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까지 업비트 차트를 전전긍긍하며 지켜보다가 너무 졸려서 잠깐 눈을 붙인다는 게 그만 오후까지 자버렸다. 예전엔 우선 잠에서 깨면 베개 위쪽을 더듬어 안경집부터 찾았다. 나는 시력이 몹시 나빠 안경이 없으면 장님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타에 빠진 요즘은 안경을 쓰기도 전에 휴대폰으로 코인 시세부터 보게 됐다. 오늘도 눈을 덜 뜬 상태로 주위를 더듬어 휴대폰부터 찾는데, 뜬금없이 손에 끈적끈적한 액체가 묻었다. 뭐지, 나 자는 동안 고양이(나는 고양이를 두 마리 키우고 있다. 첫째와 둘째다)가 이불에다가 토해놨나 싶었다.
고양이는 자주 토하는 동물이다. 헤어볼(고양이는 자기 몸을 핥아 청결을 유지하는데, 그 과정에서 삼킨 털이 뱃속에서 뭉쳐서 그걸 정기적으로 토해낸다)일 때도 있고, 사료를 급하게 먹어 소화가 덜 된 걸 뱉어낼 때도 있다.
고양이를 처음 키워봤던 옛날엔 고양이가 토하면 깜짝 놀라 울면서 동물병원에 전화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상황이라, 아무렇지도 않게 토사물을 관찰하고 뒤적거려 본다. 토사물 색이 무난하면(붉은 피가 섞이거나 초록색이 섞이지 않은 색) 음, 별 거 아니군, 하고 휴지로 닦아낸다. 대체로 99%는 별 거 아닌 토사물이었다.
나는 밥을 허겁지겁 먹은 첫째가 뱉은 덜 소화된 사료 덩어리, 또는 둘째가 배출한 헤어볼을 예상하며 깨끗한 손으로 안경을 찾아 꼈다. 그런데 이럴 수가, 손에 묻은 건 새빨간 핏덩이였다. 순간 정신이 아찔했다. 허둥지둥 일어나서 이불을 확인해 봤더니 핏물이 들어 있었다. 그것도 아직 말라붙지 않은 피였다. 기껏해야 5,6분쯤 전에 나온 피인듯 싶었다.
5,6분 전이면 잠이 깨기 직전이라 고양이가 토하는 소리를 들었어야 했는데 그런 소린 듣지 못했다.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손을 씻고 첫째의 얼굴부터 확인했다. 몇 년 전 경험이 떠올라서였다.
4년 전인가, 그때도 자다가 눈을 떴을 때 이불에 피가 고여 있던 적이 있었다. 놀라서 두리번대다가 첫째의 얼굴을 봤더니 입 주변이 온통 피투성이였다. 그 모습을 보고 너무 놀라다 못해 눈물부터 나왔다. 알고 봤더니 송곳니가 깨져 피가 철철 났던 거였다.
그때가 한여름이었는데, 10kg이 넘는 거구의 첫째를 데리고 엉엉 울면서 동물병원에 가느라 엄청 힘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하필이면 그날따라 택시가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첫째가 든 이동장을 들고 동물병원까지 20분 넘게 걸어갔다.
처음엔 첫째가 많이 아플까봐 눈물이 났지만, 나중에는 첫째가 끔찍하게 무겁고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아서 눈물이 났다. 햇볕은 사람을 죽일 것처럼 숨 막히게 쏟아지고, 인적 없는 도로에 이따금 차가 쌩~ 지나갈 때마다 택시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실망하는 게 너무 서글펐다.
걷다가 힘들어서 도저히 더 못 걸을 것 같아 멈춰서 쉬고, 또 조금 걷다가 쉬길 반복하면서 간신히 동물병원에 도착했다. 내 얼굴이 눈물과 땀으로 얼마나 엉망진창이었던지, 간호사가 고양이는 괜찮을 거라고 나를 달래면서 세수하고 오라고 할 정도였다. 첫째 상태를 확인하지도 않았으면서 말이다.
