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기득권의 희생양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사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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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암호화폐, 경제, 사회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며 이 글은 시대를 바라보는 저의 주관적인 시각일 뿐임을 먼저 밝힙니다.

영국의 부동산 시장을 기웃거린 지 2년이 넘었습니다. 2년 전만 해도 부르는 값에서 흥정을 한다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흥정은커녕,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서로 경쟁하며 서로 높은 가격을 부르던 시절이었습니다. 초저금리 시대에 오갈 데 없어진 현금 자산들은 부동산 시장으로 쏟아져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영국의 집값은 어느덧 정체기를 거쳐 침체기에 접어들었고, 마음만 먹으면 2년 전보다 더 싼 값으로 집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요가 급격히 줄어든 부동산 시장은 buyer's market이 된 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전 이제 더는 집을 급하게 살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암호화폐 때문입니다.

토끼몰이

주택 시장이 미쳐 날뛰던 시절, 기득권과 영국 정부의 토끼몰이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정부가 내놓는 주택 구매 장려 정책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기득권을 위한 집값 상승 촉진 정책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무주택자를 위한 5% 보증금 모기지 정책은 결국 그만큼 집값의 상승을 불러왔습니다. 집값의 20%를 5년간 무이자로 빌려주는 정책도, 결국 수요를 증가시킴으로써 주택 구매 경쟁 불길에 기름을 쏟아부었습니다. 빚을 얼마를 내든, 집값을 얼마를 내든, 하루라도 빨리 집을 사는 것이 희생양이 되지 않는 길이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넓게 깔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집 사는 이야기를 하던 시절이 계속되었습니다.

Seller's market이 극에 달하자 전 재산을 쏟아부어 집을 장만하는 사람들이 되레 아쉬운 소리를 해야 했습니다. 당시 집을 보러 가면, 여유 있게 집을 볼 틈도 없이 짧은 시간에 두세 팀이 동시에 집을 보는 일도 잦았습니다. 자칫 집값을 깎으려 하다간 바로 다른 사람에게 기회가 넘어가 버리곤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이면 또 집값이 올랐습니다. 그런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젊은 세대들은 희생양이 될 것 같은 공포에 젖어 들었고, 결국 막대한 돈을 대출받으면서 25년, 30년짜리 모기지를 받고 매우 비싼 값에 주택을 구매했습니다.

노예제의 리 브랜딩

제가 활동하던 영국의 부동산 커뮤니티인 housepricecrash.co.uk에서는 이 현상을 현대판 노예제의 부활이라 불렀습니다. 사람을 소유할 수 없게 되어버린 세상에서 기득권들이 합법적 노예를 갖기 위해 만든 시스템이 드디어 완성에 다다랐다는 것입니다. 살 곳만 하나 주면 평생 노동을 제공하던 노예들처럼, 기득권의 땅에 기득권들이 지은 집을 어마어마한 가격에 사들여서 30년 동안 평생 회사에 다니며 번 돈을 다시 기득권들에 돌려주는 젊은 세대들을 대거 양산한 것입니다. 피땀 흘려 주택을 구매하고는 마치 자신들이 삶을 개척한 양 뿌듯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옅은 미소를 띠는 기득권들은 지금도 어디선가 샴페인 잔을 부딪히며 성공을 자축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노예제의 리 브랜딩은 매우 성공적으로 보입니다.

완벽했던 시나리오에 생긴 균열

기득권들은 서민들이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를 모조리 없애버리고, 딱 하나의 사다리만 남겨 두었습니다. 선택의 여지 없이 이 사다리를 경쟁적으로 오르려고 애쓰는 사람들. 피땀 흘려 일을 하고 번 돈을 고스란히 다시 가져다 바치는 개미들. 모든 것이 순조로웠습니다. 현대판 노예들은 정해진 길을 가며 시키지 않아도 적극적이고 성실하게 노동력을 제공했습니다. 기득권을 시기하고 원망하기는 했지만, 결국 자신들이 "성공" 하려면 "노력" 해야 한다고 서로를 세뇌합니다. 현대판 노예의 자식들도, 그 자식들도 점점 더 깊은 세뇌를 대물림 할 것임이 분명하니, 지속 가능한 노예제도가 부활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암호화폐의 등장은, 기득권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내려준 새로운 사다리입니다. 그 사다리가 어디로 데려다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사람들에게는 선택이 생겼습니다. 이제 하나밖에 없는 사다리를 보며 막연히 불안해하지 않을 방법이 생겼습니다. 누구도 정보를 독점할 수 없는 훨씬 공평한 기회를 얻고 경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금리 시대의 완벽한 감옥에 갇히기 시작한 20대 30대들을 구원이라도 하려는 듯, 완전한 모습의 사다리가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서민층들이 막다른 골목에 몰린 지금 폭발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암호화폐와의 소리 없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규제와 철폐의 칼을 휘두르고 싶겠지만, 현대판 노예제의 완성을 앞둔 시점에서 조심스러운 접근을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어느 정도 타협을 하여 소수의 노예제 탈출은 눈감아 줄지도 모르지요. 거의 다 구워진 도자기에 균열이 생기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대하는 젊은 세대의 자세

