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과 여행

평소처럼 오후가 되어서야 일어나서 아침 겸 점심을 먹으려고 하는데 도저히 먹을 게 없었다. 자취생 최후의 식량, 라면도 떨어졌고 달걀도 없다. 그저께 30개짜리 달걀판에 달걀이 하나 남은 걸 봤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내가 자는 동안 고양이들이 냉장고를 열어 달걀을 홀랑 꺼내먹었을 리도 없고, 잘못 본 걸까? 그렇지만 분명히 본 것 같은데 설마하니 꿈속에서 냉장고를 열어봤나 싶기도 한 게 알쏭달쏭했다.

어쨌든 나는 큰맘 먹고 마트에 갈 준비를 했다. 이왕 밖에 나가는 김에 쓰레기도 버리고 다른 볼일도 보려고 장대한 계획도 짰다. 집밖으로 잘 안 나가는 사람이라면 아마 대부분 그럴 것 같다. 어쩌다 밖에 나갈 일이 생기면 한 번에 바깥일을 다 해치우려고 하는 버릇 말이다.

일단 거실 입구에 허리 높이까지 쌓아둔 폐지와 재활용품부터 정리했다. 그런데 워낙 양이 많아서 도저히 한 번에 다 가지고 갈 순 없을 것 같았다.

친구와 살 적엔 둘이 나눠서 들어서 어지간한 양은 다 한 번에 내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혼자가 되니 손이 두 개뿐이라 한 번에 들고 가려면 머리를 보통 잘 써야 하는 게 아니다.

납작하게 펼쳐 접은 박스들을 옆구리에 끼고, 플라스틱 재활용품을 가득 채운 커다란 비닐봉지는 팔에 걸고, 캔과 유리병이 든 비닐봉지는 각각 양 손에 들고. 무슨 피난민이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가는 것처럼 해봤자 한계가 있다. 아직도 거실 입구에 재활용품이 허벅지 높이까지는 쌓여 있는 것이다.

그래, 재활용품을 꼭 오늘 다 내놔야 하는 건 아니야. 다음에 또 나갈 일이 생기면 그때 버리면 되지. 게다가 박스를 전부 치우면 고양이들이 슬퍼할 거야. 발톱 다듬을 박스는 나둬야 돼. 안 그러면 벽지를 긁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이런 식으로 나는 재활용품을 절반만 버리는 걸 정당화하면서 나머지를 모른 척했다. 사실 다 버리려면 버릴 수 있다. 두 번 왔다 갔다 하면 되니까. 그러기엔 너무 귀찮으니까 문제다. 이렇게 게으르면서 어떻게 밥은 하루 두 끼를 꼬박꼬박 먹고 있는지 모르겠다.

며칠 전, 올해 첫 비가 내린 덕분인지 날씨가 부쩍 따뜻했다. 남자친구가 사준 새 패딩 점퍼를 입을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늘 입던, 친구가 시집가며 물려준 외투를 입고 양 옆구리와 양손 가득 재활용품을 들고 집을 나섰다.

아파트 분리수거 코너에서 온갖 재활용품을 다 처리하고 나니 손도 가볍고 마음도 가벼워졌다. 마치 대청소를 마친 후의 상쾌한 기분을 느꼈다. 실제로는 집은 여전히 지저분하고 아직도 버릴 게 가득하지만. 쓰레기집 아줌마가 한순간에 새집 아줌마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ㅜㅜ(물건을 버릴 줄 모르고 쌓아놓기만 하는 나에게 남자친구가 붙인 별명이 쓰레기집 아줌마다)




그런데 짜잔! 오늘의 일기는 뜬금없이 여기서 끝났다! 결말이 없다! 며칠 전에 이만큼만 써놓고 지금껏 이어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나는... 나는... 나는 또 단타 지옥에 입성해버리고 말았다ㅜㅜ 말이 씨가 되는 게 아니라 글이 씨가 되어버렸다. 지난 글에 재미삼아 단타 지옥 재입성이라고 제목을 다는 게 아니었는데 후회막심이다.

평생 글쓰기와 식당일만 하며 살아온 나에게 단타는 정말이지 신세계였다. 빨간색 캔들과 파란색 캔들이 오르락내리락 파도치는 차트를 하루종일 14시간씩 봐도 질리기가 않았다. 마냥 재미있고 신기해서 잠까지 줄여가며 봤다.

어린 시절, 퇴마록을 처음 읽고 느낀 강렬한 충격과 열망을 차트를 보면서 다시 느꼈다. 그때는 ‘나도 이런 소설을 쓰고 싶어!’였고 지금은 ‘나도 천 퍼센트 수익률을 달성해보고 싶어!’라는 차이점이 있지만.

이왕 다시 단타에 빠진 거, 이번에는 정말로 제대로 해보려고 열심히 공부하면서 도전해보고 있다. 10스팀달러로 10000스팀을 만드는 그날까지! 화끈하게 스팀파워업을 해서 1만 스파의 돌고래가 되는 그날까지! 나의 도전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나는 전설이 된다! 가즈아~~~!

...로 글을 끝내면 틀림없이 나의 다정한 이웃분들, 내 일기를 읽어주시는 고마운 분들의 걱정이 태산 같을 것 같아서 변명을 덧붙인다(요즘의 나는 완전 변명쟁이다)

혹시라도 스달로 단타를 치다가 전부 잃을 수도 있으니까(솔직히 말하자면 무조건 다 잃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가지고 있던 스달을 일부는 스파업하고, 일부는 @yellocat님께 길고양이 사료값으로, 또 일부는 @woo7739님께 스팀잇 광고비로, @steemmano 스팀 마노 후원금으로 보냈다.

이젠 남은 스달로 단타를 쳐서 다 잃어도 후회가 없을 것 같다. 나는 고래의 꿈을 품고 수수료 할인 이벤트 중인 업비트로 여행을 떠난다. 아예 수수료가 0원인 고팍스로 가볼까 했지만 그곳은 너무 낯선 땅이어서(그리고 단타를 치기엔 거래량이 너무 적어서) 업비트로 정했다.

그럼 이만, 너무 늦지 않게 돌아오겠습니다!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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