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도 안된 사이 두 마리의 고양이를 떠나보내고는 더이상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한달이 흘렀다. (실은 한달도 되지 않았었다.)
이런 우리 가족에게 새로운 인연이 생긴것 같다.
사무실 공사현장 길 건너편에 빵이 정말 맛있는 카페가 있다.
그날따라 업무가 있어 나는 집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남편이 현장에 나가 있다가 잠시 커피 한잔 하겠다고 카페에 들린 것이 일의 시작이었다.
어디선가 엄청나게 냐옹거리는 소리를 감지한 남편은 카페 매니저에게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매니저는 무척이나 난감해하며 상자를 하나 내밀었다. 그 상자 안에는 정말 주먹만한 아기고양이가 우유가 담긴 종이컵에 발을 담그고 바둥거리며 울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슬퍼서 흘리는 눈물이 아닌, 눈병으로 짐작되는 눈물이었다. 눈이 온통 짓물러 뜨지도 못하며 울어대는 것이었다.
사연인 즉슨, 아침에 카페에 출근을 하니 갑자기 아기 고양이 한마리가 나타났는데, 문을 열기 전부터 가게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인지 아니면 문을 열자마자 들어온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울어대길래 어찌할 바를 몰라 담요를 깐 상자에 넣고 사람이 먹는 우유를 줬다고 했다. 아기니까;;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없는 카페 매니저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한눈에 아직 젖도 떼지 않았을 법한 아가인 것을 알 수 있었던 아기냥이가 울어대는 것이 안쓰러워 상자에서 꺼내 안아 본 남편은 배에 있는 아물지 않은 깊은 상처를 보게 되었고 이것 역시 매니저는 알고는 있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고 했다. 잠시 고민하던 남편은 나에게 카톡으로 사진을 보냈다. 그리고는 그냥 두고 볼 수 만은 없어, 단숨에 병원에 데려갔는데, 다행이 생명이 위험하거나 한 상태는 아니지만 너무 어린데다 눈병이 심하고 큰 고양이의 공격을 받은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다시 길에 내 놓으면 어떤 고난을 겪을 지 알 수 없는 상태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직 예방접종을 하기에도 너무 어리다는 진단을 받고, 안약과 간단한 처치만을 받은 채 그렇게 꼬밍이는 갑작스럽게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이 어린 생명을 이제 어떻게 하지?
일단 눈병하고 상처가 나을때 까지 만이라도 데리고 있자, 이렇게 결론을 내린 우리는 안약을 넣어주고 급하게 마련해 온 아기냥이 용 사료를 그릇에 담아 주었다. 며칠을 굶은건지 허겁지겁 밥을 먹더니 안심이 되는가 보다. 겁도 없이 바로 무릎위로 기어 올라와 잠이 든다. 여태껏 엄마의 보호 아래 있어서 였을까? 경계심이 없어도 너무 없다 ㅠㅠ 이러니 공격을 받았겠지...
잠이 든 틈을 타서 이리저리 살펴 보았다. 배에 있는 긴 할퀸 상처 뿐 아니라 뺨 안쪽에, 다른 배 쪽에도 이빨자국이 있고 살이 깊게 패여 있다. 가슴이 아팠다. 어쩌다 엄마와 헤어졌을까? 어쩌다 공격을 받게 되었을까?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고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우리 가족이 이 고양이를 키울 수 있을까 덜컥 겁도 났다. 특히 한 달 전에 심장마비로 둘째냥이를 잃고 상처가 컸던 딸래미에게 소식을 전했더니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모두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꼬밍이는 호기심천국 애교쟁이였다.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보더니 사람만 보면 발라당 누워 애교를 피워대었고 딸래미가 집에 와서 만나러 오자마자 바로 무릎위로 올라가 냄새를 맡더니 잠이 들어버린다. 딸래미는 걱정하면서도 좋아하는 눈치다. 이렇게 경계심이 없어서 어떡해... 이렇게 작아서 어떡해... 엄마 얘 어떡할꺼야? 다시 길에 내 놓으면 아무래도 며칠 못살거 같아. 엄마 생각도 그래...
도무지 가만히 있지를 않아 수십장 찍어 건진 꼬밍이의 인생 샷. 코에는 애교점 하나, 입 옆에는 먹을복 점 하나, 점이 두 개나 있네요. 처음 데려온 날의 상처 투성이 꼬질이 모습은 꼬밍이의 자존심(?)을 위해 게재하지 않았습니다 :D
3일만, 일주일만 돌봐주자, 라며 데려온 꼬밍이가 믿기 어렵지만 벌써 열흘째 함께 살고 있다.
