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중전마마께서 설을 앞두고 내게 자유 시간을 하사하셨다. (내게 자유 시간을 하사하시는 분은 중전마마로 불리기에 충분하다. 필요하다면 예를 갖추어 절이라도 하겠다.) 서울에서 일하던 처제가 내려온 처갓집은 간만에 완전체 가족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연휴가 시작되므로 우리 두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밤늦도록 머물러도 괜찮은 상황이다. 중전마마께선 넉넉한 마음으로 말하셨다.
“가서 애들이랑 세배하고 저녁 먹고 나면 좀 나갔다와도 돼. 영화를 보든, 도서관엘 가든 맘대로 해.”
6시 30분쯤에 처갓집을 나섰고, 9시 30분 정도까진 들어가기로 했으니, 누릴 수 있는 시간은 3시간 정도다. 나와서 기름을 넣고, 어디로 갈까를 잠시 고민했다. 일요일 밤이라 근처 도서관들은 거의 다 문을 닫았다. 작은 도서관 열람실이 10시까지 운영을 한다기에 그 앞까지 갔다가 빽빽이 들어찬 주차장을 확인하곤 차를 돌렸다. 스마트폰으로 ‘공부하기 좋은 카페’를 검색했더니 몇 군데 힙한 장소를 알려준다. 주차장이 크다는 한 곳으로 향하다가, 가끔 동네 산책을 하고 나서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오곤 했던 별다방이 눈에 들어왔다. 난 이동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하고 이곳으로 차를 돌렸다.
가족들과 함께 오다가 홀로 들어온 별다방은 또 다른 느낌이다. 아이들이 난장을 부려도 괜찮을 구석 자리를 먼저 찾았었는데, 홀로 앉기에 너무 넓지만 않다면 자리를 정하는데 제약이 없다. 2층 중앙, 10개의 넓은 의자가 있는 긴 테이블에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딸기 요거트를 시켜놓고 홀짝 거리며, 얼마 전에 중고 서점에서 산 책을 먼저 꺼내 읽는다. 중고 서점 김해점에서 획득했던 6권의 책 중 하나로, 제일 기대감이 든 책이기도 하다.
제일 교포로, 일본에서 출생한 유미리 작가의 에세이다. 유미리 작가는 ‘가족 시네마’ 라는 소설로 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상’을 받기도 했다. 그 당시 쓰는 책마다 베스트셀러를 찍었다고 책날개의 작가 소개에 씌어 있다. 이 책은 1997년도에 출간되었는데, 20년에 넘은 책 치고는 상태가 괜찮다. 6500원짜리 정가의 책을 2500원에 샀으니, 횡재한 셈이다. 더군다나 현재 이 책은 절판 상태다. 이 모든 조건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었을 때 별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좋은 선택을 했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5분 정도의 짧은 시간, 머리말만 읽고도 이 책에 반해버렸다.
내가 어릴 적에 마음을 허락한 것은 사자(死者)들……, 이야기를 쓰고 죽어간 사람들뿐이었다. 에드가 앨런 포우, 코이즈미 야구모, 나카마라 나카야, 그리고 다자이 오사무……. 나는 방이 어두워지면 근처 묘지의 돌계단에 앉아 그들과의 대화에 열중했다. 그것이 내게 읽는다는 행위였다.
아, 감탄. 이 도입부만 읽고도 이 작가와 주파수가 맞겠다는 확신이 든다. 힘주지 않고 썼지만 잘 다듬어진 문장. 어떤 행위를 자신 만의 감성을 덧입혀 표현하는 능력. 머리말에 이미 그런 것들이 다 드러난다. 2500원으로 보물을 건졌구나! 머리말이 맘에 들었으니, 집에서 수시로 펴들기 쉽겠다고 생각하며 책을 덮고 노트북을 연다.
이 별다방의 위치는 번화한 거리가 아니고 여러 개의 아파트 단지가 있는 곳이다. 동네 사람들이 주로 드나든다. 그래서 가족 단위 손님이 많다. 때때로 우리 가족들이 구석 자리를 찾아 들 때, 지금 내가 앉아 있는 긴 테이블은 초등학생 아이와 그 부모들이 앉아 있을 때가 많았다. 아이들은 책을 보거나, 학습지를 풀고 있고 아버지는 노트북을 펴고 미간을 찌푸리며 뭔가에 열중하고 있었으며, 어머니는 탭으로 인터넷 서핑 중이었다. 그 장면을 볼 때마다, 난 우리 가족의 가까운 미래 모습을 떠올려보곤 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기가 되면, 이 테이블에서 나 역시 노트북을 펴고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겠지, 하고.
