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동물병원에는 냐옹이가 예쁘다네~~
학교 다니는 길목에 쇼윈도가 유난히 큰 동물병원이 있는 탓에 하굣길에는 거기에 붙어 쉽사리 집에 오질 못하는 아이가 있었다. 어제는 철망 안에 있던 예쁜 냐옹이가 오늘은 다 나았는지 없어졌다며 말로는 다행이라면서 표정으로는 서운해 하고, 매일 드나드는 아가들의 상황을 살피고 이야기하는 것이 일상이던 어느 날, 그 아이는 약간 상기된 얼굴로 엄마가 꼭 들어줘야 할 부탁이 있다는 이야길 꺼냈다. 우리 딸 이야기다.
금지옥엽 하나밖에 없는 딸이지만, 무조건 오냐오냐 키우진 않았기 때문에, 약간은 엄한척 하는 얼굴로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갑자기 고양이를 데려오겠다는 것이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한 얼굴로 말했다. “아주아주 작은 냐옹이들이 있는데. 엄마가 없어. 우리가 데려와서 보살펴 줘야 해. 모두 네 마리야.”
엄마 잃은 길냥이들
두둥~ 한 마리도 아니고 네 마리라니. 나로서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었다. 사정을 알고 보니, 딸아이가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그 동물 병원에 누군가 유기된 아기고양이 네 마리를 데려다 놓은 것이었다. 이 아가들을 보게 된 딸은 가슴이 아팠던 모양이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녀석들이라 외로움에 떨며 유난히 큰 소리로 울어댔던 것 같다.
일단 누군가 데려갈지도 모르니 며칠만 기다려 보자고 말해 두고 나도 마음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덜컥 데려오는 것 또한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졸라대는 딸아이의 손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동물 병원에 가게 되었는데, 다행히 두 마리는 벌써 다른 분들이 데려가서 두 마리만 남아 있었다. 의사선생님과 이야기를 해 보니, 생후 3주 정도로 추측되는 아가들이었고 필요한 예방접종과 건강검진은 이미 마쳤다고 했다.
당시에 유기묘를 데려오는 것은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 중에 한 마리와 벌써 눈이(?) 맞아 “수수” @soosoo님 아닙니다ㅠㅠ 라는 이름도 지어줬고 도저히 두고는 집에 갈 수 없다는 얼굴로 바라보는 딸을 보니 내가 너무 생각이 짧았다는 느낌이 들어 일단은 한 마리를 입양하기로 했다.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고 책임을 진다는 의미로 예방주사 비용 등을 지불한 뒤 두 마리 중 더 많이 서럽게 울어대던 아가 한 마리를 그렇게 데려오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도 데려가는 사람이 없으면 나머지 한 마리도 데려오기로 약속한 채로. (우리집에 못 데려온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녀석도 바로 입양이 되었다고 한다.)
야수(?)와 살아간다는 것은...
둘째 수수의 생후 한달 정도 당시 모습
수수는 그렇게 우리 둘째가 되었다. 그렇게 어린 고양이는 한 번도 키워 본 적이 없기에 정말 걱정이 많이 되었다. 혹시라도 실수를 해서 어린 생명이 위험해지지는 않을까 그게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도 모든 고양이들이 유혹에 넘어간다는 참치캔을 주고도 궁디팡팡을 하면 일단 발톱 한번 세우고 보는 매우 까칠한 성격이지만 고맙게도 건강하게 잘 자라 주었고, 지금은 뚱냥이가 되어 있다.
부모와 집사에게 사랑을 듬뿍 받아 데려올 때부터 천사 같던 첫째와는 달리, 둘째는 정말 깡패가 따로 없었다. 병원으로 올때 까지 길에서 서러움을 많이 당했는지 사람의 손길도 두려워했고, 예뻐서 쓰다듬어 주어도 그게 자기를 괴롭히는 행위라고 생각해서였는지 물어대기 일수였다. 아가 때는 무는게 그리 아프지 않고 귀엽기만 했는데, 시간이 지나가도 그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고 (송곳니는 또 왜 그렇게 뾰족한지 ㅠㅠ) 젊은(?) 시절에는 할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아 딸과 내 팔은 언제나 상처 투성이였다. 버릇을 고칠 수 있을까 싶어 인터넷이며 동물병원이며 엄청나게 알아보고 시도해 보았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한번은 손톱을 깎아주는데 화가나서 딸 아이의 손을 물고 놓지 않아 손에 송곳니 구멍이 나서 결국 병원으로 뛰어간 적도 있었다. (다행이 신경을 다치거나 하는 큰 일은 없었고 바로 아물었다.)
