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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많이 망설였다.
너무 갑작스런 일을 겪고 보니 이런 글을 올리는 것이 맞는지 아닌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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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밤 11시가 다 되어 지인의 연락을 받았다. 느닷없이 꽃을 갖다 주겠다는 것이다.
일 년에 서너 번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인데 성의를 생각해서 거절하기도 좀 그래서 받겠다고 하고 현관 앞에서 기다렸다. 오아시스에 정성스럽고 예쁘게 꽃꽂이가 된 꽃들이었는데 마르샤, 올포러브 등 각종 고급스런 백장미와 백합 등 거의 흰 꽃이었다. 행사장에 필요해 준비를 했는데 너무 많이 준비를 해서 버리기는 아까워 주변에 사는 지인들에게 나눠주며 들어가는 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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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잘 가꾸지 못한다. 작은 화분 정도는 모를까, 꽃을 사다 두어도 이상하게 내가 꽂아 둔 꽃들은 이삼일도 가지 않아 빨리 시들어 버리기 때문에 꽃들에게 미안해서 사지 않는데, 이렇게 오랜만에 꽃을 받으니 집안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참 예뻐서 일단 오아시스 째로 화반에 담가두고 테이블 위에 얹어 두었었다. 그리 가깝지 않은 지인에게 한밤중에 받은 흰 꽃이라는 점에서 뭔가 마음 한구석에 석연찮은 느낌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예상치도 못한 곳에 이 꽃이 사용될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않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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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반려동물에 대한 유기를 주제로 제이미님이 주최한 #kr-pet 이벤트에 올린다며 우리 집 둘째 수수를 소개했었다. 유기묘를 데려와 가족이 된 둘째는 수수가 아니라 야수라며, 이 이야기를 스팀잇에 올리도록 허락해 준 딸에게 고마워하면서 옛날 기억을 더듬으며 글을 썼고, 추억을 더듬으며 포스팅을 하고는 덕분에 오랜만에 옛날 사진들도 찾아보고 어려서는 딸래미의 친구로, 지금은 할머니의 친구로 가족이 되어 준 고마운 수수에 대해 기억하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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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올린 지 불과 3일 밖에 되지 않았는데.. 어젯밤에 수수는 무지개다리를 건너갔다.
심장마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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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동안 내내 운 것 같다. 이제는 눈물을 흘릴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다. 2년이란 시간 동안 아프면서도 엄마 아빠의 곁을 지켜준 첫째와는 달리, 수수는 갑자기 찾아온 것처럼 그렇게 갑자기 떠나갔다. 날이 밝아야 장례라도 치러 줄 텐데 새벽에 걱정하다 며칠 전 지인에게 느닷없이 받은 흰 꽃이 생각났다.
하루 종일 할머니 방에서 놀다가 잠이 들 때면 하루도 빼놓지 않고 꼭 언니(딸) 방으로 갔었다. 언니가 가장 자기를 사랑하는 것을 알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언니의 베개 옆, 다리 위, 이불 속이 자기의 잠 자리다. 침대로 썼으면 하고 사 주었을 당시 딱 한번 앉아 보고 다시는 뒤도 돌아보지 않아 구석에 던져두었던 포근한 바구니를 가져와 차가운 시신을 눕히고 아직도 싱싱한 흰 꽃들만 골라 장식을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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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가 떠난 지도 세달 밖에 되지 않았다.
아직 마음의 상처가 아물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10살 밖에 되지 않은 둘째마저 우리 가족을 떠나가다니 나는 아직도 이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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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아주 많이 힘들 것 같다.
사실 엊그제 올린 글이 아니면, 그냥 너무나 힘들어 잠수라도 타고 말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직도 새로 글을 읽고 달아주시는 댓글을 보면서 이렇게라도 소식을 알리는 것이 수수와 스티미언 분들을 위한 도리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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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끼리 웃으며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수수의 까칠한 성격 때문에 1분 동안만 물리지 않고 안고 있을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었는데... 우리는 이렇게 수수를 떠나보내면서야 그 소원을 풀었다.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숨이 멈춘 둘째를 끌어안고 응급실로 뛰어갔으니 말이다.
그런 소원 들어주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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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는 우리와 사는 동안 행복했을까.
그렇게 허탈하게 수수를 떠나보내고 우리 딸이 던진 질문이다.
나는 그랬다고 믿고 있다. 까칠한 그녀석이 애교부리며 던지던 눈빛을 아주 오랫동안 봐 왔으니까.
하지만 마음 한 켠에 이제 다시 반려동물과 함께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다.
함께하는 기쁨보다, 헤어지는 슬픔이 더 큰 것 같다.
또한 반려동물을 보살핀다는 미명 하에 내가 더 많은 위안과 위로를 받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바쁘면 하루 종일 한번 놀아주지도 않았으면서, 긴 여행이라도 가게 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맡겨두었으면서, 너무 이기적이었던 것 같다.
온 가족이 집을 비우고 새벽부터 밤까지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왔던 어느 날, 야수로 돌변한 수수가 다녀온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를 떠올려 본다.
하지만 이번엔 수수 네가 우리보다 조금 더 이기적이었다.
좀 아프고 병원이라도 다니면서 가족들 고생이라도 좀 시켜주고 가지...
이별을 준비할 시간이라도 좀 주지...
어떻게 그렇게 자기 생각만 하고 순간에 떠나갔는지.
고통은 없었을 거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씀 한마디에 말도 안 되는 위안을 삼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