너무나 작고 귀여워서 꼬맹아 꼬맹아 부르다가 꼬밍이가 되었다. (실은 가족 모두 아직은 자기가 지은 이름이 더 이쁘다며 저마다 부르고 싶은대로 부르고 있다)
이제 공사 마무리가 한창이라 집에 오랜시간 혼자 두기도 미안했고 나도 밥을 거의 못 챙겨 먹는 상황에 아픈 아가를 돌볼 엄두가 나지 않았었는데 너무 씩씩하고 신나게 잘 지내 주었고, 어느새 눈병도 다 낫고 이렇게 이쁜이가 되었다. 배에 털이 빠져 있는 부분이 자기 몸 길이만큼 상처가 나 있던 부분인데, 그것도 거의 아물고 새 털이 나고 있다.
엊그제 알게 된 사실인데, 이 아깽이는 사실 카페 옆에 있는 수녀원에서 알고 있었던 아가였다. 그 수녀원의 수녀님들은 길냥이들을 여러마리 거둬서 돌봐주고 계셨는데, 꼬밍이의 엄마가 자주 왔었다고 한다. 아기를 낳았고 꼬밍이와 여러 아기들을 데리고 다녔는데 갑자기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이미 키우고 있는 냥이들이 너무 많아 남겨진 아가들을 새로 거둬줄 수 없어 안타까워 하던 중 꼬밍이도 자취를 감추었고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이삼일 만에 그 카페에 상처 투성이가 되어 나타났던 것이었다. 엄마가 다치던가 죽고 아가들은 뿔뿔히 흩어졌으리라.. 가슴이 아팠다. 그래도 우리가 꼬밍이를 데려간 사실을 알게 된 수녀님께서 카페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하셨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카페에서는 뜻하지 않게 VIP 고객이 되었다. 무조건 20% 할인, 커피는 무료. ㅎㅎㅎ
실은 공짜 커피를 마시게 된 것 보다 새로운 가족이 생긴 것이 훨씬 기쁘다.
그리고 둘째를 보내고 우울증에 시달리던 우리 가족과 딸래미에게 꼬밍이는 웃음을 되찾아주었다.
인연이라는 것이 정말 있기는 한가보다.
건강하게 잘 자라 주기를...
p.s.
20일 전에 글 올리고는 이렇게 새로운 가족과 함께 인사 드립니다.
이번에도 냥이 소식이네요. ㅎㅎ
토요일에 사무실 이사를 했는데, 이사를 했다기 보다는 아직 공사도 끝나지 않은 사무실에 짐을 던져 두었다는 표현이 맞는것 같아요. 너무 지쳐 온종일 쓰러져 잤습니다. 마무리공사와 짐정리를 다 하려면 아마도 2주일은 더 걸리지 않을까 싶어요.
그때까지 미술관련 포스팅을 하기는 지속되는 노가다에 지쳐 도저히 불가능할 듯 하지만, 새 가족은 소개하고 싶었고, 아기냥이 소식을 궁금해 하는 이웃분들께 인사 드릴 겸 이렇게 소식 남깁니다.
그동안 코인이 폭락하면서 스팀잇이 많이 조용해 졌다는 소식 들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바쁜 공사현장에서 돌아오지 못한 것일 뿐, 스팀 하락과 저의 활동은 전혀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
아가라서 아직 손이 많이 가요.
얼마나 신나게 뛰어놀고 먹고 아무데나 싸고 할퀴고 깨물고;; 집에 들어가면 발에 밟힐 정도로 바짝 붙어 따라다니고 발가락이 엄마 젖인줄 알고 물고빨고핥고 하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도 몸과 마음이 다 아팠던 저희 가족에게 귀염둥이 역할을 톡톡히 해 주고 있습니다. 조금 전까지 버리려고 모아둔 선거홍보지를 모두 흩어서 깔아놓고 정신없이 자고 있었는데, 포스팅을 하고 있자니 어느새 와서 발을 톡톡 건드리고는 그 옆에 자리를 잡고 다시 잠이 드네요.
소중한 인연 잘 키울께요. 감사합니다.
우리를 찾아와 줘서 고마워, 꼬밍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