오늘도 가족 단위 손님이 많다. 내가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명절을 맞아 모인 대가족으로 보이는 단체 손님이 2층으로 올라왔다. 아이들도 대거 섞인 팀이었다. 아이들이 내 맞은편에 앉았을 때, 난 잠시 긴장을 했지만 이 테이블이 대가족 모두를 수용할 수 없었던 탓에,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대가족이 이동한 자리는 여러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은 곳으로 내 정면으로 보인다. 아까 내가 자리를 정하려고 둘러보는데 나처럼 홀로 온 여성 하나가 책이나 노트 따위를 펼쳐놓고 그 가운데쯤 자리에 앉아 있었다. 비어있던 그 옆 테이블에 앉을까 하다가 그쪽 자리에 나까지 앉아 열공 분위기를 풍기면, 다른 사람들이 왠지 불편해할 거 같아서 이쪽 긴 테이블에 앉았는데 지금으로선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공부하던 여성은 대가족에 둘러싸여 보이지도 않는다. 얼마 지나고 다시 보니, 그쪽 자리는 대가족이 전부 차지했다. 막내 삼촌쯤 되는 중년의 아저씨 한 분이 가족들을 향해 핸드폰 카메라를 들고 하나, 둘, 셋을 외친다. 정겨운 명절 풍경이다.
차가운 딸기 요거트를 홀짝거리며 주변을 살핀다. 아까 대가족의 아이들이 잠시 앉았던 내 맞은편 대각선 자리엔, 나처럼 홀로 와서 노트를 펴놓고 볼펜을 손가락으로 돌리는 젊은 남자가 앉았다.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있다. 동그란 안경을 낀 선한 인상으로, 글씨가 가득한 노트를 꺼내 읽는 걸로 봐서는 자격증 시험이나 취업 준비를 하는 것 같다. 모레 친지들을 만나 취업에 대한 질문 세례를 받을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그 걱정으로 노트 읽기에 전념하지 못하고, 수시로 노트 옆에 있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지도.
왼쪽 대각선 4인용 테이블에 앉은 커플은, 시작되는 연인으로 보인다. 여자는 남자의 대수롭지 않은 말에도 웃음을 터뜨리고, 남자는 여자 옆에 바짝 붙어 앉아 여차하면 여자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을 것처럼 의자 등받이에 팔꿈치를 올린 채 팔을 까딱거린다. 둘은 아직 서로에게 미지의 영역이 많다. 여자의 웃음소리가 남자의 고막을 쓸어내리고, 남자의 손이 여자의 머리를 쓸어내린다. 서로를 쓸어내리는 초입의 단계에 접어든 이 남녀는, 한동안 서로를 쓸어내리는 일에 열중할 것이다. 그러다가 새롭게 쓸어내릴 것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게 되는 날을 맞이할 것이다. 그러면 얼마간, 나란히 앉는 대신, 마주 앉아 커피를 홀짝거리다가 선택의 순간이 눈앞에 와 있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갈림길은 두 개다. 뻔한 과정이다. 연애는, 뻔한 것이지만, 직접 맛보면 그것만큼 또 신선한 게 없다. 매일 아침 똑같은 토마토 주스를 마시면서, 맛이 뻔하다고 평가하는 일은 없다. 그 맛은 뻔하지만, 우리가 신경 쓰는 건 주스가 얼마나 신선한지 여부다. 그런 점에서 연애와 주스는 비슷한 면이 많다.
약속한 시간이 다 됐다. 이제 곧 일어나야 한다. 자유 시간에 쓰려고 했던 글은 쓰지 못하고, 카페에 관한 얘기만 잔뜩 쓰고 말았다. 써야 할 글의 줄은 줄어들지 않았다. 마음먹은 것만, 정해진 글만 쓴다면, 그게 자유 시간일라고?
한정된 자유는, 내가 홀짝 거린 딸기 요거트 만큼이나 달콤하다. 대가족이 있던 자리는 이제 비었고, 대각선에 앉은 남자는 누군가와 통화를 시작했고,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커플은 스마트폰을 들고 동영상을 함께 보며 속삭이고 있다.
누군가는 일어나야 하고, 또 새로운 누군가가 자리를 채운다. 일어나야 하는 누군가가, 지금은 나라는 게 조금 아쉽지만, 매일 봐도 신선한 아이들의 얼굴이 곧 그 아쉬움을 잊게 만들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