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이 뭔지 앵무새처럼 말만 할 수 있을 뿐 사실 거래를 어떻게 하는 건진 잘 몰랐다. 롱, 숏 버튼이 있는데 예전에 오를거면 롱, 떨어질거면 숏, 이 정도의 얘기를 들은 게 생각나서 입금한 비트코인 3개로 막 해보았다. 당시 3개의 가치는 300만원 정도였다.
사실상 현물 마진 거래나 다름 없어서 적극적으로 거래했다. 선물 세 종류 Weekly, by-weekly, Quaterly 중 분기물을 선택했다. 그게 거래량이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레버리지 4배에서 20배가 되니 짜릿한 느낌은 더했다. 1월 중국 거래소 마진 거래 중단이라는 악재가 걷히리란 전망에 기대어 거의 롱만 잡았다. 특히 5분봉으로 볼린저밴드 하단을 한참 뚫고 내려간 구간에서는 적극적으로 롱을 담았다. 거기서 조금 떨어진 데서는 손절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오를 거였기 때문이다.
시장은 마침 나의 그런 신념에 착실히 부응하여 비트코인 3개가 3주 만에 10개가 되었다. 그 시기엔 내 마음 속 설레발이 아주 대단했다. 이걸로 평생 살 수 있고 곧 부자가 될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1년을 벌면 얼마를 벌지 계산도 해보고 그때 쯤에 아버지께 태어나서 가장 큰 용돈을 드려봤다.
한번은 $1070에서 $970으로 떨어진 적이 있었는데 거래소 출금 금지 소문이 잠시 돌았다가 아니라는 해명 기사에 의해 금세 다시 $1000 위로 훌쩍 상승했다. 당시 나의 매매 패턴대로 큰 하락에는 롱으로 대응했기 때문에 그날도 수익을 챙기고 다음날도 $970 근처에 롱을 반쯤 걸어두었는데 그것이 모두 체결되었다. 그러고는 목표 가격은 더 높게 잡았다. $1000 대에서는 청산할 생각이 없었다. 하루 지나면 수익을 얼마 볼지 계산기를 두드려봤다.
가격은 $1020을 잠시 찍고는 바로 $970 이하로 고꾸라졌다. 호가창에 노란색으로 표시된 물량이 쏟아졌다. 평소보다 몇 배는 많은 물량이었다. 그러면서 나 또한 위험 안내 문자를 받았고 나의 비트코인 개수가 빠르게 줄어들더니 $900 근처에서 내 물량이 강제 청산되었다. 노란색은 마진콜 물량을 나타내는 것임을 그때 알았다. 내 물량도 저 가격대 어딘가 노란색으로 표시된 물량 중 일부였을 것이다. 당시 내가 가진 10개에 20배를 쓰면 200개까지 살 수 있었다. 아마 100개 넘는 물량이 그렇게 순식간에 청산되고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호가창은 위아래 50달러씩을 널뛰기 했다. 롱 마진콜 물량을 다 청산하면서 다시 반등을 주는가 하면 (일명 데드캣 바운스) 그로 인한 반등에 다시 숏 마진콜 물량이 쏟아져 그것을 다시 잡아먹으며 폭락한 가격은 $750까지 찍었다. 현물은 $800대를 방어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선물은 +$100 가까운 스프레드를 유지하다가 폭락 시점에서는 오히려 -$50-$100까지 간 것이다. 그 정도의 노란 물결은 그 이후로 본 적이 없을 정도의 역대급 폭락장이었다.
그 날은 중국 당국이 모든 거래소의 비트코인 출금 금지를 선언한 날이다. 그에 따라 비트코인 시장 주도권은 차츰 일본으로 넘어감과 동시에 해외 거래소보다 -30~40% 낮은 가격에 거래되었다. 해외 거래소로 출금이 안 되기때문에 차입 거래에 따른 가격 균형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어쨌든 그때까지 뉴스도 제대로 안 보고 거래하다가 제대로 한 방을 맞았다. 10개면 지금으로 치면 2억이다. 다음날도, 그 다음 날도 밥맛 없는 우울한 나날이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온갖 미래의 행복한 상상을 하며 스스로 으스대던 내가 꼴사나웠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정신을 차츰 찾고는 노트 어딘가에 깨달은 것들을 적어놓았다. 언제든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 지나친 믿음과 고집은 독약이라는 것을 드디어 알게 되었다. 또한 포지션을 들고 있는 상태로 자리를 비우는 일은 없기로 다짐했다. 반대로 일이 있어 자리를 뜨려면 반드시 포지션을 청산하기로 했다.
너무 쓰린 기억이라 당시 상황을 자세히 적는 것은 1년쯤 지난 오늘이 처음이다. 하지만 이것은 언제든 재생을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경험이다. 그로 인해 나름의 원칙을 세우고 더욱 손절을 많이 하게 되었다. 내가 만약 상승과 하락의 냄새를 태생적으로 잘 맡는 천부적인 트레이더였다면 손절이 많이 필요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날 이후 나는 아무 것도 아니란 걸 안다. 나는 시장이 주는 부스러기를 받아먹는 각설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