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를 거듭하며 커피는 우리의 일상에 없어선 안될 강력한 기호식품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원두’ 나 ‘아메리카노’ 같은 단어가 낯설게 느껴지던 때 언젠가부터 미국산 프랜차이즈를 필두로 커피숍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났고,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한 사람들은 커피 열풍을 불러일으켜 심지어 한때 너 나 할 것 없이 한손에 커피잔을 들고다니는 이른바 뉴요커 열풍을 낳기도 했습니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장점을 가진 커피는 일상에서 사람간의 친목을 다지는 데에 아주 좋은 도구가 되기도 하고, 성인병이나 암 예방 또는 피로회복 등에도 긍정적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에 따라 건강식품으로도 사랑받고 있죠.
하지만 커피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커피가 비단 현대인의 취미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으로 커피의 문화가 싹트게 된 것은 12세기 예멘 지역의 이슬람 문화권에서 종교 지도자들이 예배 의식의 일부로 사람들에게 커피를 권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요, 예배보다도 인기가 많았던 커피는 약용으로도 쓰이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을 더욱더 매료시키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며 이슬람 문화의 성지인 메카까지 전파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당시 중동 지역의 결혼 조항에는 ‘남자는 여자가 원하는 만큼의 커피를 제공해야 한다’ 는 내용까지 있었다고 하니, 커피의 인기가 어땠을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죠.
그 후로 커피는 16세기경 교역로를 통해 유럽으로 전파되고 교황 클레멘스 8세에 의해 세례를 받기도합니다. 이렇게 또 한번의 부흥기를 맞이한 커피는 유럽 전역의 생활, 문화, 역사 등 다양한 방면으로 스며들었고, 그 이후로 커피를 즐겼던 유럽의 수많은 예술가, 그 중에서도 클래식 음악가들과 관련된 재미난 에피소드가 몇 가지 전해집니다. 오늘은 이 에피소드를 몇가지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당시에도 커피 없이는 못 사는 중독자들이 많이 있었는지, ‘커피 칸타타’로 유명한 Bach의 칸타타 BWV211(Schweigt stille, plaudert nicht)에는 커피를 끊지 못하는 딸과 그 아버지의 갈등이 묘사됩니다. 작품 중에서 미혼인 딸은 커피를 두고 ‘천번의 키스보다도 더 달콤하고 머스캣 와인보다도 부드럽지’ 라는 시적인 노래를 부르고, 아버지는 그런 딸을 보다못해 결국 커피와 결혼 중 하나만 고르라는 최후의 통보를 함으로서 결국 딸은 결혼을 선택하는데요, 하지만 아버지가 신랑감을 찾으러 자리를 비운 사이 딸은 또 다시 ‘결혼 서약서에 커피를 마음껏 마시게 해준다는 약속 없이는 누구와도 결혼할 수 없어’ 라며 커피에 대한 열정을 굽히지 않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위대한 작곡가 ‘베토벤’도 커피 마니아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문 가판대가 없던 당시 그는 매일 비엔나 차이퉁지를 보기 위해 커피하우스를 드나들었다고 하는데요, 또한 그는 궁핍한 생활을 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 작업실에서 유리로 된 신식 커피 메이커에 원두 60알을 직접 갈아 마셨다고 합니다. 이 때문이었을까요? 그의 말년 중 작곡된 다섯 곡의 현악 사중주 중에서 Op.132는 1825년에 완성되었는데, 그 시기는 베토벤이 간 질환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으며 의사 또한 커피와 와인을 절대 금지하라는 처방을 내렸다고 합니다. 베토벤의 위대하고 경이로운 곡들을 떠올려 보면 과연 커피가 그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입니다.
여기 궁핍 때문에 생계를 위해 곡을 썼다고 알려지는 또 한 명의 커피 마니아가 있습니다. 선생이 되길 바랐던 아버지의 뜻을 뒤로하고 보헤미안식 작곡가의 삶을 살았던 슈베르트는, 자신의 집과 빈의 커피하우스에서 그를 중심으로 한 ‘슈베르티아데’ 라는 모임을 만들어 예술계의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했다고 합니다. 그는 이 모임에서 당구를 치고 커피를 마시면서 음악을 만들었고, 많은 가곡들과 실내악 음악들 또한 이곳에서 연주되고 발표되었습니다. 그에게 커피하우스는 특별한 장소가 아닌 일상의 한 부분이었던 것이죠. 진정한 낭만파였던 그의 곁에 항상 커피가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 커피가 잘 어울리는 것과 자연스러운 관계가 있어 보이네요.
오스트리아 군악대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바그너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탄호이저'를 연주했다고 전해집니다. 또, 독일 라인 지방에서 접할 수 있는 ‘슈만과 클라라’는 가장 낭만적인 초콜릿 향의 커피로 알려져 있는데, 슈만의 후원 아래서 클라라를 동경하며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브람스에게는 아침 일찍 손수 커피를 끓여 마시는 취미가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베를리오즈, 로시니, 모차르트, 비제, 토스카니도 커피하우스를 즐겼다고 전해지지만 비단 음악가 뿐만이 아닌 보들레르, 프로이트, 피카소, 헤밍웨이, 괴테, 토마스 만, 바이런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 또한 커피하우스에 모여 격식없이 예술,철학,문학을 교류했습니다. 커피하우스는 단지 커피를 제공하는 곳이 아닌 사회 저변에 형성된 문화 교류의 장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오스트리아 빈을 중심으로 퍼졌던 수 많은 커피하우스 중 일부는 지금까지도 운영이 유지되어 많은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유럽과 분위기는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 근처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카페에서도 책을 읽거나 이야기 꽃을 피우는 장면이 낯설지가 않습니다. 이를 보면 커피문화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범 인류적 기호 식품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