기득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노동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두려워 하는 것은 사람들이 노동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노동을 하지 않아도 의식주가 해결되는 세상은 우리에게는 천국이지만, 기득권들에게는 지옥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노동하기를 원합니다. 아침 9시에 일어나 6시까지 일하고, 자진해서 야근도 하면서 오늘도 열심히 살았다며 뿌듯해하기를 바랍니다. 어차피 임금으로 나눠준 돈들은 국가와 기업 그리고 자본가들에게 다시 흡수되니까요.

지금의 20대는 아직 꿈도 펼쳐 보지 못했는데 사다리가 하나밖에 없는 세상에서 그 사다리에 발이라도 걸쳐 보겠다고 다이아몬드 같은 젊은 시절을 아름답지 않게 소모하고 있습니다. 도태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2층으로 가지 못할까 봐 무섭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사다리를 오르면 어디로 가는지 다들 알고 있습니다. 회사에 취직하고, 빚을 잔뜩 내어 집을 사고, 은퇴할 때까지 노동력을 제공하여 얻은 대가로 모기지를 갚으며, 자식들에게 똑같은 삶을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새로운 사다리가 놓였습니다. 이는 기득권이 심혈을 기울인 철옹성 같은 현대판 노예제, 부의 대물림에 금이 가게 할 역사적인 전환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사다리를 외면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적극적으로 살펴보시겠습니까?

시장은 아직도 작다

지금 한국에 있는 저의 친구들의 단톡방은 암호화폐 이야기로 정신이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암호화폐를 알고있고, 대화 주제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누가 보아도 포화상태인 것처럼, 버블은 곳 터질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제가 있는 영국은 정 반대입니다. 저는 지난해 6월에 암호화폐를 접하게 되면서, 회사 동료들과 대화 할 때 종종 암호화폐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냈는데, 다들 폰지사기다, 버블이다, 현금화가 불가능하다는 말만 했고, 저를 보며 "너 암호화폐 투자하냐 조심해라" 하며 조소 섞인 말을 건네곤 했습니다. 지난 11월경에 회사 동료 한명에게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경험들도 이야기 해 주었지요. (마침 비트코인이 폭등하던 시기라 상당한 소득을 올린 그 친구는 저를 암호화폐의 마스터인줄 알고있습니다. ㅎㅎㅎ) 하지만 역시 저랑 그친구 말고는 암호화폐에 대해서 대화하는 사람을 거의 본적이 없었습니다. 기껏 대화를 한다고 해봐야 이런 정도입니다.

"비트코인이 엄청 올랐다더라"
"그러게 세상이 미쳤나보다"
"하루에 30% 떨어진다더라"

그런데 2주 전 부터, 옆팀 뒷팀 그리고 심지어 우리팀 애들까지 조금씩 비트코인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더니, 몇몇은 드디어 "리플"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리플이 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습니다. 어디 영국 시골 이야기냐 하시는 분들이 계실까봐 말씀드리자면, 저희 회사는 런던의 금융 중심가에 있으며, 직원 대부분이 20대 초반에서 30초중반입니다. 게다가 어디가도 꿀리지 않는 최고 수준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 입니다. 이 친구들조차 아직도 우리나라 사람들에 비하면 "코린이" 수준이라는것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치 6개월전 한국하고 비슷합니다. 당시 제 친구들이 있는 단톡방에서 코인 이야기를 꺼내면 이상한 소리를 듣던 시절이었거든요.

시장은 아직 본격적인 팽창을 하지 않았습니다. 영국의 암호화폐는 이제 시작입니다. 유럽도 비슷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마치며

영국 사람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부동산 버블을 일으킨 것 처럼, 암호화폐에도 화끈하게 뛰어들 것입니다. 6개월 전 housepricecrash.co.uk 에서 비트코인을 버블, 폰지, 폭탄돌리기에 비유하며 무시하는 글이 난무했던것과 지금을 비교하면, 지금은 많이 많은 사람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6개월 후에는 어떤 모습일지 귀추가 주목 됩니다. 철저하게 봉인되어 왔던 부의 재분배의 길이 암호화폐를 통해 열리는 한해를 기대해 봅니다.

2018년이 기대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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