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씨의 병원에서 있었던 일

Q는 2주가 넘도록 호전을 보이지 않는 목 상태가 신경 쓰였다. 명치는 따끔거리고 때로는 식초 한 병을 모조리 삼킨 것처럼 시큼한 물이 목줄기를 타고 올라 끊임없이 괴롭혔다. 꽤 오래 피운 담배가 말썽인가 싶은 마음에 지역 내 가장 큰 병원을 찾았다. 이비인후과와 내과를 동시에 다니며 진료를 받았지만 호전이 없자, 엑스선 촬영과 심전도 검사를 받기 위해 응급실 옆 검사실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는 검사표를 받아 들고,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며 한참 동안 주위를 서성였지만, 누구하나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미 한 시간 가까이를 보내고도 아무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자 화가 난 그는 따질 기세로 응급실의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응급실에서는 의사라는 사람들은 죄 모인 것 같은 의사들 모두가 하나의 병상을 둘러싸고 있다. 몇몇의 인턴들은 병상 위의 환자의 가슴과 배를 눌러 혹시 있을지도 모를 환자의 발작에 대비하고 있다. 담당의로 보이는 의사는 환자의 입을 잡아당겨 안 속 깊숙히 투명한 관을 집어넣었다. 갑작스레 들어온 플라스틱의 이물감 때문인지, 환자는 처절하게 반항하고, 주변의 의사들은 팔과 다리를 붙잡아 고정시키느라 애를 먹고 있는 모습이다. 얼마간의 사투 끝에 기어이 관을 집어 넣는데 성공한 의사는 곧 이어 펌프질을 반복했다.

대충 1분 정도 지났을까, 의사는 환자의 동공과 맥박 상태를 번갈아 확인을 해가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환자! 환자! 눈 떠요! 눈 떠봐요!

이내 환자의 입에서 다량의 흰색 액체가 꺽꺽거리며 올라왔고, 주변은 온통 자동차의 부동액과 같은 색상의 액체로 흥건해졌다. 상황을 지켜 보던 환자의 가족으로 보이는 한 여성은 '어떡해, 어떡해' 를 연발하며 발만 동동구르더니, 곧 전화기를 꺼내 들고는 다급히 어디론가 전화를 하러 나간다. 두세 발치 떨어진 곳에서는 119 구급대원들이 환자와 의사를 번갈아보며 구급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고, 현장 조사를 진행 중에 있는 경찰과의 통화 내용을 의사 들에게 실시간으로 전달하고 있었다.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당시 번개탄 예닐곱 개가 타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가스에 중독이 된 것 같아요.
그리고, 현장에서 소주병 하나와 박카스 정도 되는 크기의 농약병이 발견됐다고 합니다.
소주병 안쪽은 하얗게 변했고, 농약병이 비어있는 걸 봐서는 소주와 농약을 섞어 마신 것 같습니다."

조금이라도 아프면 병원을 찾는 Q는 주변 사람으로부터 종종 핀잔 따위를 듣고는 했다. 병원을 너무 많이 간다는 둥, 삶에 대한 애착이 많다는 둥, 만날 끼고 사는 약 때문에 썩지도 않을 거라는 따위의 말들이 그를 귀찮게 하고는 한다. 또 어떤 의사 선생님들은 자주 와서 고맙지만, 너무 예민하게 구는 것이 아니냐고 오히려 정신적인 안정을 주문하기도 한다. 오늘, 그를 맞은 내과 간호사는 차트를 보며 '몸이 이렇게 맨날 아파서 어떡한데? 참 자주 보네'라고 했다. 이 병원을 찾을 때 마다 듣는 소리다. 하여간, 그로서는 지금 이 순간 농약과 가스 연기를 마신 채 저 병상 위에 누운 환자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 나름대로의 어려움이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삶은 그렇게 살아지는 것도 아니고, 마감되는 것도 아니라고 믿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래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응급실 밖에는 두 명의 경찰이 의사에게 현재의 상황과 실제 그들이 출동했을 당시의 일을 다시 한번 일러주고 있는 것 같았다. 병원을 찾은 사람들과 입원 환자들은 무슨 일인지 몹시 궁금했는지 응급실 내부와 경찰을 주시하며 눈을 떼지 못하고 두리번 거리고 있다.

