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무게는 책임의 무게와 같다_(#2)

안녕하세요. @hakguan입니다.
저번주에 글을 쓰려고 했는데, 자본주의의 노예로 뭔가를 열심히 하다보니 계속 밤이되고 잘시간이 되어서 쓰지 못하고...
휴가를 내고 쉬면서 이전에 못다한 이야기를 써봅니다.

쓰면서 이야기가 계속 길어질 것 같기도하고, 너무 제 넋두리만 할 것 같아서
조금은 성급하게 글을 마무리해버렸습니다.

다음번에는 요즘 읽고 있는 책을 소개드리면서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돈의 무게는 책임의 무게와 같다_(#1) 에 이은 글입니다!


세 번째 추억 : 모두에게 돈은 중요했다.

대학교 1학년 때에는 기숙사에 살아서 집과 관련해서는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비교적 주거비 명목으로 들어가는 돈도 적었고, 기타 공과금이나 관리비로 나가는 돈은 없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지금도 대학생을 위해 학교가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해택은 장학금보다는 기숙사 확충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학년이 되면서 기숙사를 떠나야 했었고, 동기와 함께 투룸을 구해 함께 살기로 했습니다. 저희가 거주했던 투룸은 옥탑방이었고, 방 하나는 컨테이너를 활용해서 원래있던 부분에 붙여놓은 형태였습니다. 그래도 꽤나 살만한 곳이었습니다. 보증금은 300만원 정도밖에 안되었고, 월세도 투룸이라는 생각을 하면 저렴한 55만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집에 왔을 때 누군가 있다는 것, 치킨을 먹을 때 쉽게 같이 먹을 사람이 있다는 것, 술병에 걸렸을 때 누군가 약을 사다 줄 수 있다는 것 등 서로 잘 알고 친밀한 룸메이트가 있다는 것을 여러모로 장점이 가득했습니다. 저희는 둘 다 각자 생활비를 마련해서 월세 등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었고, 대학생들이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일거리가 그렇듯 다소 불확실성이 가득하죠.

아마 더웠던 여름이 끝나갈 때였던 것 같은데, 우연찮게도 저희 둘 다 하던 일이 끊긴 상태여서 월세를 밀리게 되었으나 다행히 주인 할머니가 조금은 용인해주셔서 조금은 시간을 벌어놓은 상태였으나, 어디선가 듣기로는 주인 할머니가 집을 팔고 어딘가 교외로 이사갈 계획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고 저희도 모르는 사이에 주인 할머니가 바뀌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저희는 그 이후 월세는 바뀐 주인분께 드려야 하는 상황이고 밀린 월세는 기존 주인 할머니께 드려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죠. 그런데 주인 할머니는 이미 이사를 가신 후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와서 생각하건데 주인 할머니도 그렇게 생활이 평안하진 않으셨나봅니다.

저희 투룸은 거실이 있는 투룸이 아니라 말 그대로 방이 두개인 투룸이어서 방과 방을 연결하는 문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옆 방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서 깼는데 주인 할머니가 오셔서 뭔가 하소연을 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옆 방에 있어서 잘 들리진 않았지만 본인이 힘들었던 무언가를 계속해서 털어놓으셨고, 얼만큼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이야기는 끝이나고 할머니는 집으로 돌아가신 듯 했습니다.

저희는 일어나서 많은 대화를 하진 않았습니다. 다만 같이 한 방에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죠. 그때는 아무 생각없이 돈의 무게만을 오롯이 느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돈의 무게는 스무살 초반의 학생들에게는 그만큼 무거웠던 것이겠죠. 또 동시에 조금은 야속한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쨋거나 잘못은 저희가 한 것이고, 주인할머니는 나름의 불확실성과 불안함을 계속 느끼고 계셨던 것이겠죠. 게다가 이제는 저희가 살고 있는 집의 주인도 아닐 떄였으니까요. 저희가 달마다 반반 나눠서내는 27만 5천원의 무게가 주인 할머니에게도 그만큼 무거운 것이었겠죠. 저희가 언제 독촉할지 모른다는 불안함의 무게가 할머니에게는 돈을 못받을 수도 있다는 불안함의 무게였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 때의 우리는 조금은 건방지게도 다른 사람이 느낄 돈의 무게에 대해 함부로 재단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우리가 갖고 있는 어떤 모종의 사회적 지위를 활용해 그 뒤에 숨어있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설령 저희가 재단한 그 무게가 맞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행동하거나 생각하면 안되는 것이었겠죠. 이는 돈의 무게와는 관계없이 약속과 관련한 것이니까요.

