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제가 7년전 영국에서 첫 잡 오퍼를 받은 후 티스토리 블로그에 작성했던 글입니다. 블로그의 다른 글은 옮길 생각이 없으나, 이 글은 여러가지 의미를 닮고 있기에 스팀잇에 공유합니다. 7년전에 적은글이므로 현재 상황과 일치하지않는것 많으니 재미로 읽어주시길..
“외국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것은 과연 어떨까?” 한국에서 다년간 소프트웨어 개발 업계에 종사한 프로그래머라면 한번쯤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현지에서 학사 혹은 석사를 밟은 사람이라면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길이 열려 있겠지만, 한국에서 공부를 하고, 한국 기업에서 프로그래머로 일을 하던 내게 외국으로 취업을 한다는 것은 막연한 희망사항 이었다. 하지만 나는 1년여의 준비 과정을 통해 얼마 전 영국의 한 회사에 취업하였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써 근무하고 있다. 이에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외국 진출을 생각하고 있는 한국의 프로그래머들에게 작은 도움이 될까 해서 나의 생각과 경험을 글로써 정리하고자 한다.
나보다 앞서 영국에 진출하여 일을 하고 계신 많은 분들이 이미 좋은 정보를 올려 주셨기도 하고, 또한 법규들이 계속해서 바뀌기 때문에 전문적인 내용은 적지 않으려 한다. 그 대신 이 글에서는 내가 한국을 떠나고자 결심한 계기와, 그로부터의 준비 과정, 고민했던 것들 그리고 출국까지의 이야기를 적어 보겠다.
한국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한다는 것
다른 모든 프로그래머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프로그래밍을 정말 좋아한다. 회사 생활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프로그래밍이란 항상 재미있고 흥분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학원 졸업 후 전문연구요원으로 복무하는 동안, 국내의 소프트웨어 개발 실태에 대하여 많은 실망과 아쉬움을 갖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슈퍼 갑” 이라 불리는 이동통신사 들과 깊은 업무 협력을 하고 있는 꽤 유망한 벤처 기업에서 서버 개발을 하며 지내는 동안, 프로그래머로서의 꿈과 자존심에 많은 상처를 받았다. 소프트웨어 개발은 절대로 Manufacturing이 아닌 creation 이라고 굳게 믿는 나에게 항상 일정만을 강요하는, 마치 “공장장” 같은 매니저들은 꽉 막힌 벽처럼 느껴졌다. 재미있는 일을 재미없게 해야 하는, 어디부터 꼬였는지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는 부조리 속에서, 어느덧 나에게 프로그래밍은 그냥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일”이 되어가는 것 만 같았다.
우리 사회에는 직급 이라는 것이 있다. 이 직급은 업무의 수준과 경계를 나누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하 관계를 가지며, 일반적으로 실력보다는 단순히 호봉에 따라 매겨진다. 이는 실력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지 않고, 경험이 곧 실력이 되는 사회에서 아주 유용한 잣대가 된다. 그런데 프로그래밍 실력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면 얼마든지 상세히 평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소프트웨어 개발 팀에는 거의 동일한 개념의 직급이 반영된다.
나는 직급의 존재가 우리나라의 소프트웨어 산업을 망치고 있는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직급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의견 교환을 저해하며, 호봉에 따른 일종의 연봉 테이블이 공공연히 존재함에 따라 노력이 필요 없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실력을 올리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연봉은 오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10년 차 프로그래머 중에서도 “10년간 숙성된 내공”이 아닌 “10년 묵은 내공”을 가진 분들이 많다. 좋든 싫든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분들과 함께 일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며, 분위기에 물들다 보면 나 또한 이런 부류의 사람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여러 상황을 고려해 보았을 때, 한국에서는 프로그래머로써의 내 미래를 명확하게 그릴수가 없었다.
2009년 6월, 내 생일이 지나면서 30대가 되었다. 전문연구요원 복무만료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이 시기였다. 프로그래밍에 대한 열정이 식기 전에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동안 막연히 동경해 오던 외국 진출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외국에서 일하기 위해서 내가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나열해 보고 계획을 수립해 보고자 하였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내가 세울 수 있는 계획이라곤 없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일단 저지르고 봐야 하는 내 성격이 문제였다. 그래서 두말할 나위 없이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것인 영어부터 시작 하였다.
