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나의 욕망과 두려움에 대해서
무엇을 욕망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이만큼 한 사람의 삶과 핵심을 파고드는 질문이 또 있을까? 이 질문에 정면으로 맞서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숨기고 싶고 마주치고 싶지 않은 자신의 모자란 내면을 직시해야 한다. 보통 그 속에는 찌질한 나 자신이 초라하게 서있다. 생존의 본능이자 나를 지키는 방어기제로 작동하는 두려움을 의식하지 않은 채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난 겁쟁이가 되고 만다. 두려움에 무릎 끓고 비이성적인 공포에 사로잡혀 어리석은 결정을 반복적으로 내린다.
02 시간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의 이면
어느 날 브런치를 보다가 '시간 부자'에 대한 글을 보고 이거다 싶었다. 꿈 없던 나는 준비된 상태로 은퇴하기라는 새로운 꿈을 정했다. 40살 중반 아니 못해도 50대가 되면 이 지루한 일상의 쳇바퀴를 끝내고 은퇴하리라. 더 이상 내 삶의 시간을 무의미하고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일, 의미 있는 시간으로 채워가리라. 자유를 누리니라. 그 자체는 바람직했다. 재무설계 계획이나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게 나쁠 리 없었다. 그 생각으로 인해 얼마간 활기가 돋고 책도 읽고 적은 금액이지만 투자에도 발을 담가보았다. 그래서 의심하지 않았다. 그 안에 어떤 욕망이 들어있고 사실은 그게 내 두려움의 반증이란 걸. (시간 부자를 목표로 하는 모든 사람이 나 같은 두려움에 시달린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그건 사실 현실에 대한 회피였다. 지금의 일상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절규에 가까웠다. 나는 지금의 삶이 불만족스러웠고 지독히도 다른 삶을 갈망했다.
조금 거리를 두고 노트에 질문을 하고 답을 해보았다.
'왜 시간 부자가 되고 싶은데?'
'좀 더 많은 시간을 내가 원하는 대로 쓰고 싶어. 내 생의 1/3 이상의 시간 동안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하는 게 싫어. 참고 사는 게 싫어. 끝이 있으면 좋겠어.'
'일을 하기 싫다는 거야?'
'응 나는 일을 하기 싫어.'
'정말이야? 그냥 집에서 놀고 싶다는 거야?'
'아니. 지금의 일이 싫은 거야. 의미도 재미도 성취도 없는 일을 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아.'
'그럼 하고 싶은 일 다른 일을 하면 되잖아?'
자문자답에 가슴이 쿵하고 떨어졌다.
'알잖아. 나의 경험과 경력으로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다는 걸. 그런데 냉정히 말해서 난 이제 무턱대고 도전할만한 나이는 아니잖아. 아니 마음의 확신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난 용기를 낼 수 있어. 그런데 아직도 찾지 못했어. 하고 싶은 일도 잘할 수 있는 일도.. 넌 참 나의 아픈 곳을 찌르는구나.'
순식간에 슬프고 우울해져 버렸다.
03 사회적 효용성의 증명
직업에 관해서 항상 바보 같은 결정을 내리며 살아왔다.
20살 이후에는 정말이지 억지로 회사에 다니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는 일 혹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지 못한 채 시간을 허비했다. 왜 그랬을까. 처절하진 않았지만 열심히 살지 않은 건 아닌데.. 방법을 몰랐고 세상에 나가는 건 두려웠고 내가 또 우울해질까 봐 겁이 나기도 했다. 그래서 꼭 해야 하는 것들만 해치우며 위험하고 불안한 환경을 피해 소극적으로 살았다.
어느덧 대학을 졸업하고 우연히 교육회사에서 신사업을 기획하는 일을 했다. 그때 나이가 25살이었는데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한 살 많은 언니는 계속 원서를 내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그때 그 언니는 내게도 다른 곳에 지원해보라고 권유했다. 나는 그러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그냥 일도 일단 해보는 게 좋을 것 같기에 하나에 집중하기도 어려워서라고 둘러되었지만 나의 마음의 소리는 달랐다.
"저는 언니처럼 내세울 만한 게 없는걸요."
인턴십 경험도 없고 면접을 보는 것도 두려웠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글쓰기는 '자기소개서'였다. 나의 사회적 효용성을 증명하고 나를 파는 행위. '기업'이라는 고객들에게 약점은 숨기고 강점은 극대화하고 그럴듯하게 나라는 상품을 포장해서 판매하는 그 일은 너무 버거운 일이었다. 그럴 때마다 거대한 장벽이 가로막는 기분이 들었다.
