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원래 어제 쓰려고 했다. 하지만 또 성급하게 글을 올리고 후회하게 될까봐 하루 더 여유를 가지고 생각해보느라 이제야 쓰게 됐다. 그렇다. 나는 그저께 언팔로우 이벤트란 글을 쓴 걸 마음 깊이 후회하고 있다. 이걸 읽으면서 ‘내 그럴 줄 알았다’고 생각하신 분이 분명히 있겠지?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진짜 바보 멍청이다!
나는 게으른 인간이다. 청소도 잘 안 한다. 두 마리 고양이가 뿜어내는 털들이 바닥에 쌓이고 뭉쳐 마치 사막을 굴러다니는 풀덩어리(회전초)처럼 굴러다닐 때까지 방치하기 일쑤다.
설거지도 한 번에 끝내지 않고 컵 하나, 수저 두세 개를 깨작깨작 씻다가 내버려둔다. 그래서 지금도 싱크대에 씻어야 하는 냄비와 그릇이 쌓여 있다. 그나마 물을 가득 부어두긴 했다. 그래야 밥풀이 딱딱하게 말라붙지 않고 잘 씻기니까.
책상 위는 더 엉망진창이다. 씻어야 하는 컵이 세 개나 줄지어 서 있고 읽다 만 책, 정리하다 만 영수증과 지로통지서, 전단지가 팔꿈치 높이까지 쌓여 있다. 심지어 코를 푼 휴지까지 그냥 있다(나는 아직 감기가 낫지 않았다. 귤을 더 많이 먹어야 할 것 같다)
이 블로그에다 매일같이 나의 못생김을 자랑하는 것으로 모자라 더러움까지 자랑하려는 건 아니다. 어머니 표현에 의하면 ‘방에서 귀신 나올까 무서울 만큼’뭘 치우고 정리할 줄 모르는 사람이란 걸 말하고 싶어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특정한 일에 한해선 정리에 몹시 신경을 쓰고 부지런을 떤다. 나는 매일 밤 자기 전에 베개와 이불 위치를 바르게 하는 데에 최선을 다한다. 베개는 정중앙, 이부자리 끝선에서 살짝 튀어나와야 하며(너무 많이 튀어나오면 안 된다. 약 5cm쯤 나오면 보기도 좋고 편안하다), 이불은 사각 귀퉁이가 전부 완벽하게 펴져 있어야 한다.
정리를 끝내고 자려고 누웠다가도 이불 상태가 마음에 안 들면 우선 발로 이불 끝을 차서 편다. 그래도 영 마음에 안 들면 벌떡 일어난다. 다시 이불을 팽팽하게 펴고 조심스럽게 기어들어가서 눕는다. 그러고는 팔을 머리위로 뻗어 안경집이 베개 바로 위에 딱 붙어있는지, 휴대폰이 왼쪽 위- 전기장판 온도조절기 옆에 있는지 확인한다.
또 나는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잠을 자는데, 날이 춥기 때문에 고양이들은 이불 속으로 들어와 내 몸에 바짝 달라붙는다. 그때 첫째는 반드시 내 오른쪽 옆자리에 누워야 하고 둘째는 왼쪽에 누워야 한다.
가끔 둘이 이불속을 들락날락거리다가 서로 자리가 바뀔 때가 있다. 그러면 어쩐지 불편하고 거슬려서 자려고 자리를 잡은 고양이들을 억지로 깨워서(주로 엉덩이를 쿡쿡 찌른다) 원래 위치로 가게 한다.
불시에 엉덩이를 찔린 고양이들은 이잉, 에에엥, 하고 짜증을 내지만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체념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올바른 위치에 자리를 잡는다. 나는 그제야 만족하고 잘 수 있다.
이 버릇은 혼자 잘 때만이 아니라 친구나 남자친구가 집에 놀러와서 잘 때도 튀어나온다. 두 사람 다 이미 내 이상한 이불 집착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별소리는 하지 않는다. 자려다 말고 내가 벌떡 일어나서 이불을 막 정리해도 그러려니 한다. 몇 번씩 일어나서 이불을 펴면 대충 하고 자라며 귀찮아하긴 하지만.
쓰고 보니 가벼운 강박증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미친듯이 숫자를 세거나 물건들을 특정한 방식으로 배열하거나 손을 5분에 한번씩 씻지는 않으니까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가끔은 이런 버릇이 다른 데서도 튀어나온다. 평소엔 남자친구가 쓰레기집 아줌마라고 놀리든 말든 거실 입구에다 산 같이 쌓아놓은 재활용품을 무시하며 살다가, 갑자기 사람이 달라진 양 부지런해져서 하루만에 싹 정리해서 내어놓는다(지금은 다시 평소의 나로 돌아간 상태라 재활용품이 내 허리 높이까지 쌓여 있다. 변명을 하자면 고양이들이 박스 긁는 걸 좋아해서 안 버리고 있다)
또는 현재 같이 일하고 있는 출판사에서 이미 퇴직한 전 담당자, 전전 담당자, 전전전 담당자(출판사는 유독 퇴직률이 높은 것 같다)에 예전 살던 동네 택배 기사님까지 그대로 뒀던 카카오톡 친구 목록을 어느 날 돌연 싹 정리하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은 친구 목록에 사람이 가족까지 포함해 딱 네 명 남았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아마 눈치채셨을 것이다. 내가 하려는 변명이 어떤 식인지에 대해.