영어공부 시작
강남역 YBM 학원의 "원어민 회화 새벽반" 의 수강료 인터넷 결제를 30분의 고민 끝에 클릭 하였다. 반복되는 야근과 술자리를 핑계 삼아서 끊임없이 미뤄오던 영어 공부를 드디어 시작한 것이다. 사실 첫 달에는 “까짓거 한달치 학원비 버리는 샘 치고 한번 등록이나 해보자!”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수원에서 삼성역까지 통근을 하던 나에게는 아침에 학원을 다닌다는 것은 정말 큰 부담이었다. 출근시간인 9시까지 회사에 도착하려면 최소한 7:40분 수업을 들어야 했기 때문에 매일 5시 30분에 일어나야 했다. 하지만 학원 친구들 및 원어민 강사와 친하게 지내면서 피곤함을 잊고 재밌게 공부할 수 있었다. 특히, 원어민 강사들 하고는 출국하기 직전까지 계속 친하게 지냈다. 같이 소주도 참 많이 마시고 주말엔 등산도 같이 다녔다. 영국으로 출국할 때에는 내 오랜 친구들보다도 더 많이 아쉬워하며 술도 사주고 선물도 사주며 응원해 주었던 고마운 기억이 난다. 많은 사람들이 그룹 영어회화를 듣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만, 개개인이 하기에 따라서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취업 조사
아무래도 모든 테크놀로지의 첨단은 미국에 포진해 있기 때문에, 내가 처음으로 관심을 가진 나라는 미국이었다. YBM 학원을 다니면서 미국 취업에 대한 조사를 시작 하였다. working us 이라는 너무나도 고마운 미국 한인 커뮤니티 덕분에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미국 진출에 대한 불확실성만 커져갔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지만 그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고, 한번 잡은 기회라도 또다시 놓쳐버리기 또한 쉬운 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그래머나 디자이너와 같은 직업은 자신만의 Specialty에 기반하여 일을 하며, 어떤 회사와 일하느냐 보다는 어떤 일을 하느냐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에 워크퍼밋이라는 굴레는 너무나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에 반하여 호주, 캐나다, 영국은 각각 방식은 다르지만 기술이민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능력이 있는 이민자들에게 호의적이고 체계적인 절차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매력을 느낀 나라는 영국이었다. 영국에 매력을 느낀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주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들 및 연구소들이 있음.
-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들이 있음.
- 영어의 본고장이며, 상상을 초월하는 문화적인 풍요로움이 있음.
- 편하고 저렴하고 자유로운 유럽 여행이 가능.
영국취업 조사
영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조사를 시작 하였다. 영국에 대해 조사를 하면 할수록 영국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게 되었고, 또 한가지 중요한 Tier 1 General 이라는 비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Tier 1 General 비자는 개인의 능력만 증명한 사람에게 한하여, 영국에서 3년간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 주는 일종의 기술이민 비자이다. 한마디로, “너 취업할 자신 있어? 그럼 기회를 줄 테니 어디 한번 와서 능력을 증명해 봐.” 이다. 나는 이 비자 자체에서 영국이란 나라의 거만함과 관대함을 동시에 보았으며, 더욱더 이 나라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도전 의식이 들게 되었다.
Tier 1 General 비자에 대한 정보는 영국이민센터 홈페이지에서 아주 상세하게 얻을 수 있었다. 영국이민센터는 한인들이 영국에 세운 비자 에이전시인데, 그 전문성이 아주 뛰어나서 현재 거의 독점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궁금한 점을 게시판에 올리면 무료로 친절히 설명도 해준다. 그런데 개개인의 사정에 따라 비자 신청의 복잡성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의뢰비가 고정되어 있다. 사실 우리 같은 평범한 직장인은 준비할 서류가 그리 많지 않고 복잡하지도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상당히 비싸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럴 때 즈음, 영국 행에 박차를 가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구글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김한메님 블로그를 들어가게 되었다. 이 블로그의 주인장인 김한메 님은 당시 기준으로 이미 1년 전에 영국의 회사에서 일을 하고 계셨으며 자신이 수집한 정보와 생생한 경험을 상세한 글을 통해 공유하고 계셨다. 이 블로그를 통해서 값진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었으며, 더욱 더 확신을 갖고 준비를 할 수가 있었다. 한메님께서는 영국에 입국한 후에도 계속 도와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 외에도 지구소녀님 블로그, 양파님 블로그 등에서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IELTS 공부 시작
영국으로 가기로 결심하고,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일은 IELTS 시험 준비였다. T1G 비자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IELTS General 6.5 를 획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IELTS 공부를 위해 가장 먼저 내가 한 일은, 알츠스쿨이라는 까페에 방문하여 사람들의 수기를 열씸히 읽는 것이었다. 이 과정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에게는 공부 의지를 불태우고, 공부 방법의 가이드를 세우는데에 아주 큰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수기에 대해서만 언급 했지만 알츠스쿨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IELTS 스터디 커뮤니티이고, IELTS를 시작하여 원하는 점수를 얻을 때 까지 끊임없이 도움이 되는 곳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준비해야 했기에 시간이 너무도 부족하여 YBM 학원 수강을 잠시 중단하고 IELTS에 집중 하였다. 새벽에 일어나서 회사에 7시까지 도착하여 9시까지 공부하고, 점심시간에도 조금씩 공부를 하였다. 그리고 퇴근 후에 집에 오면 아침과 점심에 공부했던 것을 복습하였다. 물론 잘 지키지는 못하였지만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하였다.
