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슬픔이 공존하던 날의 이야기

안녕하세요.

@chromium 입니다.

오늘은 저에게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날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불쾌한 이야기가 될 것 같네요.


학부 3학년 여름 날의 이야기 입니다.

그때까지의 저는 딱히 봉사활동을 자발적으로 행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저 장학금을 받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15시간을 채워야 했기에 마감 날짜에 맞춰서 겨우 맞춰서 하는 그런 사람이었을 뿐이었죠. 그러던 중 봉사활동을 많이 다니던 친구가 봉사활동 자리가 있는데 한번 해보겠냐는 제안을 했습니다. 마침 여름방학이었고 딱히 계획이 없던터라 봉사활동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그 친구는 공익근무요원이었는데 초등학교 특수반에 다니는 몸과 마음이 불편한 아이들의 보조교사 역할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학교 특성상 방학을 하게 되면 특수반 운영이 중단되게 됩니다.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대부분 맞벌이를 하게 마련이기 때문에 학교가 쉬는 방학이 제일 힘든 시기입니다. 방학 때는 아이들에게 그림자 처럼 붙어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지자체에서 여러가지 이름으로 여름학교를 운영합니다. 제가 봉사활동을 하던 곳은 '달팽이 학교' 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던 곳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느리게 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더군요. 오전 10시 부터 4시 까지 아이들과 여러가지 공부 및 놀이를 하면서 직장에 가신 부모님이 오실 때 까지 시간을 보내는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여름학교가 운영되는 동안 수요일마다 수영장에 방문했습니다. 구청에서 운영 중인 수영장을 일주일에 1번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했습니다.

아이들이 노는 어린이 존 옆에는 아쿠아로빅 강좌가 이루어지는 풀이 있었습니다. 수심이 1.2 - 2.0 미터에 이르는 곳입니다. 강사님과 10여명의 수강생이 음악에 맞춰서 열심히 운동을 하는 곳이었죠.

하지만 이 음악 때문에 일이 벌어졌습니다.

ADHD를 앓고 있는 아이들은 호기심이 굉장히 강합니다. 어린이 풀에서 잘 놀다가도 음악이 나오면 그 쪽으로 달려가기 때문에 아이들이 수심이 깊은 곳으로 가지 않게 하기 위해 굉장히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했습니다. 저는 3명의 아이들을 맡아서 놀아주고 있었는데, 한 아이가 제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그만 호기심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음악이 나오는 1.2미터 수심의 풀로 뛰어들어 간 것이죠. 저와 제 친구는 미친듯이 뛰어들어가서 아이를 구했습니다.나와서 죄송합니다를 연발하고 양해 부탁드린다고 말을 하는 순간, 뒤통수 쪽에서 신경질 적인 목소리가 날아왔습니다.

아니 매주 이시간에 와서 매번 이러는데 뭔가 대책이 있어야지. 죄송하면 다야?

우리는 돈내고 수강하는데 방해하지마!

그런애들이 여기에 오니까 물이 더러워지는거 아냐? 빨리 데리고 나가!

그만 그 소리에 이성의 끈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아니 이게 물이 더러워지는 거랑 무슨 상관입니까? 미친거 아닙니까?

말 막하지 마세요. 아줌마 아들이 장애인이어도 이런 소리가 나옵니까?

당장 아줌마 아들이 오늘 사고나서 장애인될 수도 있습니다. 뚫린 입이면 답니까?

여기 까지 말하고 나니 다른 선생님들이 와서 말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여사님께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소리 치더군요.

니가 못 배워 먹었으니 그런 애들이나 가르치는 일이나 하고 있지. 쯧쯧.

이소리에 더 싸우고 싶었지만 다른 선생님들이 말리시고 그날 수영장 방문은 그것으로 중단되었습니다. 왜 제가 사과해야하는지 이유를 전혀 모르겠는데 마지못해 사과하고 수영장을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날 저녁 아이의 부모님이 제게 전화하셨습니다. 선생님 고생하셨다고 감사하다고 그러셨습니다.

전화 받으면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분노와 슬픔이 몰려왔습니다. 이렇게 몰지각한 사람한테 욕먹고 무시당할 아이들이 아닌데 너무나 화가나고 슬펐습니다.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니 우리나라 시민의식이 이정도 수준밖에 안되는 건가? 잠이 오질 않아서 술을 퍼마시고 진탕 취해서 겨우 잠이 들었습니다.

결국 강좌에 방해되지 않는 시간에 방문하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 되었습니다.

돈 안내고 이용하는 사람이 눈치 살펴야하는 헬피엔딩을 맞았습니다.

글 쓰면서도 그 때 생각이 나서 화가 치밀어 오르네요.


이 사건 이후로 저는 아이러니하게도 실제 물을 깨끗하게 만드는 연구를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 사건이랑은 관련없이 평소에 제가 관심있던 연구 분야이기 때문에 선택을 한 것이지 만요.

정말 고약한 냄새가 나는 하수까지도 깨끗하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은 가지게 되었지만,

하지만 그 여사님의 몰상식을 정화할 만 능력까지는 제가 가지지는 못했네요.

참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합니다.

불편한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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