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타 지옥 재입성

제목을 보고 어이구 한심한 인간! 또 시작이군! 하고 한숨 쉬며 이 글을 누를 분이 계실 것 같아 황급히 변명부터 한다(최근 나의 일기는 늘 변명으로 시작하는 기분이 드는데 아마도 기분 탓인 것 같다. 진짜인지 아닌지는 절대로 확인하지 않을 거다)

제목은 그냥 낚시용으로 달았다. 저번에 올린 글 단타 지옥 탈출 바로 다음에 이런 글을 쓰면 재미있겠다 싶어서.

이번에도 어쩌다 보니 블로그에 며칠 글을 올리지 않았다. 이 말도 자꾸 쓰는 것 같다. 이 무슨 재방송 인생이란 말인가. 딱히 특별한 일은 없었고 슬슬 3월, 봄이 찾아올 예정이라 봄맞이 준비를 했다. 원래라면 대청소를 해야겠지만 아직 날이 추워 창문을 활짝 열면 고양이들이 질색해서 다음으로 미뤘다. 좀 귀찮기도 했다.

그래서 집안 대청소 대신 컴퓨터 하드 드라이브 대청소를 했다. 잡다하게 막 저장해놓은 자료, 또 막 써서 아무 폴더에나 넣어둔 글들(지난번에 정리를 다 하지 못했다)을 정리한 것이다. 특히 올해는 무조건 신작을 내겠다고 결심했기에 그동안 썼던 원고들 중 출판사에 투고할 걸 고르려고 읽어봤다. 그런데 슬프게도 마음에 차는 원고가 단 한 개도 없었다.




나는 보통 소설을 쓴 직후엔 그 소설이 엄청 마음에 안 든다. 내가 썼지만 너무 노잼이고 결말도 영 엉성해서 못마땅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 소설을 쓰느라 낭비한 시간과 열정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소설을 컴퓨터 하드 깊숙이에 감춰둔다.

그러다 한 몇 달쯤 지나 슬슬 신작을 내야 하는데 새 소설 쓰기가 지지부진해지면 전에 썼던 소설을 꺼내본다. 신기하게도 완성 직후에는 그렇게 맘에 들지 않던 소설이 몇 달 후에 읽어보면 마음에 쏙 들 때가 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읽으면서 정말 재미있어서 박수를 치며 웃어대거나, 반대로 무척 슬퍼진 나머지 훌쩍훌쩍 울기도 한다.

세상에 내가 이런 감동적인 소설을 썼다니! 내 손에서 이런 대작이 창조되다니! 이건 무조건 대박이야! 초대박이라구! 나는 이제 부자가 된다!

부자가 되면 뭘 하면 좋을까? 일단 한우를 배터지게 먹자!(마지막으로 먹은 한우는 4,5년 전 남자친구가 명절 선물로 받아온 건데 정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맛있었다. 그야말로 맛의 극치, 천상의 맛이었다) 그런 다음에는 이사를 가야지! 방 세 개에다가 안방에 화장실이 따로 있는 초호화 아파트에서 사는 거야!

나는 버릇처럼 행복회로를 돌리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출판사에 원고를 보낸다. 그러고는 인내의 시간 한 달. 전에 계약했던 적이 있는 출판사라면 이렇게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지만, 계약한 적 없는 출판사에서는 짧으면 1주, 길면 두 달까지도 기다려야 답장을 받을 수 있다.

처음 며칠은 출판사의 메일을 기다리는 게 즐겁다. 행복회로도 신나게 돌아간다. 상상 속에서 새로운 아파트는 물론이고 방 세 개의 용도와 인테리어까지 결정한다.

제일 작은 방은 침실이다. 나는 언제나 침대 하나만 달랑 있는 침실을 꿈꿨다. 많은 재택근무자, 프리랜서들이 침실과 작업실이 분리된 환경을 원하고 나도 그렇기 때문이다.

집에서 독립한 이후 침대를 쓰지 않고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잔 지가 10년이 넘었는데, 요즘 들어 푹신한 침대가 부쩍 그립다. 바닥 이부자리에 비해 침대는 자리를 많이 차지해서 지금 사는 집에서는 못 쓴다(침대 살 돈이 아깝기도 하다) 하지만 부자가 되어 큰 집에서 산다면 당장 침대를 사서 쓸 것이다.