학생 시절 나의 사회적 효용성을 의심받지 않았다. 최상위의 성적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럭저럭 공부를 잘했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일찍 깨달았다. 좀 더 좋은 시험 성적을 얻고 좋은 대학에 가봤자 별 소용없다는 사실. 고등학교 때 선생님은 내게 '오리 같다.'라고 평하셨다. 특별히 잘하는 것도 못하는 것도 없다는 얘기였다. 나와 친하게 지낸 한 남학생은 내게 넌 10년 정도 일찍 태어났으면 좀 더 좋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성실히 시험만 잘 보면 어느 정도 안락함을 누리며 살 수 있었을 거란 의미다. 결론적으로 학생으로서의 경험은 나의 두 가지 무의식을 형성했다.
나도 몰랐던 기대, 당연히 어느 정도는 사회적으로 효용성이 있다는 증명을 마땅히 해야만 했고, 특별히 잘하는 게 없다는 치명적 약점이 불안했다.
웃긴 말이지만 난 예체능과 관련된 일이나 영업 쪽의 일은 제외하면 뭐든지 잘할 자신은 있었다. 나는 집중을 잘하고 눈치가 빨랐으며 성실했다. 시작부터 허들이 높은 전문적인 분야를 제외하며 어차피 실무는 회사를 다니면서 배우게 된다. 다만, 나는 다른 사람이 내가 일을 잘할 거라 믿게 만드는 일, 나를 뽑게 하는 일은 잘할 자신이 없었다.
04 엉망진창 포트폴리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특별히 좋아하는 일도 없으니 모든 건 다 내 선택이었던 셈이다. (다른 건 몰라도 직업이나 직장은 내 선택에 따라서 많이 달라졌을 게 분명하다) 선택을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면서 잘못된 선택을 했다. 선택의 비가역성을 느낀 후로 극도로 조심스러워졌다. 선택하는 게 무서웠다. 내게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까 봐.
원서를 몇 번 내보지도 않고 덜컥 합격한 회사에서의 직장 생활을 선택했고, 2년도 되지 않아 내린 퇴사 결정, 여행, 그리고 만 3년 간의 공백 기간, 도망치듯 들어온 지금의 회사, 다니고 싶지도 않고 그만둘 수 없어 매일 밤 시름하고 괴로워하는 나날.
나의 선택이 모여 만들어진 엉망진창의 포트폴리오는 시장적 가치가 전혀 없었다. 3년 간의 공백기 나의 절망과 괴로움을 떠올리자면 아무리 괴로워도 나는 이곳을 떠날 수가 없다. 곧 사회적 가치가 없는 인간이란 판명이 날 것 같았고 그건 내게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나는 늘 내게 죄책감을 가지고 살았다. 30살이 넘도록 여전히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찾지 못했다는 사실에... 나를 이 시점으로 몰아넣은 되돌릴 수 없는 모든 선택에 대하여 자책했다.
사회적 지위, 금전적 성공 같은 건 부럽지 않다. 나는 자신의 일에 얼마간 자부심 혹은 전문성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열등감을 느꼈다. 하고자 하는 분야나 꿈이 있는 사람이 부러웠다. 직업에 열의와 열정과 성취감을 느끼며 사는 모든 이가 나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절약했던 것이다. 일하는 게 행복하지 않으니깐. 난 죽을 때까지 억지로 돈만 벌다 죽고 싶지 않다는 절망감이 돈을 아끼게 만들었던 거다. 그런 맥락에서 시간 부자가 되고 싶었을 뿐이다. 준비를 한 후 명분 있는 은퇴자로의 삶을 원했다.
이런 생각을 하거나 말하다 보면 너무도 쉽게 눈물을 흘리곤 하는데 그때마다 남자 친구는 이런 말을 했다. 왜 직업과 너 자신을 분리하지 못하냐고. 돈을 벌지 않고 직업을 지니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서 너의 가치가 없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라고.
그 말이 잠시나마 위로를 주기도 하지만 내 마음은 아직 그의 말을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을 안 하면 괴롭고 쓰레기처럼 느껴진다. 난 즐겁게 일 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지금의 나로서는 능력이 없기에 조금이라도 즐겁거나 성취감을 느낄만할 일을 구할 가능성이 없게 느껴진다. 괴롭다'
이 글을 쓰면서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번 연도 나의 목표는 두려움과 열등감을 이겨내고 다른 직장 혹은 돈벌이를 구하는 것인데 아직도 자신이 없다. 직장을 구하는 것만큼은 나 자신을 믿을 수가 없다. 이것이 타인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나의 진짜 열등감이다.
[안녕, 감정] 시리즈
01 입장 정리
02 감정을 드러내는 거리
03 평화의 날
04 다름에서 피어나는 감정
05 아플 때 드는 감정
06 열등감 - part 1
07 나의 무기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