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물 이야기 쓰는 @chromium 입니다.
오늘은 연구과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얼마 전 1180억 원의 예산을 들여 개발 중인 무인 정찰기의 추락사고에 대한 책임을 물어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원 5명에게 각 13억 4천만원 씩 배상하라는 방위사업청의 요구가 있었습니다. 이에 미국에서 공부 중인 한 과학도가 청와대에 손해배상 징계 처분 취소에 대한 청원 글을 올렸고, 2017년 10월 16일 현재 1만8천여명이 동의 의사를 밝혔습니다. 물론 무인기 동체에 고도·속도·풍향을 측정하는 장비의 좌표 신호체계를 반대로 입력했기 때문에 비행제어 연구팀의 중대한 과실이 추락원인이긴 합니다.
청와대 청원 페이지 : http://www1.president.go.kr/petitions/18717?navigation=best-petitions
[출처] - 국민일보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22026&code=11122100&sid1=all
연구과제에 사용되는 연구비는 국민들의 혈세로 지원하는것 이기 때문에 물론 연구비 집행에 관련하여 철저한 감시는 필수입니다. 하지만 연구 수행 중 실수는 필연적인 부분인데 과연 이렇게 실수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를 하면 연구자들은 어떻게 연구 수행을 해야할 지 굉장히 난감한 입장입니다. 이러한 선례를 남긴다면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과제를 수행하려고 나서는 연구자들이 몇이나 될까요?
서론이 길었습니다.
이렇게 연구를 진행하는 데에 필수적인 재원을 마련해주고, 한편으로는 연구원들을 나락으로 몰고가기도 하는 이러한 연구과제들은 어떻게 진행이 되는 것이며, 어떻게 평가가 되는 것 일까요?
저는 일천한 연구과제 수행 경험을 가졌습니다만 이에 대하여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진행 순서를 한 번 나열하여 보겠습니다.
(정부기관에서 공고하는 연구과제 기준 입니다. 기업에서 공고하는 연구과제도 존재합니다.)
지정 분야 공모 - RFP 공모 (Request for proposal; 제안 요청서 접수) - RFP 확정공고 - 제안서 접수 - 후보연구팀 평가 - 제안발표 평가 - 연구과제 선정 - 연구과제 협약 - 연구과제수행
순으로 진행됩니다.
한국연구재단의 경우는 제안서 접수를 받을 때 지원자가 누구인지 모르게 암맹(Blind) 평가를 시행하기도 합니다. (물론 제안서를 읽어보면 대충 어느 연구팀인지 파악이 가능합니다만...) 가끔 지정 연구분야 공모가 아닌 자유주제의 연구과제 공모를 실시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연차마다 보고서를 작성하고 연차발표 평가를 실시하여, 재계약 시에 연구비 증액, 유지 또는 삭감이 됩니다. 최악의 경우는 연구 과제 지속 자격 박탈이 되기도 합니다. (연구과제 비리로 인한 자격 박탈이 대다수)
이번에는 연구과제의 구성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연구과제의 연구팀 구성은 대부분 아래와 같습니다.
소규모 과제의 경우
주관연구기관(+참여기관)(+위탁기관)
대규모 연구단 과제의 경우
총괄주관기관-참여기관-위탁연구기관
1세부주관기관-참여기관-위탁연구기관
...
n세부주관기관-참여기관-위탁연구기관
각 기관 별로 연구분야를 맡아서 과제를 수행하는 방식입니다.
연구개발비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연구개발비는 흔히 연구비라고 불리는데 뉴스에도 연구비 횡령하는 등 비리를 저지르는 교수들의 이야기가 가끔 등장합니다. 연구개발비는 국민의 혈세를 쓰는 만큼 투명하게 집행되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한 제 신념이 변하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연구개발비는 직접비와 간접비로 크게 나뉘고, 직접비는 인건비+재료비+출장비+회의비+분석료+위탁연구개발비 등으로 실제 연구과제 수행에 사용되는 금액으로 세부항목이 많이 존재합니다. 간접비는 연구기관마다 총액에서 차지하는비율이 다릅니다만 연구실의 안전관리비, 기관연구관리경비 등에 사용되는 금액입니다.
연구비 사용의 오남용을 막기 위해 인건비의 경우는 풀링제를 도입하여 각 기관별로 연구관리팀에서 따로 관리를 하고 있으며, 재료비의 경우는 일정 금액마다 사용액 상한을 정해두고 검수 및 비교견적서와 최저가격 입찰제 등 여러가지 프로세스를 통해 연구비 집행을 투명하게 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해먹을 사람들을 알아서 다 해먹더군요. 뉴스에 나오는 그런 분들...