제일 큰 방은 작업실이다. 문을 열면 책상에 앉은 내 모습이 정면으로 보이게끔, 길쭉한 사무용 책상을 문을 향해 돌려서 놓고 창문에는 블라인드를 쳐놓을 것이다. 창문을 등지고 열심히 글을 쓰다 지치면, 커피잔을 손에 들고 창문 앞에 서서 블라인드의 좁은 틈 너머로 바깥을 구경하며 머리를 식힌다(드라마의 단골 캐릭터 멋진 연하남 실장님 스타일로)

중간 크기 방은 고양이 방으로 쓴다. 물론 고양이들은 자기 방이 있든 말든 늘 내가 있는 방에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첫째는 내 옆 의자 위에, 둘째는 책상 위 키보드 옆에 앉아서 졸고 있다.

첫째는 10kg이 넘는 초대형 뚱뚱보 고양이고 나이도 10살(11살? 12살? 어쩌면 13살!)이 훌쩍 넘어 점프력이 사라졌다. 그리 높지 않은 의자까지 뛰어오를 수도 없다. 그러나 늙고 돼지여도 고양이는 고양이라서 높은 곳을 좋아한다. 그래서 의자에 올라갈 수 있게 바로 옆에다가 계단 대용으로 앉은뱅이 밥상을 붙여두었다.

하지만 첫째는 나를 닮아 게으르다. 뜻밖에 똑똑하기도 하다. 그래서 직접 밥상을 거쳐 의자로 올라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보며 울어댄다. 빨리 자길 들어서 의자 위에 올려달라고 말이다. 첫째의 목소리는 덩치에 맞지 않게 가냘프고 처량하기 때문에 우는 소릴 들으면 마음이 약해진다. 어쩔 수 없이 영차~ 하고 묵직한 첫째를 들어다가 의자에 올려준다.

언제부터인가 첫째는 의자에 스스로 올라가지 못하고 내가 올려줄 때까지 하염없이 울게 됐다. 이젠 밥상 위에도 못 올라갈 만큼 관절이 많이 약해졌구나, 정말로 늙은 고양이가 됐구나, 싶어 마음이 짠해졌다. 얼굴은 여전히 전성기(10년 전) 시절처럼 귀여운데 속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슬펐다. 그래서 이제는 첫째가 조금만 울어도 바로 벌떡 일어나 의자 위에 올려줬다.

그런데 어느 날 밖에 나가 쓰레기를 버리고 왔더니 첫째가 스스로 의자 위에 올라가 있었다. 뭐지? 잠깐 기적이 일어났나? 싶었는데 며칠 뒤에도 자고 일어났더니 첫째가 의자 위에서 졸고 있었다.

나는 한국인이고 삼세번을 좋아한다. 두 번은 어쩌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멀리 있는 마트까지 갔다 오느라 좀 긴 외출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의자에서 눈을 꿈뻑거리며 나를 보는 첫째를 발견하곤 진실을 깨닫게 되었다.

첫째는 여전히 밥상을 거쳐 의자 위까지 스스로 올라갈 수 있을 만큼 덜 늙었다. 그런데 직접 올라가기가 귀찮으니까 나를 부려먹는 것뿐이었다. 마치 남자친구가 이 집에 놀러오면 내가 ‘여봉~ 냉장고에서 음료수 좀 꺼내줘용’하고 부려먹는 것처럼 말이다(여봉~ 하고 간드러지게 부르면 남자친구는 질색하는 표정을 짓는데 그 표정이 진짜 제대로다. 아주 쓴 한약을 원샷한 것 같다. 그 표정을 보고 싶어서 일부러 더 여보오옹~ 하고 강조해서 부른다)

비록 첫째가 나보다 더한 게으름뱅이라는 진실을 알았지만, 그래도 옆에서 울면 마음이 약해져서 의자에 올려주게 된다. 반면 둘째는 날쌘 고양이고 점프력도 좋아서 냉장고 위도 훌쩍 뛰어오른다. 그래서 내가 컴퓨터 책상 앞에 앉으면 알아서 책상 위로 훌쩍 뛰어올라 방석에 자리를 잡는다.

