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졸업했던 중학교는 역사가 100년 가까이 되는 꽤 유명한 사립학교였다.
지금은 작고하신 당시 그 학교 기술 선생님은 교장 다음으로 연배가 높았고 학교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다. 또한 그저 선생님이라고 말하기에는 뛰어난 점도 많았다. 예를 들면 학교 건물을 이전할 때 공학적인 설계 상당수를 별도 외주 없이 직접했을 실력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실제 공학도로서 굴지의 기업에서 근무한 경력도 많고 해외에도 파견을 다녀온 적이 있는, 소위 산업화의 역군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당시 그가 해주었던 젊은 시절 경험들은, 그 선생님이 요령있게 재미있게 설명하지 못해서 그렇지, 소재 자체로는 흥미진진한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인기 있는 선생님은 아니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그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어느 더운 여름 날 수업을 하러 들어온 그 기술 선생님이 버럭 화를 냈다. 이유인즉슨 학생들이 화장실 두루마리 휴지를 너무 막 쓴다며 좀 아껴쓰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는 뒷처리를 할 때 딱 4쪽 밖에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근검절약을 강조하는 그 선생님 취지야 알겠다만 물 비누가 있던 것도 아닌 학교 화장실에서 뒷처리에 휴지를 4쪽 밖에 쓰지 않는 것은, 여러모로 비위생(非衛生)적인 상상력을 자극할 수 밖에 없었다. 화장실에 비데도 없는데 저 양반은 도대체 어떻게 4쪽으로 뒷처리를 하는걸까? 저 선생님 손톱에 끼어있는 검은색 떼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등등.
그 선생님은 학생들과 악수하던 버릇이 있었는데 그 발언 이후 학생들이 그 선생님과의 악수를 피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살면서 가장 극명하게 세대차를 보았던 순간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조금만 더 생각했다면 그런 학생들의 반응은 예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역시 어려웠을까.
내가 보니, 세대차 나지 않게 사유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소수의, 조금 똑똑한 게 아니라 극단적으로 지적 수준이 높은 사람만이 할 수 있더라. 그리고 한국에서는 더 어려운 것 같다.
서구에서 세대차가 나지 않게 노인과 젋은이가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것은, 물론 한국처럼 급속도로 시대가 변하는 환경에서 자라지 않아서, 그래서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문화가 좀 더 많아서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중요한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첫째로 무엇이 맞도 답이라는 그런 관념이 없어서인 것 같고, 두번째로는 해외는 나이가 많다는 것이 내가 옳다는 권위가 되는 문화가 없어서인 것 같다.
'옳은 것'이 존재하고, 나이가 많은 이의 생각이 '옳은 것'이 된다면 나이가 어린 사람의 생각은 이해할 필요가 없는 틀린 것이 된다. 내 생각을 배우고 익히지 않는 것에 답답해할 뿐,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배경에 대한 이해가 적어지게 된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더러운 학교 화장실에서 아예 큰 거를 못 보는 친구들도 보였는데 당연히 이걸 이해해줄 리가 없다. 그런 것은 유약함일 수도 있지만, 나이 든 사람들이 여전히 운영하는 빌딩은 돈이 많고 적고를 떠나 지저분한 경우가 많은 것에 반해 젊은 사람들이 새로 디자인한 건물은 허름한 곳에 자리를 잡아도 깨끗한 경우가 많아 집객이 잘 되고 외국인들도 자주 방문하는 것을 보면 꼭 그렇게 볼 일도 아니다. 정말 급하면 젊은 사람들도 휴지 4쪽으로 뒷처리를 할 수 있다. 그럴 이유가 없는 세상에서 자랐으니 그러지 않을 뿐이다.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자신의 관점에 대한 권위를 내세우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은 저 기술 선생님의 휴지 4쪽보다도 웃긴 안건들이 많다.
그 기술 선생님은 열심히 훌륭하게 산 사람이었다. 내 주변의 나이가 든 사람들도 그렇다. 하지만 아시아문화권에서 젊은이들이 불편하지 않게 소통할 수 있을 만큼 사유하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적다. 나이가 들어 소외가 되고 젊은이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젊은이들이 배은망덕해서가 아니라, 제 아무리 유익한 방송이라도 공감대가 없으면 채널을 돌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왜 산업화 세대에게 부채의식을 가지라고 말하고, 왜 선배들의 지사적 풍모를 본받으며 민족의식을 가지라고 말하나. 따지고 보면 별다른 근거도 없는, 그 시대를 살았기에 양산되었던 생존지침이자 컬트적 문화일 뿐인데. 당신들이 잘 살고 싶고 공허한 어딘가를 정신적으로 채우고 싶어서 아니었나, 아니 정말 다음 세대를 위해 봉사라도 한 것일까. 자기가 젊은 사람 끼고 설교하는 게 좋아서 술 값을 내는 사람은 본 적이 있어도, 어려운 형편의 젊은이들에게 기부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는데.
근데 내 전 세대를 비웃을 것이 아니라 실은 우리 세대도 마찬가지다. 대학교 1, 2년을 먼저 다녔을 뿐인데도, '인생이란 뭐가 답이다.'라는 말을 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참이나 많다. 나도 그랬다. 실은 그 친구와 나는 전혀 다른 토양에서 자란 전혀 다른 종의 나무일 수 있는데 말이다. 답이 없는 인생에, 시키지도 않은 답을 말해주고 싶은 것은 기본적으로 문화권과 교육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단지 우리는 가진 것이 적을 뿐이기에 떠들 것이 적을 뿐이다.
살면서 나보다 어린 사람들 보면 입이 근질거릴 때마다 그 기술 선생님의 휴지 4쪽을 떠올리며 늘 언행에 조심해야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