아무튼 그때의 경험 탓에 첫째 얼굴을 봤는데 무척 깨끗했다. 침 한 방울조차 흘리지 않은 상태였다(첫째는 깊은 잠을 자면 사람처럼 코도 골고 침도 좀 흘린다) 혹시 둘째인가? 하고 둘째 얼굴도 확인했는데 둘째도 멀쩡했다.
아니 그럼 뭐야, 대체 이 피는 어디서 나온 거지, 뭔 벌레라도 죽였나, 아니면 설마 내 피인가, 하고 혼란스러운 상태로 무릎으로 기어 핏자국을 추적했다. 핏자국은 큰방에서부터 거실로 점점이 떨어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까 마냥 새빨간 피는 아니고 뭔가 좀 묽었다. 나는 다시 첫째와 둘째의 상태를 확인했고, 비로소 피의 출처를 알 게 되었다. 범인은 바로 첫째의 엉덩이였다. 첫째의 항문낭이 또 터지고 만 것이다. 나는 안심하는 한편으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첫째에겐 고질적인 병이 있다. 항문낭 파열이 그것이다. 이건 고양이보다 강아지가 훨씬 많이 걸리는 병이다. 사실 내가 가는 동물병원 원장님은 고양이 항문낭 파열 사례를 첫째를 통해 처음 봤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도 고양이를 여러 마리 키웠고 지금도 키우고 있지만, 고양이도 항문낭에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을 첫째를 통해 처음 알았다.
원인을 알았으니 이젠 치료를 해 줄 차례다. 비록 오늘은 일요일이라 동물병원이 문을 열지 않는 날이지만, 나에게는 동물용 항생제가 있었다. 첫째가 지난번에 항문낭이 파열되었을 때 병원에서 받아온 약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사람도 그렇지만 고양이는 약 먹는 걸 끔찍하게 싫어한다. 사람은 그나마 말로 설득해서(이 약을 안 먹으면 너는 죽어요! 빨리 먹어랏!) 약을 먹일 수 있는데 고양이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이 약을 왜 먹어야 하는지, 먹지 않으면 얼마나 더 아프게 되는지 아무리 설명해도 그저 이에엥~ 에에엥~ 하며 약을 안 먹겠다고 격렬하게 반항한다.
예전엔 고양이에게 약을 먹일 때 캔을 따서 건더기에 섞어 줬다. 나는 평소 고양이에게 사료만 주지, 캔을 거의 주지 않기 때문에 캔을 따주면 약이 좀 섞였어도 기뻐하며 다 먹어치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첫째와 둘째는 캔에 약을 섞으면 눈치를 채고 안 먹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약이 쓰니까 그 맛을 느끼고 거부하는 것 같았다. 나중에는 약을 안 탄 캔도 본체만체하고 입도 대지 않았다. 내가 약 먹일 일이 있을 때만 캔을 따다 보니 캔=약으로 학습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렇게 비싼 약과 캔을 동시에 버리는 일이 자주 발생하자 나는 다른 방법으로 약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검색을 해봤더니 어떤 사람은 딸기쨈 같은 끈적끈적한 음식에 약을 타서 고양이 입가에 묻힌다고 했다. 그럼 고양이가 어쩔 수 없이 입가를 핥으면서 약을 먹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실험해봤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첫째가 약이 묻은 입가를 조금 핥더니 입에 거품을 물고 그대로 가만히 있는 것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더 이상 입가를 핥지 않고 입에서 침만 뚝뚝 떨어졌다. 그야말로 바닥에 조그만 물웅덩이가 생길 지경이었다. 나는 포기하고 첫째 입을 닦아줬다.
두 번째로는 고양이 입을 억지로 벌리고 알약을 목구멍 깊숙이 던져넣는 방법을 써봤다. 앞발로 나를 할퀴지 못하도록 첫째를 담요로 꽁꽁 싸맨 뒤에 입을 억지로 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첫째는 또 입에 거품을 물고 머리를 마구 흔들었다. 첫째의 침이 사방으로 흩날리는 와중에 어찌어찌 목구멍 속에 알약을 던져 넣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첫째는 맹렬하게 캭캭거리며 알약을 퉷 뱉어버렸다. 정말로 퉷 뱉어서 알약이 내 얼굴에 명중했다. 이래서는 도저히 약을 못 먹일 것 같아 동물병원에 전화했더니 약 먹이는 주사기가 있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주사기 끝에 바늘이 없고 대신 알약을 끼우는 고무가 달렸는데, 그 고무에 알약을 끼워 고양이 입에 집어넣어 발사시키면 얼덜껼에 꿀꺽 삼킨다는 거다.