다행히 지금은 월세가 밀릴만큼의 불안정성이 없고, 나름의 신용이 생겨 급한경우 다른 약속을 통해 못지킬 약속도 일시적으로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다행힌건 여전히 돈이 무겁다는 것, 약속은 그보다 무겁다는 것을 알고 마음 속에 담아두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약속은 책임을 수반한다.

우스갯소리로 ‘약속은 깨라고 있는거지!’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약속은 서로가 이를 지킬 것을 전제로 한 것이며, 특히나 돈이 포함된 약속이라면 다른 어떤 약속보다 무겁게 다가옵니다. 그와 동시에 약속이 쌓여갈 수록 무감각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정말 쉽게 무감각해지죠.

그러나 다행히 우리 사회엔 시스템이라는 것이 존재해서 한 개인이 무감각하더라도 나름의 완충작용을 해주고 있다는 것이겠죠. 개인이 감당할 수 있을 무게를 시스템이 계산하고 개인은 덕분에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테죠.

어쩌면 그 덕분에 대학생활과 추가적인 학위를 밟는 동안 쌓인 돈의 무게는 무겁긴 했으나, 충분히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졸업하고 어느정도의 돈은 벌게 될 것이고, 차근차근 갚아나가면 조금은 느릴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지연된 시간은 제 전체 생에 비해서는 크게 낭비된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다만,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를 넘어선 약속이 삶에 스며들어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래서 앞서 첫번째 글에서 인생의 불확실성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죠. 결국 예기치 못한 상황덕에 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의 약속이 저의 일상을 잠식했고, 매달 기다리던 월급날은 오히려 가장 큰 한숨을 내뱉는 날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의 약속이 일상을 잠식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것에 더해 제가 이제까지 쌓아온 저의 약속을 지키면서 근근히 생활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문제는 희망이다

하지만 문제는 미래에 있습니다. 현재야 월급으로 다른 것들을 돌려막기 하면서 근근히 살 수 있겠지만, 내년은? 10년 후는?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면 영 마음이 편하지가 않습니다. 사실 편하지 않다는 말로는 좀 부족한 표현인 것 같지만..

최근에 만난 친구가 저에게 묻더군요.
나이는 한참 어린 이십대에 막 들어선 친구이지만,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서울에 올라와서 자기길을 찾겠다고 고분군투하고 있는 친구입니다.

“형은 무엇으로 사는지가 항상 궁금했어요
삶의 목적 같은거 있잖아요”

그때는 글쎄..라는 말로 넘겨버렸지만 집에 돌아와서 조금 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지금 삶의 목적이란게 무슨 의미를 가질 수가 있는지 부터 시작해서, 목적이 먼저인지 행동이먼저인지 등 뫼비우스의 고리 같은 질문이 계속 이어졌죠. 하지만 결국 중요한건 희망이 아닐까 합니다.

삶이란 희망차기만 할 수는 없겠죠. 때론 슬픔도 있을 것이고, 좌절도 있을 것이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무언가에 의해 가로막힐 때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한텐 아마 지금이 이전에 많이 있었던, 그리고 앞으로 수없이 많이 있을 상황 중 한 번일 것입니다. 그때마다 좌절하고 그때마다 슬퍼하고, 행동하지않으면서 넋두리만 늘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변하는 건 없을테니까요.

변하는 것은 없을지언정 무언가 행동하게 하고, 마음을 조금은 편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결국 희망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금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 내가 무언가 최선을 다 한다면, 내가 나의 최선을 다 한다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

희망의 역할

그리고 그 희망이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행동이 필요하고, 계획이 필요하고, 유연함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희망은 대게 작은 것에서 시작하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근심이나 걱정, 불안과 불행으로 인해 기울어진 감정의 저울의 균형을 맞춰주곤 합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사는 복권이 가지는 힘, 점심시간 커피 한잔이 주는 여유 모두 희망의 한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부정적인 현실과 감정에 의해 침잠되고 있는 저 같은 경우에는 가장 필요한 것은 먼저 균형을 맞추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작은 희망을 발견하고, 그것을 활용해 균형을 맞추는 것, 나는 이렇게 힘들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 좋은 친구들이 있다는 것, 이제까지 많은 것을 충실히 잘 이루어 왔다는 것, 이런 것들이 희망의 씨앗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희망의 역할은 아마 여기까지여야 할 것 같습니다. 기울어질 저울의 균형을 맞춰주는 것, 때론 희망의 무게가 너무 커 현실을 마주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렇게 불균형적인 희망은 대게 운에 맡긴 것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친구의 질문에 어쩌면 조금은 대답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쎄.. 균형을 맞추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맞춰나가는 것..?
그렇게 나아가면서 내가 견딜 수 있는 책임의 무게를 늘려나가는 것...?
충분히 늘어났을 때에는 누군가의 무게를 함께 짊어져 주는것..?
그때까지 부끄럼 없이 살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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