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1개월 만에 나의 방으로 돌아왔다. 벽에 붙여 놓은 나의 그림과 엽서들, 영화 포스터들, 몇 년이 흘러 더욱 바싹 마른 드라이플라워와 나뭇잎들, 빛이 바랜 오래된 책들과 추억이 담긴 최근의 책들, 여기저기 꽂아 놓은 수많은 필기구와 색연필들, 카시오 전자 피아노, 서랍장과 포근한 침대도 모두 그대로다.
불안과 우울을 멈출 수 없던 스물여덟의 나는 감정을 조절할 줄 알고 조금 더 현명해진 스물아홉이 되어 돌아왔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엄마와의 관계도 작년에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좋아졌다. 엄마에 대한 사랑보다 이해받지 못한다는 서운함이 앞서곤 했는데, 이제는 불안을 다스리고 사랑을 그대로 표현해낼 수 있게 되었다. 외국에서 이리저리 부딪히고 원하는 작업을 해보려고 애를 쓰고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내면의 힘이 길러진 모양이다. 평정심을 잃지 않는 법을 가르쳐 준 비파사나 명상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평생 몸 담고 싶은 분야에서 알맹이를 채우기로 했다. 글과 사진. 살고 있는 지역에 마침 스튜디오 일이 나와서 이력서를 넣었다가 일요일에 면접을 보기로 했다. 집에서 가깝기도 하고 사진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인연이 닿아서 일을 하게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면접에서 끝이어도 일이 생길 때까지 부지런히 밀린 글을 써낼 생각이다. 좋아하는 분야에 전문성을 더하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것,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글과 사진에 깊이를 더하고 싶기에 멈추지는 않을 생각이다. 주위를 맴돌기보다는 용기를 가지고 곧장 나아가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