진작 알려줬으면 미리 사왔을 텐데. 나는 투덜거리면서 동물병원에 가서 약을 새로 받아오는 김에(그동안 받은 약은 첫째가 전부 퉷 뱉어서 못 먹이고 다 버리고 말았다) 약 먹이는 주사기도 샀다. 그리고 동물병원에서 배운 대로 첫째에게 약을 먹이려고 했지만... 이 주사기도 만능은 아니었다. 첫째는 또 약을 퉷 뱉어버리고 말았다.
이쯤 되면 화가 난다. 나는 자길 위해 비싼 돈 들여 약이랑 주사기를 샀는데, 아프지 말고 상처 잘 아물라고 내 딴엔 엄청 큰돈을 썼는데 이놈의 고양이가 주인의 마음을 알아주질 않으니까 진짜 막 열이 받아서 손이 다 떨렸다. 또 약을 먹일까봐 도망다니는 첫째를 억지로 잡아다가 앉혀놓고 야단을 마구 쳤다.
너 이놈 자식! 이 약을 먹지 않으면 엉덩이에서 계속 피가 질질 난다! 상처가 덧난다! 그럼 이번엔 아예 수술까지 해야 돼! 너 동물병원 가는 거 싫어하잖아. 거기 엄청 큰 개 있는 거 봤지? 약 안 먹으면 동물병원 가서 그 개랑 같이 살아야 돼. 그래도 안 먹을래? 어?
물론 첫째는 알아듣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이 인간이 아침부터 귀찮게 왜 이래,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실컷 한 뒤에 다시 첫째를 담요로 꽁꽁 묶고 약 먹이기 시도를 했다.
이번에도 첫째는 약이 목구멍에 닫는 즉시 뱉었지만, 나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첫째의 침에 녹아 터진 알약을 버리고 또 새 알약으로 몇 번 더 도전한 끝에 비로소 진짜로 약을 먹이는 데에 성공했다. 약을 먹인 즉시 입을 꽉 다물게 하고 10초를 기다리는 게 정답이었다. 첫째가 꼴깍, 하고 약을 삼킬 때까지 기다린 것이다. 그런 다음에 물 먹이기용 주사기(이건 동물병원에서 공짜로 줬다)로 물을 먹여 혹시라도 약이 식도에 달라붙는 일을 방지했다.
마침내 약 먹이기에 성공하고 나니까 요령이 생긴 건지, 다음부터는 약 먹이기가 한결 수월했다. 그래도 실패하는 경우가 꽤 있어서 동물병원에서 약을 타올 일이 있으면 늘 넉넉하게 사온다. 약을 일주일간 먹여야 하면 한 10일치를 받는 식으로 말이다. 오늘 첫째에게 먹인 약도 예전에 넉넉하게 사왔다가 남은 약이다.
오늘은 다행히 약을 버리는 일 없이 한 번에 무사히 먹였다. 그러나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다. 항문낭 파열이 잦아지면 수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첫째는 나이가 열 살이 훌쩍 넘은 늙고 살찐 고양이다. 만약 수술을 하게 된다면 마취에서 무사히 깰 지가 제일 걱정이다. 첫째가 나 같은 가난한 주인을 만나 고생만 하다가 호강 한번 못 해보고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난다. 부디 전처럼 약으로 해결이 되는 상황이었으면 좋겠다.
오늘만큼은 업비트를 끄고 첫째만 보고 있겠다고 다짐해본다. 어차피 코인 시세가 끊임없이 아래로 추락 중이라 차트를 안 보는 게 정신 건강에 더 나을 것 같기도 하다. 그 누구도 고칠 수 없었던 나의 단타 중독을 잠시나마 고쳐준 첫째가 효자다. 앞으로 나랑 딱 10년만 더 같이 살면 좋겠다는 소망을 담아 오늘의 일기를 마친다.
멋진 대문 그림을 선물해주신 @thecminus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