가장 극복하기 어려웠던 것은 술자리였는데, 아무리 늦어도 9시 30분에는 반드시 술자리에서 일어났다. 술과 술자리를 사랑하는 전형적인 한국 남자로써, 한번 마시기 시작하면 차 끊길 때까지 먹곤 하던 나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행동이었다. 그 때문에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에게 많이도 욕을 먹었다. 때로는 숨겨둔 여자가 있는 것 아니냐면서 오해를 사기도 했다. ^^..
먼저 한달 동안 해커스 어학원에서 IELTS 기본 주말 반 수업을 듣고 기초를 다졌다. 해커스 어학원에는 IELTS 주말반이 있기 때문에, 직장인이었던 나에게는 그나마 가장 부담 없는 선택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 1달동안 많은 정보를 얻으면서 IELTS 공부에 갈피를 잡을 수 있었다. 만약 해커스 학원을 다닐 예정이라면, 반드시 스터디 모임에 참여하기를 권한다.
한달 여의 학원 공부 결과 몸과 마음이 한없이 지쳐만 갔고, 득과 실을 따져 보았을 때 더이상의 학원 수강은 큰 메리트가 없다고 판단되어 11월 및 12월은 따로 스터디그룹을 만들어서 주말마다 모여서 공부했다. 그리고 IELTS 스피킹에 대비하기 위하여 스카이프로 하는 IELTS수업을 들었다. 하루 50분, 주 5일 수업을 하며 4주에 보통 15만원에서 20만원 사이인데, 나에게는 돈 이상의 값어치를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일부러 밤 11시 수업을 신청하여 유혹을 못 이기고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일을 최대한 피하려고 하였다.
그 결과 1월 9일 날 치른 시험에서 평균 6.5(L:7.0 R:6.5 W:6.5 S:6.0)를 받을 수 있었다. 점수를 받은 다음날 알츠스쿨에 접속해서 늙 읽기만 하던 졸업 수기를 내손으로 썼다.... 상당히 뿌듯했다 ^^
점수는 시험을 치른 2주 후에 인터넷으로 확인 할 수있으며, 성적표는 그보다 1~2주 후에 우편으로 배송된다. 나의 경우 2주 이상 기다려도 성적표가 도착하지 않아서, 호주 IDP에 전화로 연락하여 재발급을 요청한 후 직접 강남역에 있는 사무실에 방문하여 수령 하였다.
T1G 비자 신청
IELTS를 받은 후에는 영국이민센터를 통하여 T1G 비자 신청 절차를 밟았다. 에이전시를 통해서 준비한다고 해서 100% 된다는 보장도 없으며, 실패 시에 환불도 되지 않기 때문에 참 많은 갈등을 했었지만, 만에 하나 비자거부를 받게 되면 모든 계획이 틀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큰 돈을 들여서 에이전시를 고용한 것이다. 에이전시를 고용함으로써 손과 머리와 마음이 덜 고생한 것은 확실하며 중간에 있었던 예상치 못한 사건에 대해서도 잘 대처가 되었다.
에이전시를 통한 비자 신청 절차는 간략히 다음과 같다.
- 에이전시에 돈을 지불하면, 담당자가 필요한 필요한 서류 목록을 메일로 보내 준다.