문제는 둘째에게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는 거다. 나는 글을 쓰면서 뭘 마시는 걸 좋아하는데, 커피는 하루 한 잔(맥심 모카골드 두 개)만 마시기 때문에 나머지는 전부 보리차로 대체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쓸 마음을 먹고 컵 가득 보리차를 따라서 책상에 두면, 둘째가 슬그머니 다가와서 보리차에 얼굴을 들이댄다. 그럼 손바닥으로 얼굴을 쭉 밀어서 방석에 억지로 앉힌다.

그런데 글쓰기에 집중하다 보면 시야가 좁아지면서 둘째의 행동을 포착하지 못할 때가 있다. 문득 찰랑찰랑대는 소릴 듣고 옆을 확인하면 어느 샌가 둘째가 보리차를 할짝할짝 마시고 있다. 이런 보리차 도둑! 하고 뒤늦게 둘째의 얼굴을 밀어내봤자 이미 보리차엔 고양이 침이 묻고 만 상태다.

나는 잠시 고민한다. 하지만 컵 가득 채운 보리차를 버리기가 아까워서 그냥 못 본 셈치고 마신다. 그나마 고양이 침이 묻은 상태는 나은 편이다. 내가 얼마쯤 마신 탓에 컵에 남은 보리차가 절반 이하가 되면, 둘째는 혀가 아니라 앞발을 보리차에 집어넣는다. 발바닥에 묻은 보리차를 핥아먹으려는 것이다.

그럼 어쩔 수 없이 보리차를 버려야 한다. 왜냐햐면 고양이는 앞발 뒷발을 모두 이용해 이 더러운 집구석을 돌아다니는 데다가 모래 화장실까지 쓰니까. 실제로도 둘째가 앞발을 넣었던 컵엔 털과 모래 찌꺼기가 둥둥 떠 있다. 아무리 보리차가 아까워도 그런 물을 마실 순 없다.

가끔은 화장실에 갔다 와서 둘째가 발 넣은 줄 모르고 보리차를 마시다가 맛이 찝찝해서 컵 속을 들여다본 뒤에야 알아챈 적도 있다. 오늘도 두 번이나 당했다. 나쁜 고양이! 배드 캣!

왜 자기 마시라고 떠놓은 물은 안 먹고 남의 보리차를 탐내는 걸까? 고양이도 수돗물의 미묘한 맛을 싫어하는 걸까?

한 번은 실험삼아 고양이 물그릇에 수돗물 대신 보리차를 줘보기도 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물그릇에 둔 보리차는 입도 대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 물을 훔쳐먹는 재미 때문에 그러는 것 같다. 앞으로는 뚜껑 있는 컵을 써야겠다. 고양이 모래가 둥둥 뜬 물은 이제 그만 마시고 싶다.




어... 나는 분명히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놓고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었는데 어쩌다 자식 흉보기(나에게 고양이들은 자식이다)가 되었을까? 의식의 흐름이 이렇게까지 엉망진창일 줄이야. 아무튼 출판사 원고 투고 이야기로 돌아간다.

처음 일주일은 기다리는 게 즐겁지만, 8일째부터는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메일함을 들락날락하면서 출판사 메일을 애타게 기다린다. 내 원고 투고 성공률이 기껏해야 10%쯤이라 성공할 확률보다 망할 확률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이건 공모전 투고 성공률을 빼고 계산한 거다. 공모전까지 포함해서 계산한다면 2%나 될지 의심스럽다. 그러고 보니 어제 내가 비트코인으로 얻은 수익이 2%인데...

헉 나도 모르게 또 의식의 흐름대로 써버릴 뻔했다. 게다가 또 너무 길게 써버리고 있다. 나의 이 길게 쓰기 버릇 때문에 퇴고가 정말 고통스럽다. 초고에서 최소 10%, 많게는 20%까지 분량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문득 퇴고하면서 잘라낸 부분을 블로그에 올려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출간한 소설의 잘라낸 부분을 올리긴 좀 그렇지만, 투고 실패해서 버린 원고의 잘라낸 부분은 괜찮을 것 같다. 게다가 나한테는 그런 망한 원고가 무척 많아서 잘라낸 부분만 단편처럼 올려도 글을 30개는 쓸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대체 자랑인지 자학인지 이런 얘길 뭐 좋다고 쓰면서 웃고 있는지(정말로 소리내서 웃었다! 기분이 좋아졌다!) 모르겠다. 일단 여기서 글을 줄이고 출판사 투고 이야기(수없이 많은 실패담 나열)는 다음에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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