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방랑] 페루 산타크루즈 트레킹, 무지개 안에서 잠든 적이 있나요?-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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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자 친구들은 서둘러 내려갔다. 나는 꽃핀 나무 아래서 비를 피하며 지나온 길을 돌아보았다. 멀리 아톤코차 호수가 보이고, 햇살 머금은 여우비가 지나고, 다시 몸을 틀었다. 그때!

오늘 우리가 묵기로 한 타울리팜파 캠핑장(4,250미터) 위로 무지개가 떴다. 그건 마치 무지개로 둘러싸인 돔처럼 보였고, 돔의 안쪽은 빛의 알갱이들로 채워진 듯 환했다. 산타크루스 트레킹 중 가장 황홀한 장면.

오늘 밤은 저 무지개 아래서 잠들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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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 알파마요(5,947m), 알테손라프(6,025m), 린히힐카(5,810m), 타울리프(5,830m), 키타라프(6,036m)으로 둘러싸인 캠핑장엔 우리 말고도 여러 산행 팀의 텐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비바람이 세졌고, 그래서 다들 식사를 마치자마자 자신의 텐트로 돌아갔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

빗소리를 뚫고 마르가리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다른 트렉킹팀 가이드를 맡은 친구를 만나 얘기를 나누는 내내 깔깔깔 웃었다. 내가 매트를 깔아 잠자리를 마련하고 침낭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한 후로도 그녀의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마치 한번 터지면 멎지 않는 아기 웃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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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난아기는 하루 평균 400번을 웃는다고 한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웃음의 횟수는 차츰 줄어든다지.

한국 성인 남성의 웃음 횟수는 1주에 1번, 한국 성인 여성의 웃음 횟수는 1일 3회라고 한다.

나는 잠들기 전까지 마르가리타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도시인들을 떠올렸다. 더 많은 것을 가졌지만, 더 적은 웃음을 웃는 사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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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되자 비는 그쳐있었다. 또 다시 길을 떠났다. 고도 4천 미터가 넘어서일까? 네덜란드 친구 안나가 고산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갖고 온 등산스틱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드디어 다다른 해발 4,750미터 푼타유니온(Punta Union) 고개. 이번 트레킹에서 가장 높은 곳, 360도 파노라마로 전망이 펼쳐졌다. 에메랄드빛을 내는 타울리코차 호수. 눈부신 설산,

다들 압도적인 풍경 앞에선 입을 허 벌린 채 서 있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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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리막길만 남았다.

가파른 돌길이 아래로 뻗어 있었다. 모로코차 호수를 지나자 작은 호수가 나왔는데 이름이 없다고 했다. 나는 그 모양을 따서 ‘라구나 코라손 Laguna Corazon’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라구나는 스페인어로 호수, 코라손은 심장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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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리팜파 캠핑장에 도착하자 마을 처자들이 잔디밭에 기념품과 맥주를 내려놓고 여행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마지막 밤이자, 첫 술. 떠들고 노는 사이 자정이었다.

텐트로 들어가기 전 올려다본 하늘엔 뭇별들이 반짝반짝 소리 없는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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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반나절을 걸어 미니버스가 우리를 기다리는 바케리아로 내려갔다. 우리는 떠나고 마르카리타는 남았다. 그녀는 또 다른 여행객들을 데리고 다시 산행을 할 거라고 했다. 이국에서 온 등산객을 이끌고 안데스 산맥을 누비며 눈 뜨고, 잠드는 여인.

또 다른 여행자들에게 자기 소개를 하며 깔깔 웃는 마르가리타를 보다가 나는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떠올린다.

‘매일 우주의 빛을 가지고 노는 그대, 불가사의한 방문자여......’

Written by @roadpherom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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