- 이 목록에 있는 서류를 발급하여 스캔한 후 담당자에게 메일로 보낸다.
- 담당자가 각각의 서류에 대해서 적합성 여부를 알려주고, 필요시 재발급을 한다.
- 모든 서류를 잘 발급 받고 나면 원본을 영국으로 국제 특송을 통해서 보낸다.
- 보내진 원본은 영국이민센터에서 검사 및 적절한 처리를 하여 다시 우편으로 보내준다.
- 이를 본인이 직접 남대문의 영국비자신청지원센터에 제출한다.
여기서 되도록 모든 서류를 영문으로 발급 받아야 번역 공증으로 소요되는 지출을 줄일 수 있다. 우리 회사는 급여명세서를 영문으로 발급해 주지 않아서, 내가 직접 번역한 후 회사에 원본대조필과, 직인을 찍어달라고 한 후 제출 하였다.
또한, 담당자에게 언제쯤 서류를 받을 수 있는지 미리 물어본 후, 영국으로 서류를 보내고 나서 미리 영국비자신청지원센터 홈페이지를 통해서 비자 접수 방문일을 예약 하는 것이 좋다. 영국비자신청지원센터는 오후 1:30 이후에는 방문할 수 없으므로 늦지 않도록 해야한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되도록 이른 시간에 예약하여 방문하도록 하는것이 좋다.
나의 경우 4월 5일에 비자 법이 바뀐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어 급히 비자 신청 절차를 하게 되었는데, 영국으로부터 신청 서류가 늦게 도착한 점, 중요 서류 한부가 누락된 점, 비자신청서류 전산화 그리고 영국의 장기휴일 등의 불운이 한꺼번에 겹치는 바람에, 비자 신청을 못할 뻔 하여 진땀을 뺀 경험이 있다. 에이전시에 의뢰하더라도 본인도 꼭 확실히 체크해야 한다. 어찌 되었든 비자를 신청한 후 3주 만에 T1G 비자를 우편으로 받게 되었다.
퇴사 의사 밝히기
나의 경우에는 비자가 나오기 전에 팀장님께 미리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고 퇴사 의사를 밝혔다. 비자를 받고 퇴사 하는 것은 너무 늦을 수도 있고, 또한 조금 기회주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회사 입장에서 굉장히 중요한 프로젝트를 하는 도중에 퇴사 의사를 밝히게 되어서 참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한번도 바쁘지 않은 적이 없었고, 중요하지 않은 프로젝트를 한적이 없었기 때문에, 시기가 달라진들 상황은 동일하다고 판단하였고 오히려 빨리 퇴사 의사를 밝히고 상호간에 준비할 여유를 만드는 것이 상생이라고 생각했으며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단, 우리나라의 인력 고용 특성상, 한 명이 퇴사를 하면 당분간은 남는 사람들이 그 여파를 떠안게 되므로 동고동락 했던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팀장님과 부장님 그리고 연구소장, 사장님까지도 못내 시원섭섭해 하셨지만 따듯한 조언과 함께 응원해 주셨고 직장 동료들도 많이 응원해 주었다. 퇴사 의사를 밝히고 나서는 일을 더욱더 열심히 하고 신뢰감 있는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 하였다.
이렇게 미리 퇴사 일을 잡은 덕에 출국일 까지 1달 가량의 휴식 기간이 생겼다. 이 기간 동안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밤낮으로 많은 량의 술을 마신 것 같다.
인터뷰영어 준비
비자를 받은 후, 영어 인터뷰 준비를 시작 하였다. 하지만 닥치지 않으면 잘 하지 않는 게으른 성격 탓에 출국 직전까지도 거의 준비를 하지 못하였다. 부담감에 이것 저것 하려고 노력은 하였으나 큰 성과는 없었다. 오히려 이 기간에 마음 편하게 여행이라도 다닐걸 하는 후회도 든다. 1달간 다이렉트 잉글리쉬에서 영국인 강사하고 일상 회화 공부를 하였고, 그 후에는 YBM학원 강사였던 뉴질랜드 친구와 틈틈이 영어 공부를 하였다.
