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올챙이 적 기억 못한다.

부끄럽지만 당당하게 고백해본다.

난 대학생이 좋다.

대학생들만이 보이는 풋풋한 느낌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인다.
(여자/남자 구별없이)

그래서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누군가가 조모임이 어쩌고, 중간/기말 고사가 어쩌고, 교수님이 어쩌고
하는 얘기를 들으면,
고개를 돌려 한번 쳐다보고는 웃음을 짓는다.

커피라도 한 잔 사주면서 열심히 하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이상한 사람 취급당할까봐 차마 그러지는 못한다.

학생들이 오피스 비지트 (office visit) 을 왔을 때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너무 귀여워서 계속 멍청하게 실실 쪼개고 있으면, "쟤네들 너랑 동갑이거나 나이가 많을텐데, 그래도 귀엽냐?" 라는 말을 들을 정도다.

그런데 그 학생들이랑 일하게되면 느낌이 달라진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아기같고 귀여워보이던 분이 회사후배가 된 순간 '성인'으로 인식된다.

특히 나와 같은 프로젝트에 스태핑되면....
어휴.
눈에서 레이저가 나간다.

아무리 날고긴다는 대학생도 첫 프로젝트에 투입되면 어버버 하기 마련이다. 대부분 인턴이나 RA 출신이기 때문에 빨리 적응을 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 후배 때문에 내 퇴근시간이 30분 or 1시간 늦춰진다고 생각하면.. 안 이뻐보인다.

한번은 학교선배가 내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학교 다닐 때 친하게 지내던 선배의 친구였기 때문에, 인터뷰 프로세스 과정에서도 몇번 연락을 하고, 오퍼를 받은 후에 밥도 먹으면서 어느정도 친분은 쌓은 상태였다. 아, 그리고 내가 사적으로 볼때는 말을 놓으라고 말을 해서 그분은 나한테 반말을 하기로 했다.

그 분은 친분이 있는 나와 함께 프로젝트를 해서 기대를 한 모양이었나보다.
내가 친절히 잘 이끌어줄거란 기대.

난 그 기대를 첫날부터 깼다(고 한다.)
난 그 분이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프로젝트 내용에 대해서 공부할 자료를 주고 점심때까지 업무 파악을 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점심을 먹은 후, 난 그 학교선배한테 오후에 있을 임원보고 때 필요한 몇몇 '기초적인' 데이터를 찾아달라고 했다. 그리고 미친듯이 장표를 찍어낸 후, 그분께 데이터를 달라고 했다.

그러자 들리는 대답.

"아직 못 찾았습니다."

띠로리.

아직 못찾았어요? 다른 일 때문에 시간이 부족해서 못 찾은 거예요, 아니면 뭐예요?

데이터가 나와있지 않아서 segment 별로 추정치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맙소사.
당장 그 데이터를 넣어서 proof reading 을 거쳐 프린트해야 하는데.

결국 내가 찾아보았다.
떡하니 데이터가 검색되었다.

뭐라고 화낼 시간도 없었기 때문에 급하게 임원보고에 들어갔다.

갔다오고나서

데이터를 못 찾겠으면, 도와달라고 말을 하지 그러셨어요.
말도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 어떡합니까.


라고 내 입장에서는 10 강도로 말하고 싶은걸 2 강도로 말했다.

그 이후에도 그 학교선배는 몇번 이런 저런 실수를 했고,
나는 나름 '착하게' 어떻게 하라고 알려주었다(고 생각했다).

학교선배의 쌓인 서운함


그러던 어느날 예상치도 못하게 퇴근이 빠른 날이 있었다.
모두가 신나서 집에 가서 푹 잘 생각에 신나있는데,
그 학교선배가 비장한 얼굴로 나한테 같이 술 한 잔 마시자고 '통보'를 했다.

그 눈빛이 무서워서 난 '피곤해서 전 그냥 집에 갈래요 ' 라는 말도 못하고 근처 바로 갔다.

그 분은 도착하자마자 위스키를 더블 스트레이트로 시킨 후 '원샷'을 하고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내가 그렇게 맘에 안들어?"
라고 묻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내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속사포로 나에 대해서 느낀 서운함과 분노를 토해냈다.

그 분의 말을 통해서 들은 내 모습은 정말... 못된 사람이었다.
내가 그정도로 불친절하고 싸가지 없게 말하는지 몰랐다.

회사선배의 일침


내 첫 프로젝트를 함께 한 회사선배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그러자 그 선배는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도 맨 처음에 장난아니었어.
니가 한 실수들을 메꾸느라 내가 생고생을 다 했다.
심지어 어마어마한 빽으로 들어왔나 라는 생각까지 했다니까.


그제서야 내가 입사 후 몇달 간은 매일매일 혼자 화장실 가서 울고,
퇴근 후 집에가는 택시안에서 울었던 생각이 났다.

직접적으로 혼나는 말은 듣지 않았어도,
그 눈빛에 주눅이 들고 나 스스로도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물에 괴로워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못한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못한다는 말은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나도 업무가 익숙하지 않고,
내가 이곳에서 일할 자격이 있나 고민하고,
매일 새벽까지 계속되는 업무에 괴로워 했으면서,
이제 좀 익숙해졌다고 친절하게 회사후배를 대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그 회사후배는 내 학교선배이기도 했기 때문에,
나이어린 학교후배인 내가 자기를 무시한다고도 생각했을수도 있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날 퇴근 후 집에 가서 밤을 새서 업무 매뉴얼을 만들었다.
그리고 내가 모으고 있던 예쁜 편지지 하나를 꺼내서 장문의 편지를 썼다.

다음날 출근해서 회사후배님께

편지는 나중에 혼자 보시고, 업무 매뉴얼은 일단 지금 당장 필요할 것만 적었어요. 나중에 더 생각나면 업데이트할께요.


라고 말한 후 편지와 매뉴얼을 건냈다.

결과적으로 나도 일하기가 편해졌다.

내가 조금만 더 일찍 내 올챙이 때를 되돌아보면서 미리 친절히 알려주었으면 좋았을텐데.

사람이 항상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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