Q는 이런 상황을 몹시 싫어했다. 뭐라도 있을 때면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행동들은 교양 없어 보이고, 며칠 내내 씹어먹을 이야깃거리 주위를 배회하는 하이에나 같아서다. 그 뿐인가, 하지도, 있지도 않은 일들이 살을 붙이고 어울리지도 않는 색을 입혀내지 않는가. 또 이상하리만치 생각해보면 이상할 것 같기도해서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도 곧잘 믿는다는 사실이다.

응급실 병상 위에서는 여전히 환자의 기도를 통해서 먹은 것을 뱉어내게 하기 위한 사투가 벌어지고 있고, 언제쯤 끝날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경험이 부족해 보이는 몇몇의 의사들은 무얼 해야 할지를 몰라서 담당의의 행동만 유심히 살피고 있다. 그리고, Q는 여전히 그 많은 의료진들 사이에서도 무관심 속에서 자리에 앉아있었다. 시계를 바라보던 그는 어느새 외출을 한 지 벌써 두 시간 가까이 되어 가고 있음을 알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 의사에게 다가갔다.

"저...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요."

Q를 보는 건지 아닌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어정쩡한 자세로 눈도 마주치지 않고, 할일을 계속해가면서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지금, 응급환자가 있어서 어려울 것 같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보시죠."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처참한 광경을 보며, 마땅히 그의 말에 대꾸할 대답이 떠오르지 않던 Q는 그저 알았다는 시늉만 하고 다시금 대기석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오늘의 블로그 방문자는 몇이나 되는지 몇번이고 확인하다가 이내 평소 자주 방문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중고장터를 기웃거렸다. 최근의 장터 동향을 보는 둥 마는 둥하다가 곧 질려버린 핸드폰을 손에서 내려놓고 주머니 속으로 푹 쑤셔넣었다. 그때 마침 병상위에 누워 있던 환자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리기 시작했고, 의사는 끊임없이 그를 흔들어 깨우면서 질문을 퍼붇기 시작했다.

'너무 시끄러워. 귀가 아프네. 아저씨, 뭐라도 말 좀 해봐요. 나도 진찰 좀 받게'

"환자! 뭐 먹었어요? 농약 마셨어요? 빨리 말해요! 안 그럼 내가 계속 귀찮게 할 거니까!"

환자는 컥컥거리면서, 귀찮다는 듯 손을 뿌리쳤고, 농약과 함께 섞어 마신 술 때문에 취한 건지, 농약과 가스 때문인지는 모르겠다만, 아무튼 정신이 혼미한 상태라는 것만 확실했다. 좀 전에 밖에 나간 그의 아내로 보이는 여성의 동공은 마치 그 작은 세상 안에서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고 있는 듯하고, 손은 가만히 있지를 못해 공중을 휘저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으니까, 이대로 D 대학병원으로 헬기 이송을 합시다."

그 때 마침, 꺽꺽거리며 몸을 비틀던 환자의 입에서 외마디가 흘러 나왔다.

"흐....살려줘..."

상황을 지켜보던 병상의 환자들도, 지금껏 필사적이던 의료진과 그의 가족들 모두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얼어붙었다. Q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쓴 웃음을 지어보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여간, 술이 문제야 술이.., 술인지 농약인지도 모르고 그냥 들이 부었겠구만'

"자, 다들 수고 많았고, 이제 정리 좀 하자."

응급실 담당의의 목소리가 안정감있게 들렸다. 환자를 온전히 살렸다는 것 때문인지, 환자의 어리석음 보다 당황스러움에 허탈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당장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는 사실의 안도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찌되었든 그는 살았으니까, 아직 끝나는 않은 생의 연속을 마주했으니까. 그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은 표정이다.

소주 냄새인지 농약 냄새인지, 코를 찌르는 냄새를 피해 고개를 돌려 마주친 시선의 끝에서 마주친 젊은 여성을 본 Q는 그의 집사람 생각이 떠올랐다. 간 밤에 얕은 코를 골며 자던 아내의 모습을 잠깐 떠올린 그의 입가에서 웃음이 새어 나와 입꼬리가 오르라내리락 거린다.

'오늘 밤에도, 내일 밤에도 그 사람의 자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을까?'

Q는 고개를 벽에 기대어 젖힌 채 눈을 감았다.

...

어느새 응급실의 큰 소란도, 의료 기구들이 긁어 대는 쇳소리들도 잦아들었고, 의료진들의 얼굴에서도 한결 편한 호흡이 들려오고, 대기실 건너편에서는 마침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Q씨?'


여러분들께서 보시는 중에, 저는 이 글을 수정하거나 덧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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