친정 엄마를 모시고 사는데, 예뻐하시다가도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왜 이런 전혀 수수하지 않고 도리어 야수(?)같은 애를 데려와 키우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며 시골에 있는 친구 분 댁에 데려다 놓으시겠다는 것을 몇 번이나 뜯어 말리기도 했다. 아마 운이 나빴으면 진작에 파양을 당했거나 길로 쫓겨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어 가슴이 철렁했다. 까칠한 것만 빼고는 너무나 예쁘기도 했고 벌써 가족으로 정이 푹 들어 있었는데 어딜 보낸단 말인가.
나는 둘째의 성격이 이렇게 형성된 것은 결국 인간들의 잔인한 행위 때문이었을 거라는 생각에서 지금도 벗어날 수가 없다. 공격한다는 것은 두려움이라는 본성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도 둘째가 싫어하는 짓은 최대한 안하고 사랑받는 집사가 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한다. 둘째는 머리도 비상하고 평소에는 우다다와 부비부비도 자주 해 줄 뿐 아니라 자기가 싫을 때 건드리지만 않으면 절대 해치지(?) 않는다. 그리고 나이가 좀 들어서인지 요즘은 좀 쓰다듬어 줘도 1분 정도는 기분 좋은 척 하며 참아주기도 한다. ㅎㅎㅎ 고마움의 눈물을 흘린다 ㅠㅠ
결국 할머니의 친구가 되다
터널 놀이터에 들어간 수수. 반려동물의 초상권을 걱정하는 딸래미 덕분에 이미 스팀잇에서 공개한 사진 두 장만 재 사용했습니다;;;
웃지 못 할 사실은, 둘째는 그렇게도 졸라 자신을 데려왔고 예뻐했고 지금까지도 끔찍이 사랑하는 언니(우리 딸)보다는 자기를 싫어(?) 했던 할머니(친정 엄마)를 제일 좋아한다는 것이다. 아주 아기 때부터 새벽이 되면 할머니 방문 앞에서 나오라고 울어대는데 그 소리가 “할머니~~ 나와유!!”하는 것과 정말 비슷해서 깜짝 놀라 눈을 뜬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지금도 털과의 전쟁을 지긋지긋해 하시는 엄마가 방문을 닫아두시면 그 앞에서 문을 열어주실 때 까지 서럽게 울어댄다. 결국 그 성화에 못 이겨 문을 여시면 바로 침대 위로 책상위로 할머니가 움직이는 공간마다 따라다니며 점유한다.
어머니가 연세가 드시면서 외출하는 시간보다는 낮에 집에 혼자 계시는 시간이 늘어나고 가끔은 외롭지 않으실까 걱정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오늘도 수수와 티격태격하며 하루를 보낸 이야기를 하느라 여념이 없으시다. 어머니 목소리의 반은 사랑으로 반은 푸념으로 가득하지만 나는 옛날 생각을 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때 엄마의 반대를 못 이기고 둘째를 시골로 보냈다면 지금 얼마나 외로우셨겠냐며.
글을 마치며
결국은 못 맞출 줄 알고 있었다.
요즘은 정말 글을 쓸 기분도 상황도 아니라서 벌써 일주일 넘게 포스팅을 못하고 이웃분들 블로그도 놀러가지 못하고, 어쩌다 틈이 나면 몇몇 글에 댓글놀이만 하고 있었는데, 제이미님이 공지하신 [반려 동물의 유기] 글쓰기 이벤트를 보면서 우리 둘째 이야기를 쓰고 싶어 졌었다. 하지만 500자에서 2000자라는 제한(?)을 보고 지난번 김작가님이 진행하셨던 일기 이벤트에서도 맞추지 못한 2000자를 지금도 다 생략하고 반 밖에 쓰지 못했는데 어떻게 맞춘단 말인가 하고 절망했었다 ㅠㅠ
줄이고 줄이다 포기하고 참가에 의의를 두고 마무리 해 본다.
그리고 정말 너무나 우연하게도 오늘은 스팀잇 가입 세달 째 날이다. (쓰다 보니 또 16일이 되었다 ㅎㅎㅎ)
2월 16일에 가입하고 두 달 째 되던 4월 16일에 무지개다리를 건너 보낸 첫째 이야기를 쓰며 펑펑 울던 시간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또 한 달이 지난 것이다.
가입일 기념으로 앞으로 매월 16일에는 #kr-pet 글을 올려볼까도 생각해 본다.
내일 또 비가 온다던데 아직도 그치지 않은 사무실 안에 내리는 비가 (그간의 고생을 감안해서라도) 내일은 멈추기를 기원하며 모든 반려동물들이 유기 없는 세상에서 함께하기를 같이 기원해 본다.