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방랑] 볼리비아 배낭여행자들의 천국 - 사마이파타(Samaip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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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체류형 여행을 하다 보면 현지인도 만나고, 여행자도 만난다. 만나면 늘 주고받는 질문이 있다.

“여기 온 지 얼마나 되었니?"
“얼마나 더 여행할 예정이지?”

얼렁뚱땅 넘길 때도 있지만, 사실대로 이실직고 하면 매번 질문이 돌아온다.

“2~3년씩 장기여행을 어떻게 해?”
“그렇게 오래 여행하다 보면 지치지 않아?”
“넌 집이 그립지 않니?”

장기체류형 여행자는 저마다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 나만의 노하우를 밝히자면 우선 현지에 베이스캠프를 마련하는 것이다. 해발 7~8천미터급 설산을 오르기 위해 등반대원들이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전진기지로 삼기도 하는 베이스캠프 말이다.

대륙으로 가는 길목이 막혀 ‘섬나라’ 꼴이 된 지 반세기도 넘은 남한에서야 이쪽 끝에서 저쪽 끝을 찍는데 10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인도차이나 반도든 남아메리카든, 24시간 이상의 장거리 버스여행을 대수롭잖게 여기는 거대한 대륙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도시를 톹아보려면 등반과 마찬가지로 ‘휴식’과 ‘전진’을 위한 ‘베이스캠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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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베이스캠프는 인도차이나 반도 가운데 내륙국가 라오스였다.

태국, 미얀마, 베트남, 캄보디아 여러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서 이동이 용이했고, 물가가 저렴했다. 수도 비엔티안을 벗어나면 월세 200달러에 전기료, 수도료 포함 방 3개, 거실과 부엌, 심지어 에어컨, 냉장고, 가스레인지, 세탁기 등등 풀 옵션을 갖춘 저택도 빌릴 수 있었다.

게다가 한 곳에 머물면 시장에서 쌀과 고기와 야채를 사와서 직접 요리해 먹을 수도 있어서 생활비를 줄일 수 있었으니.

내가 보고 싶은 풍경 앞에 멈추고, 가고 싶은 길을 가고 싶어서 오토바이도 샀다. 600달러. 떠나고 싶으면 오토바이에 짐을 싣고 길을 떠나고, 지치면 베이스캠프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며 다음 여행을 준비했다. 물론 준비보다는 동네에서 사귄 현지인들과 마시고 노느라 더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말이다.

태국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라오스로 돌아오고, 캄보디아 여행을 떠났다가 라오스로 돌아오는 식으로 2년을 보냈다. 베이스캠프가 집이나 다름없었으니 한국을 오가느라 돈을 낭비할 필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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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대륙에서 베이스캠프로 삼은 국가는 라오스와 유사한 조건을 갖춘 볼리비아.

남미 한 가운데 있어서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브라질, 여러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다른 나라에 비해 물가가 저렴했다. 대도시나 관광지를 벗어나면 방2~3칸, 거실과 부엌, 풀 옵션, 마당까지 딸린 저택이 30만원 수준.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호텔방도 월15만원에 빌릴 수 있다.

볼리비아에서 선택한 마을은 사마이파타.

볼리비아 제2의 도시인 산타크루즈에서 100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어 필요시 도시문화를 누릴 수도 있고, 산타크루즈(해발500미터)가 연중 무더운 날씨인데 반해 안데스산맥 끝자락(해발1700미터)에 있어서 연중 2~30도 정도로 쾌적한 지역. 게다가 수도 라파즈(해발3600미터)처럼 고산병을 염려할 필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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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이파타가 눈길을 끌었던 건 면 인구 3천명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인데 미국, 터키,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스페인, 오스트리아, 독일 등등 전 세계 곳곳에서 온 이민자와 장기체류자들이 사는 다국적 마을이란 점이었다. 그야말로 인구 3천명으로 이뤄진 지구촌.

예술가나 작가가 유난히 많았다. 사마이파타에 와서 처음 사귄 윌리엄도 미국 출신의 에세이 작가였다. 그는 월드뱅크에서 퇴직 후 21세기의 <월든>으로 평가받는 <12X12>와 <뉴 슬로우 시티: 세상에서 가장 빠른 도시에서 단순하게 살기>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관광지도 아니고 큰 볼 거리가 있는 마을도 아닌데 30여 개국에서 온 외국인이 원주민과 어울려 사는 곳, 좀 이상한 마을이다. 이런 장소는 사실 가이드북에서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실제 한국에서 출간된 여행서 중에서 사마이파타를 다룬 여행서는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중 여행자가 끊이지 않는다. 아시아에서 온 여행자는 극히 드물고, 유럽과 북미 출신의 여행자들이 종종 오긴 하지만, 대부분은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브라질, 에콰도르 등 남미 출신의 히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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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배낭에 기타, 북, 피리 같은 악기를 주렁주렁 매단 히피들이 사마이파타 장거리택시 정류장에 도착하면 나무 그늘 아래 짐을 부려놓고 수소문을 하기 시작한다.

"텐트를 칠 수 있는 숙소가 어디죠?"

<카페 1900>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내게 물어보면, 나는 늘 하르딘(Jardin), 스페인어로 ‘마당’이란 이름을 가진 호스텔을 알려준다. 주인장이 내 친구, 얀이다.

네덜란드 출신인 얀 또한 한때 세계를 떠돌던 히피였다.

히피들은 커뮤니티(중남미에선 그렇게 부른다. 우퍼와 비슷한데, 숙식을 제공받고 하루 6~8시간 공동노동을 하는 곳)에서 머물기도 하며 여러 기술들을 익힌다. 흙집 짓는 법, 농사짓는 법, 허브 재배하는 법 등등. 길이 곧 학교다. 떠돌다가 마음에 드는 나라나 장소를 발견하면 배운 기술을 활용해 둥지를 만든다.

얀은 10년 전 사마이파타에 땅을 사서 스스로 집을 지었다. 그 후 ‘커뮤니티’를 운용해서 히피들과 함께 몇 채를 더 짓고, 나무와 풀을 베고, 텐트를 칠 마당도 마련했다. 하르딘 호스텔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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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배낭여행자들의 천국 – 태국의 빠이(Pai), 라오스의 방비엥 (Vang Vieng) 등 - 으로 알려진 마을들을 재발견(?)한 것도 히피들이었다. 히피들이 선호하는 장소는 통상 ‘심심한 천국’ 즉 자연경관이 아름다우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마냥 기분 좋은 곳.

입소문을 타면 다른 히피들이 다녀가고, 이어서 배낭여행자들이, 이어서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이쯤 되면 숙박업소와 식당과 클럽이 온 마을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심심한 천국’은 ‘신나는 지옥’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국 관광객들이 찾아가는 ‘배낭 여행자들의 천국’은 실은 ‘천국’으로부터 한참 멀어진 후.

만약 ‘배낭여행자들의 천국’의 초창기 모습이 궁금하다면 볼리비아의 사마이파타로 가라, 근래 레스토랑과 가게가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시간이 남아있으니! 아참, 히피 친구들과 어울려 밤새 기타치고 노래하고 춤추며 놀려면,

텐트와 침낭은 필수!

Written by @roadpherom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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