전 글에서 썼듯, 나는 초심을 잃고 소통이 부담스러워졌기에 팔로우를 정리하려 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며 팔로우를 해놓고선 마이 피드에 글이 너무 많이 올라온다는 핑계, 또 내가 모르는 분야라는 핑계로 글을 읽지 않고 댓글도 달지 않아서 죄송스러웠던 것이다. 또한 맞팔 상태에서 아무 말없이 나만 언팔을 하려니 죄책감이 들어 미리 알리려는 목적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글을 잘못 썼다. 생각이 한없이 얕았으며, 그나마도 생각한 대로 쓰지도 못했다. 내가 언팔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던 분들께서 ‘나를 언팔해도 괜찮다’는 댓글을 다신 걸 보고 너무 놀랐고, 더욱 큰 죄책감이 들었다.
언팔당해서 기분이 좋을 사람이 있을 리 없다. 나만 해도 맞팔 상태였는데 언제인지 모르게 언팔 당한 걸 보고 기분이 좀 그랬다.
아마 그분들께서도 그렇게 말은 하셔도 막상 언팔을 당하면 기분이 좋지 않으실 거다. 하지만 나를 위로해주고 싶고 응원해주고 싶어서 그런 말씀을 해 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런 위로와 응원을 받을 자격이 없는 못난 글을 써버렸는데 말이다.
나는 그 글을 올린 지 불과 두 시간만에 내가 저지른 잘못을 깨달았다. 심장이 쿵쿵 뛰고 얼굴이 뜨거워지다 못해 양쪽 귀가 마치 불에 달군 쉿덩이처럼 새빨개졌다. 순간 도망칠까, 싶어지기도 했다. 그동안 짧게나마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던 분들께 상처를 주고 실망감을 안겨드린 것 같아서, 앞으로 내가 그걸 무슨 수로 만회할 수 있을지 막막해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원래 리셋증후군도 있다. 소설이 망하면 즉시 필명을 바꾸고 신인 작가인 척했고(이건 자의 반 타의 반이긴 하다. 몇몇 장르 출판사에서는 망작을 많이 쓴 작가에겐 필명을 바꾸고 새 출발하길 권한다) 블로그도 여러 군데 갈아치웠다.
한때는 꽤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과도 사이가 조금 틀어지거나 어색해지면 바로 연락을 끊어버렸다. 그래서 스팀잇을 아예 관두거나 새로운 블로그를 만들어서 새로운 사람인 척 해볼까, 하는 궁리도 해봤다.
하지만 그건 더더욱 멍청한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운좋게 인연이 닿아 알게 된 분들과 새로운 사람이 되어 다시 대화를 나누고 친분을 쌓아갈 자신이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머리가 아파졌고 일단 내일 생각하기로 하고 잤다. 심각하게 고민한 것과 달리 잠은 아주 실컷 잤다. 일어났더니 아침이었고 웬일로 구름 한 점 없이 햇살이 쨍쨍하게 쏟아졌다. 기분이 좋았다. 정말로 기분이 상쾌하고 어쩐지 이유없이 웃음까지 나왔다.
여전히 후회는 됐다. 죄책감도 그대로였다.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행복 회로가 돌아갔다. 지금껏 블로그에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온갖 흑역사를 써왔다. 그러니 스팀잇과 관련된 흑역사가 하나쯤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어쩌면 하나로 끝나지 않고 앞으로도 점점 더 스팀잇 흑역사를 쌓아나갈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비록 몹시 부끄럽고 기억에서 삭제하고 싶은 글이지만, 지우지 않고 도망치지도 않고 다시 뻔뻔스럽게 블로그에 일기를 쓰기로 결심...이 아니라 마음을 먹었다. 나로 인해 상처를 받고 실망하셨을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싶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그래도 이벤트는 이벤트이니 결과를 기록한다. 그 글을 보신 뒤인지 전인지 모르겠지만, 맞팔 상태였다가 나를 먼저 언팔로우하신 세 분을 나도 언팔했다. 그런 다음 공감이 가는 글, 재미있는 글을 쓰시는 분들을 찾아 다시 팔로우해서 팔로우 숫자가 전과 똑같아졌다. 반면 팔로워는 열 분 가까이 늘어서 언팔로우 이벤트인데 팔로워 숫자가 늘어난 모순을 남기며 끝났다.
이 글의 제목은 산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읽지 않은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 ‘기나긴 이별’에서 따왔다. 물론 읽지 않았기에 어떤 내용인지는 모른다. 추리 소설을 좋아하지만 하드보일드는 한번도 읽어본 적 없다. 부디 재미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