CV 작성
인터뷰 영어 준비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CV를 작성하는 것이다. 다들 아시겠지만, CV에는 딱히 정해진 형식이 없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형식이 자유롭다. CV 작성에 대한 의견은 사람들 마다 다르며, 직무 분야별로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자신의 판단에 의지하는 것이 가장 옳다고 본다. 확실한 것은, CV를 작성한 후에 읽고 또 읽으면서 내용상 연결이 잘 되는지 확인하고 계속해서 다듬어야 한다. CV의 페이지 수에도 의견이 분분한데, 나는 처음에는 CV는 1장에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비교적 사소한 내용들은 모두 배제하고 내가 일하고 싶은 분야에 직접 관련 있는 내용만 간추려서 1장짜리 CV를 만들었다. 어차피 자세한 내용은 전화나 Face-to-Face 인터뷰에서 이야기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직접 구직 활동을 해본 결과 자세한 내용을 조금 더 추가한 2장짜리 CV가 훨씬 반응이 좋았다. 프로그래머의 CV는 기본적으로 2장은 되는 것이 좋을 것 같고, 페이지 수가 더 많더라도 문제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맨 앞의 2장만 읽어도 중요한 내용은 모두 파악할 있도록 치밀하게 구성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같이 들리겠지만, CV는 헤드헌터와 개발자 그리고 매니저를 모두 만족시키겠다는 생각으로 작성하는 것이 가장 좋다. 각자의 기술적 이해도는 천차만별인데 어떻게 적는 것이 가장 적절한 방법 일까. 내가 CV를 쓰면서 느낀 점을 정리해 보겠다.
첫째, 이해하기 쉬운 용어와 설명으로 풀어서 적어야 한다. 가령, IMS망에서 동작하는 Instance messaging 시스템을 위한 SIP 기반 Signaling Server를 만들었다고 하자. 이를 그대로 CV에 적는다면, 개발자나 개발 매니저들에게는 가장 정확하고 유용한 정보가 되지만, 헤드헌터들의 비전문적인 검색 키워드에는 걸리기 어렵기 때문에 묻혀 버릴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동통신사의 차세데 휴대폰 메시징 서비스를 위한 메신저 서버를 개발” 이라고 알기 쉽게 적고, 세부적인 내용은 그 하위에 적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둘째, 판단 기준이 되는 수치를 적으면 신뢰감을 줄 수 있다. 다른 분야는 잘 모르겠으나, 서버 개발 분야의 경우 서버의 Capacity와 Throughput이 큰 평가 기준이 된다. 무슨 기술을 쓰던지 최소한의 하드웨어 자원에서 안정적이고 높은 성능을 내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내가 개발에 참여했던 각각의 서버 시스템의 성능 요구사항을 기재 하였다. 예를 들면, “초당 100개의 호 처리, 단위 유닛 당 25000 동시 Connection 지원, 100Mbps의 메시지 처리” 등의 내용을 추가 적은 것이다. 인터뷰에서도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기술적인 논의가 많이 있었으며, 좋은 호응을 얻은 것 같다. 각자 분야에서 중요시 되는 수치가 있을 테니, 꼭 찾아서 기록하기를 추천한다.
셋째, 각각의 프로젝트마다 내가 만든 모듈이 어느 부분이며, 어떠한 기술을 사용하였다는 내용을 추가하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에서는 개발자가 혼자서 하나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경우가 많은데, 영국에서는 이런 점이 플러스가 되지 못한다. 당연히 Co-work 을 통해서 개발 했어야 하고, 내가 기여한 부분을 명확히 해야 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 그러니 혼자 진행했던 프로젝트도 최소 3명 이상이 팀을 이루어 개발 한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반드시 원어민 친구에게 부탁하여 교정을 받기를 권한다. 나의 경우에는 엔지니어 출신의 외국인 친구를 만나는게 어려워서 비즈니스를 전공한 친구에게 교정을 받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받고 안받고는 자신감에서 부터 차이가 나기 때문에, 꼭 받는 것이 좋다.
한국 출국
애초의 계획은, 영국에 비자 시작일보다 조금 먼저 도착하여 지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영국이민센터에 문의해 본 결과 입국거부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계획에도 없던 카타르 도하에 2일 머무르고, 프랑스 파리를 10일 정도 여행한 후 영국에 입국 하였다. 누나가 항공승무원으로 일하는 덕에 티켓을 저렴하게 구매하여 선물해 주었고, 나는 그 덕에 아주 편하게 영국으로 입국할 수 있었다. 외국에서 일하는 누나의 독려와 지원이 없었으면 외국 취업 과정은 더욱더 고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