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다른 골목

막다른 골목


현철에게

오늘 오후, 사는 것이 너무 힘겹다고, 이제는 아무런 희망도 없이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다고 마침내 눈물을 보이던 네게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선생으로서 제자에게, 아니 그보다 인생의 선배로서 후배에게 무언가 할말이 있을 법도 한데, 그 어떤 학위나 연륜도, 삶이 제멋대로 부리는 변덕을 해석하기에는 너무 어설펐기 때문이다.

신은 하나의 문을 닫으면서 또 다른 문을 열어 놓는 법이라고 말한들,
그 말이 지금의 네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그보다는 너보다 네댓 살 위인 전성균이라는 젊은이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싶다.

그 젊은이는 언젠가 신문에 기고했던 칼럼을 읽고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 소위 나의 '팬'이란다.
벌써 6년째 불규칙적으로 오는 그의 편지에서 가끔 언급되는 지난 이야기를 조합해 보면 내가 읽은 그 어느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극적인 사건의 연속이란다.

정읍에서 열두 살 때 소년 가장이 된 그는 열다섯 되던 해 병중에 있던 아버지가 자살하자 동생과 함께 무작정 상경, 새벽에는 우유 배달, 낮에는 정비 공장에서 일했다.

그의 배달 구역에 위치한 ㄷ대학을 지날 때마다 그는 언젠가는 꼭 그 대학의 학생이 되겠노라고 다짐했고, 6년 후 그의 꿈은 실현되었다.

그러나 입학한 지 한 달 만에 그의 무허가 오두막에 불이 나 동생이 타 죽고 말았다.
그가 내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 것은 대학 2학년 겨울, 자신이 중증의 폐병 환자인 것을 발견하고 휴학, 투병 생활을 시작한 때였다. 4년 전쯤 여전히 요양중이던 그가 쓴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개구리 세 마리가 우유통에 빠졌습니다.
첫번째 개구리는 자신의 운명을 개탄하고 헤엄쳐 볼 시도도 하지 않은 채 스스로 빠져 죽었습니다.
두번째 개구리는 하느님이 구해 주실 것을 굳게 믿고 기적이 일어나기를 빌고 빌었습니다.
그러나 기다리던 기적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고, 그 개구리는 기다리다 지쳐서 죽었습니다.
세번째 개구리는 어떻게든 우유통에서 빠져 나오려고 버둥대며 뒷발로 우유를 휘젓고 또 휘저었습니다.
마침내 우유가 딱딱하게 굳자 개구리는 그것을 딛고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읽고 나서 나는, 솔직히 말해 그가 너무 애처로웠다.
아니, 이런 터무니없는 이야기에서나마 희망과 위안을 찾으려는 그가 어리석다고까지 생각했다.

나는 세번째 개구리의 그토록 필사적인 의지가 숭고하고 아름답기보다는 차라리 너무 기막히고 비참했다. 나라면 그렇게 악착같이 허우적대며 사느니 차라리 스스로 빠져 죽는 길을 택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철아, 나는 지금 그의 필사적인 투쟁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고 있단다.
그가 지난번에 보낸 편지에는 드디어 9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고 원하던 직장을 얻었다는 소식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편지 마무리에는 삶이 또다시 자신을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기"는커녕 싸워 이길 자신이 있노라고.

현철아, '막다른 골목'이 갖는 역설적인 의미를 이해하겠니?
이제는 정말이지 아무런 희망이 없고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다고 느껴질 때
차라리 우리의 선택은 쉬워질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택은 단 두 가지뿐이다.
완전히 좌절하고 삶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그 상황을 또 다른 시작의 계기로 삼는 일이다.
그리고 최후의 승리는 두번째 길을 택하는 자에게 돌아간다고 나는 확신한다.

현철아, 힘내라.

언젠가 네가 문득 눈을 들어 저 파란 하늘을 쳐다보는 그날,
삶의 한가운데 서서 당당하고 치열하게 살았던 오늘을 떠올리며
살아가는 일이 아름답다고 느낄 그날을 위하여.

너를 사랑하는 장영희 선생 씀


제가 현철이가 되어 이 글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막다른 골목'은 각자에게 다른 의미겠지요.
저에게도 매우 막막한 '막다른 골목'이 존재합니다.
그 골목은 아주 최근에 맞닥뜨리게 됐어요.

앞서 언급한 개구리 일화를 읽으면 누구나 생각하겠죠.
'나는 당연히 세번째 개구리처럼 행동할 거야'
그러나 막상 막다른 골목에 직면하면 그 선택이 그리 쉽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세마리 개구리의 선택이 마치 하나의 흐름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체념을 하게 되죠.
아아...벗어날 수 없어
그러다 각자가 믿는 신께 애걸하게 됩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끝내 그 기도가 통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벗어나보자

마침내 탈출!

이 흐름이 제가 매우 원하는 결말을 도출해내지만,
삶이란 건 늘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걸 저는 이제 알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저는 몇 번째 개구리가 될까요?

다만 희망적인 것은...
저 개구리에게는 격려해주고 응원해 줄 누군가가 곁에 없었지만
저에게는 힘듦을 모두 털어놓고 '아자아자' 응원을 받을 수 있는 분들이 곁에 계시다는 겁니다.

언젠가 네가 문득 눈을 들어 저 파란 하늘을 쳐다보는 그날,
삶의 한가운데 서서 당당하고 치열하게 살았던 오늘을 떠올리며
살아가는 일이 아름답다고 느낄 그날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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