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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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많이 망설였다.

너무 갑작스런 일을 겪고 보니 이런 글을 올리는 것이 맞는지 아닌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2
며칠 전, 밤 11시가 다 되어 지인의 연락을 받았다. 느닷없이 꽃을 갖다 주겠다는 것이다.
일 년에 서너 번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인데 성의를 생각해서 거절하기도 좀 그래서 받겠다고 하고 현관 앞에서 기다렸다. 오아시스에 정성스럽고 예쁘게 꽃꽂이가 된 꽃들이었는데 마르샤, 올포러브 등 각종 고급스런 백장미와 백합 등 거의 흰 꽃이었다. 행사장에 필요해 준비를 했는데 너무 많이 준비를 해서 버리기는 아까워 주변에 사는 지인들에게 나눠주며 들어가는 길이라고 했다.

3
꽃을 잘 가꾸지 못한다. 작은 화분 정도는 모를까, 꽃을 사다 두어도 이상하게 내가 꽂아 둔 꽃들은 이삼일도 가지 않아 빨리 시들어 버리기 때문에 꽃들에게 미안해서 사지 않는데, 이렇게 오랜만에 꽃을 받으니 집안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참 예뻐서 일단 오아시스 째로 화반에 담가두고 테이블 위에 얹어 두었었다. 그리 가깝지 않은 지인에게 한밤중에 받은 흰 꽃이라는 점에서 뭔가 마음 한구석에 석연찮은 느낌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예상치도 못한 곳에 이 꽃이 사용될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않은 채.

4
며칠 전 반려동물에 대한 유기를 주제로 제이미님이 주최한 #kr-pet 이벤트에 올린다며 우리 집 둘째 수수를 소개했었다. 유기묘를 데려와 가족이 된 둘째는 수수가 아니라 야수라며, 이 이야기를 스팀잇에 올리도록 허락해 준 딸에게 고마워하면서 옛날 기억을 더듬으며 글을 썼고, 추억을 더듬으며 포스팅을 하고는 덕분에 오랜만에 옛날 사진들도 찾아보고 어려서는 딸래미의 친구로, 지금은 할머니의 친구로 가족이 되어 준 고마운 수수에 대해 기억하는 시간을 가졌다.

5
글을 올린 지 불과 3일 밖에 되지 않았는데.. 어젯밤에 수수는 무지개다리를 건너갔다.

심장마비였다.

6
24시간 동안 내내 운 것 같다. 이제는 눈물을 흘릴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다. 2년이란 시간 동안 아프면서도 엄마 아빠의 곁을 지켜준 첫째와는 달리, 수수는 갑자기 찾아온 것처럼 그렇게 갑자기 떠나갔다. 날이 밝아야 장례라도 치러 줄 텐데 새벽에 걱정하다 며칠 전 지인에게 느닷없이 받은 흰 꽃이 생각났다.

하루 종일 할머니 방에서 놀다가 잠이 들 때면 하루도 빼놓지 않고 꼭 언니(딸) 방으로 갔었다. 언니가 가장 자기를 사랑하는 것을 알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언니의 베개 옆, 다리 위, 이불 속이 자기의 잠 자리다. 침대로 썼으면 하고 사 주었을 당시 딱 한번 앉아 보고 다시는 뒤도 돌아보지 않아 구석에 던져두었던 포근한 바구니를 가져와 차가운 시신을 눕히고 아직도 싱싱한 흰 꽃들만 골라 장식을 해 주었다.

7
첫째가 떠난 지도 세달 밖에 되지 않았다.
아직 마음의 상처가 아물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10살 밖에 되지 않은 둘째마저 우리 가족을 떠나가다니 나는 아직도 이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8
한동안, 아주 많이 힘들 것 같다.

사실 엊그제 올린 글이 아니면, 그냥 너무나 힘들어 잠수라도 타고 말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직도 새로 글을 읽고 달아주시는 댓글을 보면서 이렇게라도 소식을 알리는 것이 수수와 스티미언 분들을 위한 도리라고 생각했다.

9
가족들끼리 웃으며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수수의 까칠한 성격 때문에 1분 동안만 물리지 않고 안고 있을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었는데... 우리는 이렇게 수수를 떠나보내면서야 그 소원을 풀었다.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숨이 멈춘 둘째를 끌어안고 응급실로 뛰어갔으니 말이다.

그런 소원 들어주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10
수수는 우리와 사는 동안 행복했을까.

그렇게 허탈하게 수수를 떠나보내고 우리 딸이 던진 질문이다.
나는 그랬다고 믿고 있다. 까칠한 그녀석이 애교부리며 던지던 눈빛을 아주 오랫동안 봐 왔으니까.

하지만 마음 한 켠에 이제 다시 반려동물과 함께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다.
함께하는 기쁨보다, 헤어지는 슬픔이 더 큰 것 같다.
또한 반려동물을 보살핀다는 미명 하에 내가 더 많은 위안과 위로를 받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바쁘면 하루 종일 한번 놀아주지도 않았으면서, 긴 여행이라도 가게 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맡겨두었으면서, 너무 이기적이었던 것 같다.

온 가족이 집을 비우고 새벽부터 밤까지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왔던 어느 날, 야수로 돌변한 수수가 다녀온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를 떠올려 본다.

수수.jpg

하지만 이번엔 수수 네가 우리보다 조금 더 이기적이었다.
좀 아프고 병원이라도 다니면서 가족들 고생이라도 좀 시켜주고 가지...
이별을 준비할 시간이라도 좀 주지...

어떻게 그렇게 자기 생각만 하고 순간에 떠나갔는지.

고통은 없었을 거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씀 한마디에 말도 안 되는 위안을 삼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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