사실 몇몇 연구비 지원기관의 프로세스 중 불편한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제가 열심히 하면 되는 부분입니다.ㅜㅜ) 이에 대한 내용을 이야기 해보자면 맨 처음 연구 제안서를 낼 때 세부항목의 금액을 작성하는 부분이 있는데, 계획대로 집행이 되는 경우가 잘 없습니다. 갑자기 재료비를 많이 사용해야할 때도 있고 회의비를 너무 많이 산정하여 비용이 남을 때도 있습니다.
남는 부분이나 부족분을 충원해야하는 경우 각 항목별 금액을 이전해야 합니다. 이것을 연구비 전용이라고 하는데 연구비 전용 프로세스가 굉장히 복잡합니다. 재료비나 출장비, 회의비 같은 항목은 연구 과제 수행하는 중간에 (과제 수행 포기 등의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전용을 위한 보고를 따로 해야하고, 정부기관의 승인을 받아야합니다. (연구관리팀에서 기관장 직인을 받아야하는 2중 프로세스는 덤)
다만 한국연구재단에서 지원받는 연구개발비의 경우 협약 금액내의 직접비 부분은 웹페이지 상에서 자유롭게 전용이 가능하며, 심지어 전부 사용하지 못한 금액은 다음 연구 수행년차로 이월이 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연구과제에서는 재료비 등을 전부 소진하지 못한 경우 그 금액만큼 차년도 협약시에 삭감시켜 버리기도 합니다.)
연구과제의 연구비 전용이 연구재단 프로세스처럼 됐으면 좋겠습니다!
연구과제의 실적과 평가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연구과제 제안서 작성 시에 연구의 달성 목표를 제시하게 되어있습니다. 목표치를 설정하는데에는 보통 시제품을 만들겠다! 효율을 얼마만큼 달성하겠다! 라고 제시하게 됩니다. 이런 식의 목표를 정성적 목표라고 합니다. 한편 연구논문 출판 및 학술회의 발표, 특허 출원 및 등록 등의 정량적 목표를 제시하기도 합니다.
연차보고서를 작성할 때 연구과제의 정성적, 정량적 목표가 얼마나 달성되었는 지 쓰고 이를 퍼센테이지로 명기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나라의 연구기술의 놀라운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연구과제 달성률은 늘 95% 이상에 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연구과제 목표 달성하는데에 실패했다고 하면 차년도 연구에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무조건 달성률은 100%에 가깝습니다. 독일의 경우 연구목표 달성률은 30%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계속 같은 연구주제를 20-30년 동안 달성할 때 까지 신청하여 그 분야의 대가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와는 다른 분위기네요.
우리나라는 연구과제는 무조건 100% 달성입니다. 9마리 로봇 물고기중 7마리가 작동안되지만! 그것도 조악하게 만들었지만!9마리 전부다 작동한다고 명기하기 않았으니까 어쨌든 달성!
또한 100% 달성을 위한 어두운 꼼수를 이용합니다. 이미 연구실에서 보유하고 있는 기술에서 조금만 진보시켜 (아니면 아예 그대로 이름만 바꾸는 등) 충분히 100% 달성 가능한 연구계획을 제안서에 작성하고, 이미 투고되어있는 논문의 출판 시에 사사(Acknowledment)를 추가하는 등의 방법입니다. 이렇게 어쩔 수 없는 꼼수를 사용하기도 합니다만, 이러한 걱정이 없는 연구과제 수행 분위기가 만들어지는게 우선이 아닐까요?
그리고 하나를 덧붙여 얘기하자면 연구를 위한 연구라는 말이 있습니다. 'XX암 정복의 길 열려... 모 교수팀 XX암 유발 유전자 발견...' 이러한 뉴스 기사를 보신적이 한 두번이 아니실 겁니다. 하지만 암 정복을 위한 유전자 치료 중 실용화가 된 기술이 몇개나 있을까요? 물론 이러한 연구는 암 치료를 위한 기초적인 자료로서 학계에서 충분히 인정 받는 연구이지만 실용화를 위한 과정은 아주 험난합니다. 그리고 실용화를 위한 연구는 굉장히 연구논문 쓰기가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단기간에 실적을 낼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죠.
실용화를 위한 연구는 오랜시간 동안 모니터링을 해야하며 실제 사용례를 만들어야합니다. 물론 이와 같은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원천기술 과제와 실용화 과제를 구분하여 연구과제를 신청받습니다만, 논문이나 학회 발표와 같이 달성하기 용이한 원천기술 과제의 정량적 목표에 비해 실용화 과제에 대한 성과 달성 목표치 제시는 가혹하다고 생각합니다.
연구 실적을 위한 연구를 해야하는가?
실용화를 위한 연구를 해야하는가?
이 딜레마는 실적만을 요구하는 이시대 연구과제 평가 기준의 한계때문에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점차 독일과 같은 연구과제 수행 방향으로 바뀌어 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허울뿐인 100% 달성은 실패하는 것만 못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연구논문의 투고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