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줄곧 2월에서 4월사이에 극심한 피로를 느꼈다. 잘 걸리지도 않은 감기임에도 유독 걸렸다 하면 그맘때였고, 입안 가득히 구내염이 창궐한 때도 그때였다. 그 중 3월경에 두드러졌는데, 누가 보더라도 혹시 사람이 죽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나는 심각한 ‘봄 병’을 앓았다. 사람들은 이런 고충을 털어놓을 때 마다 신기하게 여기다가도 별일 아니라는듯 한곁같이 ‘식곤증’ 내지 ‘춘곤증’으로 결론지었다. 처음에는 나도 그런 줄로 알았다. 잠이 덜 깬 아이의 마지막남은 잠을 청하는 잠투정처럼 졸음을 이겨내지 못하고 이불속으로 머리를 처박은 것 같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잘 놀다가도, 티브이를 보다가도 고개를 고꾸라뜨리며 잠이 든 경우가 여러 수백일은 되지 싶다. 노래방이며, 게임방이며, 영화관이나 몇번되지는 않지만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도 그런 일은 왕왕 벌어졌다.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며 일을 하다가도 잠이 들어서 중요한 미팅 시간을 놓치는 어이 없는 일도 있었고, 팀장님 주재의 레드 팀 미팅에서 정작 나의 의견이 가장 필요했던 순간에도 나는 잤다. 싫은 소리를 들은 것이 한두번이 아님은 말해서 무엇하랴. 그뿐만일까. 평소에 극한 운동을 하는 경우는 소원했고, 일년에 고작 소주 두어병을 마시는 내가 운전을 하다가도 몇번에 걸쳐서 아차싶은 상황을 경험했으니, 여간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다.
대게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는 밥을 먹고 난 후나, 전날의 숙취 또는 일찍 일어나서 잠이 부족할 때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식곤증이나 춘곤증의 경우에. 설령 그렇더라도 서서히 눈꺼풀이 내려앉으면서 고개를 떨구어 잠에 들텐데, 나의 경우는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다르고, 어떤 경우에는 내가 생각해도 금방이라도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엄습하기도 할 정도였다. 그냥 ‘푹!’ 하고 꺼져버린다. 마치, 누군가 잘 돌아가고 있는 컴퓨터 본체의 전원 플러그를 뽑아버리기라도 한 듯, 그냥 그렇게 ‘위이잉~’ 하는 쿨러의 마지막 남은 외침을 들을 사이도 없이, 나는 꺼졌다. 때때로, 영화가 최고조로 달려갈 즈음 어디선가 나타난 주인공의 손가락 하나로 중앙 통제 장치에 의해서 제어되는 로봇들을 순식간에 제압하는 장면을 연상시키는 괴상한 잠 버릇이었다.
이 때문에, 몇번의 병원 진료와 검사를 받기도 했지만, 그때 마다 ‘소견 없음’. 원인도 이유도 알 수 없었던 나로서는 그냥 살자 싶었고, 봄이 오면 오는대로 그런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또한, 팀장이며 사무실의 동료들 역시 ‘또 그런가 보다’ 하고 우스갯소리로 ‘전원 꺼짐’이라고 히히덕 거리는 일은 일종의 덤이자, 뜻하지 않게 그들에게 제공한 나의 몸 개그였다고 할까.
결혼을 하고 난 후, 첫해에도 어김없이 그랬다. 그러나, 이전과는 달리 그 횟수가 줄어들었고, 올해 봄은 그런 것도 거의 모르고 지나고 있다. 이런 나를 보며 심히 걱정을 하던 아내의 입에서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는 것을 보아서는 그녀도 잊어버릴만큼이나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그런 경우는 몇차례를 제외하고는 전혀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래도록 꾸준히 피웠던 담배와 영양가 없는 인스턴트 위주의 식단이 원인인 것 같다. 기숙사와 회사를 오가며 운동이라고는 조금도 하지 않았고, 기껏 먹는 음식이라고 해봐야 맛없는 구내 식당의 식사였는데, 그마저도 잘 입에 대지를 않았다. 배는 고파도 맛 없는 것은 죽어도 못먹겠다는 심산으로 차라리 몸에 좋지도 않은 컵라면이나 먹어댔으니 몸이 좋을래야 좋을 수가 없었겠지.
그래도 다행이다.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더 이상 혼자의 인생을 살지 않아도 되고, 컵라면으로 끼니를 떼우지 않아도 된다. 입맛이 떨어지기라도 할 때면 맛나는 음식을 해주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그녀의 모습은 언제나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한다. 새벽 같이 출근을 해야하는 주간에는 어김 없이 나보다 일찍 일어나 졸린 눈을 비벼가며 뜨거운 가스렌지 앞에서 묵묵히 주걱을 젓는다. 뒤이어 늑장을 부리며 일어난 나를 보며 ‘안녕!?’ 하고 반긴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정성을 다한 아침 밥을 선사하는 아내 덕분에 예전 보다 훨씬 더 건강해졌다. 내 마음 가득히 들어찬 풍요와 사랑만큼이나 살을 찌웠다.
나는 결국 글의 마무리가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고, 글의 종착지 또한 이곳임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예상치 못한 것은, 글의 끝 문단을 써내려가려던 방금, 아내가 서재문을 열어 젖히고는 고개를 빼곰히 내밀어 내게 물어 온다.
“여보, 밥 언제 먹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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