가득한 사람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죠. 그러나 저 나름대로는 최대한 좋게 생각해서 해석한 것이기도 합니다.
학계에서 본인의 연구를 널리 알리는 방법은 그리 다양하지 않습니다. 저널에 본인의 논문을 투고하거나 학술 대회에서 발표를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달라 보이지만, 결국 깊게 들어가면 프로세스는 똑같습니다. 연구를 하고, 본인 연구 내용을 설명하는 논문을 쓰고, 그 논문을 리뷰어(평가위원)들에게 평가 받고, 평가를 토대로 논문 게재 여부가 결정이 됩니다.
여기서 재밌는 것은 리뷰어들이 평가를 위해서 특별히 고용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리뷰어들은 사실 같은 필드에서 연구하는 또 다른 연구자 중 1명입니다. 그러니까 어제 만나서 같이 저녁을 함께하고, 연구 내용을 공유하고, 토론했던 그 사람이 내일은 제 논문을 리뷰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리뷰평은 제 논문 게재 여부를 결정하죠.
더 머리가 아파오는 것은 에디터(편집위원)입니다. 에디터는 리뷰어를 선정하고, 리뷰어들의 평가를 취합하여 최종 결정권을 갖습니다. 리뷰어들이 아무리 악독한 평을 써내도, 에디터가 철판 깔고 논문을 게재 시킬 수 있습니다. 에디터는 리뷰어들의 "조언"을 구하는 것이지, 결정권을 위임하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가장 힘이 쎈 사람은 에디터입니다. 이러한 에디터 역시 같은 필드 연구자가 하게 됩니다. 재밌죠?
이 때문에 소위 빅가이(big guy) 연구실로 불리는 학계 카르텔 정점에 있는 연구자는 굉장한 파워를 가집니다. 대부분의 연구자들과 이해관계에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많이 봐왔던 사람, 신뢰하던 사람의 연구는 더 눈 여겨 보고, 평가가 좋아지기 마련입니다. 사람이니까요. 이 때문에 비슷한 연구여도 어느 연구실인가에 따라 게재된 논문의 수준이 달라지고는 합니다.
또 다른 문제는 에디터/리뷰어들의 역할에 대한 아무 보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에디터야 홈페이지에 이름이라도 뜨니, 명예로운 것이지만 리뷰어는 알 길이 없습니다. 리뷰어들은 소위 "열정페이"로 논문을 심사하고 의견을 에디터에게 줘야 합니다. 본인 연구하기도 바쁜데 보수도 없이 남 연구를 평가해줘야 합니다. 웃기지 않나요?
그러니까 당연히 대충 볼 수밖에요. 본인 연구 분야와 꼭 맞는 연구를 리뷰하지도 않을 뿐더러, 솔직히 귀찮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자 이름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결정합니다. 그동안 좋은 논문을 써왔던 사람이라면 더 자세히 읽게 되고,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대충 읽는 거죠. 본인과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충 읽고, 좋은 평을 던져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차라리 SNS처럼 논문 게재가 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 때가 있습니다. 불특정 다수가 남긴 리뷰 평가에 따라 노출 빈도가 높은 곳에 실리는 방식을 채택할 수 있겠죠. 이렇게 되면 특정 소수의 리뷰평에 의해서 논문이 사전 검열되는 일은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근데 이게 쉽지가 않은 것이 학술지와의 경제적인 이해관계가 또 얽혀있습니다.
논문이 학술지에 실리려면, 저자가 돈(게재료)을 내서 실어야 합니다. 그런데 구독자도 그 논문을 보려면 돈을 내야 합니다. 콘텐츠 생성자도 돈을 줘야 하고 콘텐츠 소비자도 돈을 줘야 하는 말도 안되는 수익 구조가 학술지엔 팽배합니다.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개인적으로 탈중앙화가 그 어느 곳보다 시급한 곳이 아닐까 싶네요.
논문을 내는 사람에게 마땅한 보상을 주고, 리뷰어에게도 그 노력에 상응하는 보상을 주어야죠. 보상을 주기는 커녕 저작권도 가져가서 본인들의 수익 활동을 합니다. 특정 저널은 저자의 개인 블로그에 논문 포스팅을 하는 것도 못하게 합니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구조 속에 배를 채우는 것은 생산자가 아닌 출판사입니다.
최근 이런 중앙화되고 부조리한 시스템을 탈중앙화 시키겠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시켜서 적절한 보상을 주겠다는 토큰도 보였습니다. 참 기대가 되는 프로젝트이고, 혹여나 ICO를 한다면 참여할 생각도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들이 큰 성과를 보여, 기존의 고여있는 시스템이 변화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저자가 열정페이라도 할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